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구권 교회의 선교
서론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와 같은 비서구권 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한때 선교지로만 알려졌던 이곳들이 이제는 전 세계로 새로운 선교사들을 파송하고 있다. 이 글에서, 카스트로 크리스티안(Castro Cristian)은 라틴 아메리카 선교 운동의 네 단계를 설명하고 전 세계에 3만 명이 넘는 선교사를 파송한 국제 코미밤(COMIBAM Internacional)의 설립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데이비드 로(David Ro)는 한국, 중국, 그리고 인도를 중심으로 아시아 선교 운동을 다른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요약한다. 우체나 아냔우(Uchenna Anyanwu)는 서구로의 인구 이동과 함께 아프리카 대륙 내 미전도 종족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에 대한 글을 쓴다.
라틴 아메리카로부터의 선교 운동
1916년 파나마에서 열린, 외국 선교 기관들이 주최한 세계 선교 대회에서 라틴 아메리카는 선교지로 선포되었고, 다양한 국제 선교단체에 각각의 국가들이 할당되었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에서 활동하던 50개 선교회의 235명의 대표가 모였는데, 이 중 단 27명만이 라틴계였다. 대회의 공식 언어는 영어였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목소리는 매우 작아서 거의 무시될 정도였다. 이 사실은 당시 역사적 순간에 작은 라틴 교회가 세계 선교의 참여자로 고려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한편, 파블로 카릴로(Pablo Carrillo)는 자신의 책 Huellas en el Desierto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외국 선교사들은 라틴계를 가능한 선교동력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들이 언젠가 그들의 나라 안팎에서 선교동력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라틴 아메리카 대부분의 외국인 선교 공동체에서 떠오르지 않았다.’1
피할 수 없는 부르심: 깊이 있는 복음화
1921년에 설립된 라틴아메리카선교회(LAM)는 복음전도와 사회 활동 프로젝트를 통해 당시 작은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시에 LAM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선교 비전의 각성에 크게 기여했다.
1964년 봄, LAM의 케네스 스트라한(Kenneth Strachan) 박사는 풀러신학교에서 ‘The Inescapable Call: Missionary Work of the Church in the Light of the Urgent Needs and Opportunities of Today’s World’라는 주제로 선교에 관한 일련의 강연을 했다. 강연의 논문들은 심층 운동(Depth Movement)의 경험과 복음전도의 신학적 기반을 요약한 것으로, 스트라한 박사가 이끄는 LAM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심층 복음전도(Depth Evangelism)의 기본 원칙은 거의 보편적으로 적용되었으며, 현재 전 세계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보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수십 년 앞섰다. 당시 그 지역에는 알려진 선교사의 활동이 거의 없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1925년 우루과이 몬테비데오(Montevideo)에서 열린 Congress on Christian Work였고, 다른 하나는 1929년 쿠바 하바나(Havana)에서 열린 Pan-American Evangelical Congress였다. 비록 해변의 모래알처럼 작았지만, 이 두 행사 모두 라틴 아메리카의 선교 비전에 기여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로잔의 영향
1974년에 열린 제1회 로잔대회는 복음주의 선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다. 이 대회는 참석했던 많은 라틴계 사람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로잔운동이 제작한 문헌과 후속 협의를 통해서도 라틴 아메리카에 영향력을 미쳤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무엘 에스코바(Samuel Escobar), 르네 빠딜라(René Padilla)와 같은 라틴 아메리카 복음주의 선교학의 초기 개척자들은 복음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선교사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하나님 나라의 신학과 교회의 사회적 존재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강조는 세계 선교학과 글로벌 선교사 활동의 방향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전 세계 복음적인 공동체와 라틴 아메리카의 협력을 하나님께 찬양한다.
첫 번째 라틴 선교사 운동의 태동
1976년, 대륙 최초의 국가 선교 협회인 Association of Brazilian Transcultural Missions(AMTB)가 브라질에서 사역하고 있던 여러 국내 지도자와 외국 선교사의 주도로 조직되었다. AMTB의 초대 회장은 조나단 도스 산토스(Jonathan dos Santos)였으며, 이 협회는 여러 교단의 참여를 대표하는 아홉 개의 선교 기관이 통합함으로써 설립되었다. 몇 년 후,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가 선교동력이 되는 도전이 시작되었다. 1982년 아르헨티나 코르도바(Córdoba)의 작은 마을 빌라 지아르디니(Villa Giardini)에서 목회자와 선교사의 리더십 하에 World Missions Network(RMM)가 창설되어 아르헨티나 교회를 모든 열방으로 동원하게 되었다.
코미밤(COMIBAM)의 탄생: 선교현장에서 선교동력으로
AMTB와 RMM의 리더십이 대륙으로서 하나님의 선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필요에 대해 당시 교회에 대해 예언적인 목소리를 냈다는 점은 언급할 만하다. 이에 따라 Latin American Evangelical Fellowship(CONELA)은 1984년 멕시코에서 지도자 회의를 소집하여 지역 내 선교사 비전의 개발을 촉진하기 위한 국제 대회의 조직에 관해 논의했다. 이 첫 Ibero-American Missionary Congress는 1987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개최되었는데,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국가,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고 다른 국가들에서 온 참관인들을 포함해 3,000명이 넘는 대표들이 모였다. 이들은 함께 모여 세계 선교사 과제에 대해 듣고 이베로아메리카에서 선교사 운동을 형성하기 위한 헌신을 다짐했다. 바로 그곳에서 루이스 부시(Luis Bush)는 힘주어 선언했다. ‘1916년, 라틴 아메리카는 선교지로 선포되었다. 오늘 1987년, 라틴 아메리카는 선교동력으로 선포된다.’2
그 첫