이동하는 사람들
서론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인간은 계속해서 이동했다. 어떤 사람들은 더 푸른 목초지를 찾아서, 생계를 위해, 안전을 위해, 교육을 위해, 일자리를 찾기 위해, 가족과 합류하기 위해, 무역을 위해, 사업을 위해, 또는 오로지 생존을 위해 이동한다. 어떤 사람들은 갈등, 전쟁, 폭력, 핍박을 피하기 위해 이동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사회 경제적 혼란, 자연재해, 정치적 격변으로 인한 어려운 생활 환경 때문에 이동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이주는 현대의 주요한 글로벌 현상이며 이는 광범위하게 모든 사람들에 영향을 끼친다.
역사상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이 태어난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동은 우리 시대를 규정하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되었다. 인간 이주의 급박함, 규모, 양, 속도 및 방향은 최근 수십 년 동안 기록적인 수준으로 증가하였다. 21세기의 첫 사분기에는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의 이동은 전례 없는 수준으로 가속화되었다. 2000년부터 인류의 이주가 급증해서, UN은 매년 12월 18일을 ‘국제 이주민의 날’로 지정했고, 2015년을 ‘이주민의 해’로 지정했다.
이 글의 목적은 사람들의 이동의 동시대적인 이슈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발전시키고, 대규모 사람들의 이동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기독교 신앙의 디아스포라적 특성과 선교적 기회들을 전세계 교회가 이해할 수 있도록 깨우는 데 있다. 이 글이 소망하는 바는 흩어진 사람들이 어떻게 기독교를 변화시키고 발전시키고 있는 지를 기독교인들이 이해하도록 돕는데 있다. 또한 세계 교회가 전 세계의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참여하고 이를 활용하도록 동원하고 자원을 제공하도록 돕고자 한다.
이동하는 세계: 우리는 모두 이민자이다
우리는 모두 이주민이거나 이주민의 후손이다. 어떤 형태의 이동 이야기는 우리의 존재에 깊게 연루되어 있으며, 우리의 조상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자손들에게도 그럴 것이다. 인류는 이주하는 특성이 있다. 현대 사회, 국가, 경제 및 정치는 반복되는 사람들의 이동으로부터 진보해 왔다. 사람들은 시골에서 도시로, 그리고 다른 도시와 국가로 이동한다. 경제 활동이 발전함을 따라 미래의 더 좋은 삶을 희망하며 이동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 폭력, 불안정 또는 핍박을 피해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동해야만 한다.
모든 이주 연구와 예측은 전 세계 사람들의 이주는 향후 몇십 년 동안 급증할 것이며, 이것이 전 세계의 주요 이슈로 지속될 것임을 예상하고 있다.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 국가 경제의 인플레이션 압력, 새로운 이동 기술, 자율 주행 차량, 인공 지능, 로봇 공학 등은 현재의 사회 경제적 질서에 대규모 혼란을 일으키고, 모든 국가의 모든 사람에게 불공평을 야기시킬 것이다. 이는 많은 국가로부터 이주를 더욱 증가시킬 것이다. 비행 자동차, 초고속 전철(hyperloop) 및 초음속 비행기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대규모 이동은 도약의 경계에 서있다. 일부 도시의 인구 감소, 국가적 고령화, 그리고 일부 국가의 인구 축소는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초래할 것이다. 전염병, 인플레이션, 기후 변화, 전쟁 등은 더 많은 사람이 어쩔 수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다른 장소를 살펴보게 할 것이다. 이 모든 현상은 지난 300년 동안보다 향후 30년간 더 많은 사람이 이동할 것을 의미한다.
증가하는 숫자: 데이터와 추세
전 세계적으로 이주에 대한 신뢰할 만한 최근 데이터 출처를 찾기가 어렵다. 정책 결정자들, 인구학자들, 정부 통계학자들, 인구 조사 데이터 과학자들, 저널리스트들, 비영리 기관들, 그리고 대중들이 사용하는 데이터는 대부분 출처, 정의 방식, 방법론, 그리고 보고서의 목적에 따라 각양각색이다. 다른 어려운 점은 이 데이터가 동적이고 변화무쌍하다는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종류의 이주민들의 숫자들을 정기적으로 계수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게다가, 어떤 이주 보고서가 발표될 무렵에는, 아예 도움이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정보는 이미 오래된 정보로 여겨질 수도 있다.
유엔 산하 국제 이민 기구(International Organization of Migration, IOM)는 각 나라에서의 이주를 추적하고, 세계 이주 보고서(World Migration Report, WMR)를 통해 그 숫자와 추세를 알려주고 있다. 2022년도 보고서에 의하면 202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2억 8,100만 명의 국제 이주자가 있었고, 이는 전 세계 인구의 3.6%에 해당한다. 즉, 전 세계 인구 중 30명 중 한 명이 이주민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태어난 나라에서 살지만, 많은 사람이 그 나라 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고 있다. 2010년에는 전 세계에서 약 2억 2,000만 명의 국제 이주자가 있었고(전 세계 인구의 약 3.2%를 차지), 2000년에는 약 1억 7,300만 명(2.8%), 1990년에는 1억 5,200만 명(2.9%), 1980년에는 1억 2,000만 명(2.3%), 1970년에는 전 세계에서 8,400만 명의 국제 이주자가 있었다. 2020년에는 전 세계적으로 약 3,900명의 이주자가 사망하거나 실종됐고, 이는 2019년의 약 5,900명보다 적은 숫자다. 하지만 실제 이주민 사상자 수는 훨씬 많고, 매년 증가하고 있다.
그림 1: 2005-2020년도 국제 이주민들이 주로 거주하는 지역(백만 단위)
현재 유럽은 국제 이주민들의 가장 큰 목적지이며, 2022년 기준으로 8,700만 명(국제 이주민의 30.9%)이 거주한다. 아시아가 바로 뒤를 이어 8,600만 명의 국제 이주민이 거주한다. 북아메리카는 5,900만 명의 국제 이주민(20.9%)이 거주하고 있다. 바로 뒤를 이어 아프리카는 2,500만 명의 이주민(9%)이 거주한다. 지난 15년 동안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지역의 국제 이주민 수는 약 700만 명에서 1,50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증가하여 국제 이주민의 성장률이 가장 높은 지역이 되었고, 전 세계 국제 이주민의 5.3%가 이 지역으로 이주했다. 오세아니아에는 약 900만 명의 국제 이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는 전체 이주민의 약 3.3%에 해당한다.
2023년에는 인도가 전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가 되었으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주민(1,800만 명)을 내보내고 있다. 다음으로 많은 이주민을 내보내는 나라는 멕시코(1,100만 명), 러시아(1,080만 명) 및 중국(1,000만 명) 순이다. 다섯 번째로 많은 이주민을 보내는 국가는 (800만 명) 시리아이며, 이주민의 대부분은 지난 10년 동안 대규모 전쟁으로 발생한 난민이다. 지난 50년 동안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이주민 목적지 국가였으며, 2022년 기준으로 5,100만 명의 국제 이주민이 거주한다. 두 번째로 주목할 만한 이주민 목적지 국가는 독일이며 약 1,600만 명의 국제 이주민이 거주한다. 세 번째는 사우디아라비아이고 1,300만 명의 이주민이 거주한다. 러시아는 1,200만 명, 영국은 900만 명의 이주민이 거주한다.
그림 2: 2020년 상위 20개의 국제 이주민의 출발 국가(왼쪽)와 도착 국가(오른쪽): 백만 단위
UNHCR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으로, 핍박, 인권 침해, 전쟁, 폭력 또는 공공질서를 심각하게 파괴하는 사건으로 인해 세계적으로 1억 8,400만 명이 강제로 이동하였다. 이는 난민, 국내 이주민, 망명 신청자 및 국제적 보호가 필요한 사람들을 모두 포함한다. 2022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는 3,530만 명의 난민과 540만 명의 망명 신청자가 있었다. 최근 몇 년 동안 국내 이주민 수가 급증하여, 2022년에는 세계적으로 역대 최고치인 6,250만 명에 달했다. 난민의 52%가 시리아(19%), 우크라이나(16%) 및 아프가니스탄(16%)으로부터 이주했다. 주요 난민 수용국(hosting nations)은 터키(360만 명), 이란(340만 명), 콜롬비아(250만 명), 독일(210만 명) 및 파키스탄(170만 명) 순이다.
그림 3: 1992-2023년간 전세계에서 강제로 이동한 사람들 (백만 단위)
위에서 열거한 모든 숫자와 설명은 현대의 글로벌 이주 상황을 완전하고 정확하게 묘사하지는 못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의 현실은 빠르게 변하고 있기에, 모든 숫자와 차트는 오래된 자료이며 현재의 실정을 보여주지 못한다. 여기에 인용된 모든 데이터는 더 최신 데이터로 대체되어야 한다. 그리고 독자들은 글로벌 이주의 최신 동향 및 숫자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인용된 출처를 방문할 것을 권장한다. 이주민의 숫자는 계속해서 진보하고 모든 추세는 지속적으로 변화한다. 이는 이주민과 디아스포라 공동체에 관한 연구를 매우 힘들게 만들며, 동시에 흥미롭게 한다.
이주민 공동체의 종교적 신앙을 파악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서구 국가 내의 이주민 교회들의 숫자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서구 기독교인들은 이를 감지하고 있으나, 그 숫자는 기독교 데이터베이스에 일반적으로 더 적게 보고된다. 대부분의 이주민 교회는 비공식적으로 가정에서 시작하거나 건물을 임대해서 자신들의 본향과 깊이 있게 연결된 외국어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전 세계의 이주민 교회들의 증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조상들의 고향과 강력한 연결을 가진 외국어로 예배를 열기 위해 임대된 시설을 사용한다. 따라서 이러한 이주민 교회의 수적 증가를 정확하게 평가하는 것은 어렵다. 서구의 기독교는 쇠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 아프리카 및 라틴 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새로운 선교적 동력을 통해 서구의 기독교를 부흥시키고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이동하는 사람들과 기독교 선교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와 인류의 흩어짐을 주관하신다. 2차 선교여행 때 사도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파고 광장에서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기술하고 있다.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행 17:26-28)
하나님께서 나라들을 창조하시고(창 25:23; 시 86:9-10), 언어와 문화를 제공하셨고(창 11:1, 6, 7, 9), 인류가 거주할 공간과 시간적 차원을 결정하신다는 사실(행 17:26)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사람들을 세우며, 잃어버린 자들에게 구원을 가져오는 선교적 목적을 알려준다. 사람들의 이동은 타인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고, 새로운 환경에서 소외된 자신들이 물려받은 신념 체계를 탐구하게 되고, 자신들의 지역 신들을 넘어서서 지역 신적 존재들을 초월한 우주적인 구원자를 추구하게 한다. 사람들의 흩어짐은 인류 역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 있다. ‘모든 신자는 제사장(priesthood of all believers)’교리의 관점에서 볼 때, 디아스포라는 ‘모든 신자는 선교사(missionhood of all believers)’라고 부를 수 있으며 이들은 세계 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성취한다. 모든 국가는 디아스포라(단기, 장기 또는 시민권을 취득한 사람)의 존재와 참여 그리고 그들의 권력(선하든 악하든)에 영향을 받는다. 모든 선교사는 국가적, 문화적 경계를 넘는 이주민이다. 마찬가지로, 모든 기독교 이주민은 문화를 넘어서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사 역할을 하는 잠재적인 선교사로 간주할 수 있다.
‘디아스포라’라는 용어는 출생지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지칭하는 데 널리 사용된다. 다른 관련 헬라어 단어는 ‘모임’을 의미하는 ‘에클레시아’이며, 이는 종종 ‘교회’로 번역된다. 하나님은 흩어진 백성들을 모으시는 반면, 모인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교를 위하여 세상 안으로 흩어진다. 사람들의 흩어짐과 모임은 서로 대응하고, 연결되어 있고, 상호 보완되는 원형(archetypes)이며, 이를 통해 21세기의 상황 안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할 수 있다. 즉, 선교의 흐름, 선교의 자원, 그리고 선교의 영향력은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일어날 수 있고, 어느 곳으로도 향할 수 있다. 우리는 이제 기독교 역사상 전례 없는 시대를 살고 있으며, 모든 나라(every country, 종족 언어학적 구분이 아닌 정치 지형학적 실체)에 크리스천이 존재하는 시대이다. 실제로 복음은 땅 끝까지 이르렀으며, 이 복음은 이제 그 끝에서 되돌아오며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동력을 얻고 있다. 세계 교회의 문화적, 인종적 구성의 급격한 반전은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으며, 21세기에 세계 선교를 촉진하기 위한 새로운 협력적 동맹을 형성하고 있다.
디아스포라 요인은 우리가 기독교를 내적으로 다양성이 풍부한 보편적인 신앙으로, 그리고 전 세계적으로 서로에 대한 건강한 상호성 감각을 가진 신앙으로 여기게 한다. 디아스포라로 인해 복음 전파가 가속화되며, 선교 사역은 디아스포라의 영향으로 새로운 기세를 얻는다. 이것은 중심이 아닌 지역이 지역적 특색을 여전히 가지면서도 기독교의 새로운 중심이 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모든 지역의 기독교인이 함께 전세계적으로 하나님의 선교를 앞당기도록 선교적 잠재력을 불러 일으킨 것은 바로 성령으로 능력을 입은 세계선교이다. 기독교 선교는 더 이상 서구(the West)에서 나머지 지역(the rest)으로가 아니라,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이루어진다. 이것은 다수의 기독교 중심지를 허용하고, 선교적 흐름은 많은 다양한 방향으로 (다중 중심적이며 전방위적으로) 발생한다. 모든 곳이 선교의 주체이자 선교지가 되었다.
디아스포라 선교
디아스포라 선교 분야는 세계의 흩어진 사람들 가운데서 기독교 선교의 도전과 기회를 탐구하며, 그들의 독특한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맥락을 고려한다. 디아스포라 선교는 디아스포라를 대상으로 하고(to diaspora), 그들을 통해 사역함으로써(through diaspora) 사역을 통해서 대위임령을 성취하는 방법과 수단이다.
디아스포라 선교학은 전통적인 선교학과 구별되며, 관점, 패러다임, 사역 양식 및 사역 스타일 등 네 가지 독특한 면에서 차이가 있다. 전통적인 선교학은 지리적으로 정의되었던 반면(해외 vs. 국내 또는 도시 vs. 농촌), 디아스포라 선교학은 비공간적이다. 왜냐하면 미전도 종족은 더 이상 지리적으로만 규정되지 않으며, 그들은 국가적 경계나 위도에 제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는 10/40 창 또는 지정학적 지명과 같은 기존의 많은 선교 전략에 도전한다. 전통적 선교학은 구약 패러다임의 (이방인과 개종자들이) ‘오는(come)” 선교와 신약 패러다임의 (대위임령을 따라) ‘가는(go)’ 선교에 집중했다. 반면에 디아스포라 선교학은 21세기의 새로운 현실에 초점을 맞춘다. 즉, 사람들을 이동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선교를 대상 인구와 함께 이동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전통적인 선교학에서는 사역의 패턴이 선교사를 파송하고 재정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반면에 디아스포라 선교학은 사람들 가운데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수행하는 새로운 선교 방식을 인식한다. 즉, 우리의 문 앞에서 이루어지며, 모든 기독교인이 선교사로 참여하는 것이다.
디아스포라 선교는 현대의 대규모 인구 이동의 증가라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이러한 현상은 서로 연결된 세계와 다양하고 다문화적인 공동체의 형성을 불가피하게 만든다. 따라서 주로 외국으로 선교사를 보내던 전통적인 선교 접근 방식을, 이제는 전세계의 디아스포라 인구를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전에 선교사를 파송하던 국가는 이제는 선교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전의 선교지에서 온 이주민 중 일부는 다른 이주민이나 그들의 수용국 국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전 세계는 이제 우리의 이웃이 되었고, 모든 기독교인은 이 현실을 자각해야 하고, 모든 지역의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구비되어야 한다. 디아스포라 선교는 다양한 지역에 있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상황에 맞게 상황화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모든 교회 안의 모든 기독교인이 모든 사람에게 날마다 성령의 능력으로 증인이 되길 요구한다. 이는 기독교인들이 수용국에서 디아스포라 공동체와 교회 간에 다리 역할을 하며, 대변인, 중재자, 그리고 통역자로서 대화를 촉진하고, 관계를 통해 변화되어 사회에 잘 적응하도록 돕는 역할을 강조한다.
게다가, 디아스포라 선교는 대부분의 이주민이 자신들의 모국어를 보존하기 때문에 종종 다중언어 사역을 촉진한다. 모든 영적 문제는 종종 모국어를 통해 인지가 된다. 따라서 외국어를 배우고, 수용 국가의 공용어를 가르치고, 소그룹 모임과 교회 예배를 다중 언어로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디아스포라 선교는 또한 디아스포라 공동체의 초국가적 유대 관계(transnational ties)를 인정하고 가치 있게 여기며 이를 활용하여, 그들의 조국에 있는 가족 및 교회와 협력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도모한다.
디아스포라 커뮤니티의 본질은 매우 초국가적이다. 즉, 그들의 관계, 자원, 그리고 두 국가 간의 영향력은 정치 지정학 개념의 선교를 초월한다. 디아스포라 선교는 전인격적인 접근을 수반한다. 이는 복음 전도와 아울러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외국에서 필요로 하는 영적, 사회적, 그리고 실제적인 필요를 포함한다. 즉, 사회적 봉사, 언어 교육, 직업 지원을 수반한다. 특히 비참한 재난의 상황에서 이동한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하다. 이들이 외국에서 그들의 삶을 살아낼 수 있도록, 그들의 정체성, 소속감, 사회적 통합, 그리고 다문화적 역량을 돕는다. 물론 이들은 시간과 세대가 지나갈수록 서서히 수용 국가의 현실 속에 동화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본국과의 연대를 유지한다(어떤 사람은 멀리한다). 전반적으로, 디아스포라 선교는 선교가 모든 곳으로부터 모든 곳에 발생하는 기독교의 전방위적인 시각을 망라한다.
디아스포라 선교학은 크게 세 가지 패러다임으로 나뉜다. 첫째는 디아스포라들에 대한 선교(Mission to the Diaspora)다. 현재 기독교인들과 가까이 또는 그들 가운데 살고 있는 미전도 종족들에게 사역하는 데 중점을 둔다. 이를 통해 수용국의 교회들이 해외로 나가지 않고도 이웃에 있는 새로운 이민자들에게 다가가며 문 앞에서 선교를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자신의 뿌리에서 떠나 외국으로 이식된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 열려있다.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바꾸는 것을 제재할 사회문화적 장애나 억제 요인이 없다. 그들은 물려받은 신앙을 다른 사람들의 신앙과 비교하고 대조한다. 그리고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한 뒤에는 복음 증거에 더 근접하게 된다. 특히 기독교가 소수 종교이거나 기독교인들이 핍박을 당하는 지역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이러한 사람들은 복음에 대해 더욱더 수용적이고, 기독교인들의 환대와 자선을 필요로 한다.
두 번째 패러다임은 디아스포라를 통한 선교(Mission through the Diaspora)이다. 이는 디아스포라 기독교인들이 입양된 고국에서 자신들의 친척들에게 그리고 다른 국가에서 온 이주민들에게 전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주민들은 모든 선교사가 이주민인 것처럼 타문화권 선교사로 활동한다. 기독교인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면 새로운 지역의 새로운 사람들에게 문화를 초월하여 복음을 전파하게 된다. 게다가, 기독교인들은 가장 큰 종교적 디아스포라를 형성하며 다른 사람들보다 ‘땅 끝까지’ 가는 것에 더욱 열려 있다. 그들은 어디를 가든 기독교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 기독교이라면 여행할 것이고, 여행한다면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진리를 포함한다.
세 번째로, 디아스포라를 넘어선 선교(Mission beyond the Diaspora)이다. 이는 디아스포라 기독교인들이 수용 국가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거나, 고향 사람들에게 선교적 영향을 미치거나, 다른 지역과 문화에서 온 다른 민족들에게 선교하는 것을 포함한다. 디아스포라들은 놀라운 능력과 다양한 세계의 경험을 통해 다문화적 교량 역할을 한다. 그들은 그들의 넓은 교류 네트워크뿐 아니라 그들의 실제 물리적 환경에도 복음의 영향을 미치도록 자립적인 선교사로 동원되어야 한다. 그들은 타고난 통역자가 되어 항상 한 세계를 다른 세계에 설명하면서 자신의 견해와 신앙의 전도자로 변모한다. 이주로 인한 이동은 본질적으로 신학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그들은 삶, 목적 및 궁극에 대한 깊은 질문의 해답을 탐구한다. 그들의 영적 활력과 통찰력은 수용 사회 내 기존의 교회에 중요한 자산이며, 새로운 공동체를 세우기 위한 동기 부여를 제공해 준다.
디아스포라 선교는 세계 인구의 4%인 국제 이주민만을 대상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닐 뿐더러 선교학의 최신 유행도 아니다. 우리 모두가 이주민이며,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곳의 원주민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기독교 신앙을 디아스포라적(diasporic)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항상 움직인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항상 움직이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교리와 선교 신학은 ‘움직이는 하나님(God on the Move: Motus Dei)’로 재인식 필요가 있다. 하나님에 대한 모든 정적인 개념들은 영토적이고 억압적이어서, 신봉자들을 정지시키고 생기를 잃게 만들어 결국 우상 숭배가 된다. 기독교 신앙은 어떤 장소에도 묶일 수 없으며,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도 길들여질 수 없다. 그 본질은 우리가 가두려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살아 계시고 움직이는 존재로 보는 것은 움직이는 세상에서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하나님의 지속적인 행하심과 일치한다.
결론
기독교는 본래 움직이는 믿음이기 때문에 탁월한 선교적 신앙이다. 실제로, 기독교 신앙인들의 이동성과 하나님의 움직이는 본성은 기독교 신앙을 이동 가능하고 번역 가능한 신앙으로 만든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종류의 경계를 지속적으로 초월한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존재로 보고 하나님의 지속적인 행하심을 움직이는 하나님의 결과로 보는 것은, 움직이는 세상을 위한 신학과 선교 신학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 방법이다. 이주민, 이동자들, 그리고 디아스포라들은 현대 세계에서 하나님 선교의 최전선에 위치해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가 증거하는 바와 같이, 이동하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성장시키고, 전해주고, 변화시키는 강력한 매개체(agent)이다. 또한 그들은 지속적으로 21세기와 그 이후의 기독교의 발전을 형성할 것이다.
메모
본 논문은 로잔운동의 디아스포라 이슈 네트워크에서 작성되었다. 주요 저자는 Sam George 박사이며 2023년 8월에 작성되었다. 이 글은 다음과 같은 글로벌 디아스포라 네트워크의 실행팀 멤버들의 참여를 통해 개발되었다: T.V. Thomas 박사(말레이시아/캐나다), Bulus Galadima 박사(나이지리아/미국), 문창선 목사(한국), Art Medina 목사(필리핀), Paul Sydnor 박사(프랑스), Joel Wright 목사(브라질/미국), Elizabeth Mburu 박사(케냐), 현한나 박사(호주/한국), Jeanne Wu 박사(대만/미국), John Park 박사(한국/미국), Godfrey Harold 박사(남아프리카).
주
- UN Migration. “World Migration Report.” Access August 15, 2023. https://worldmigrationreport.iom.i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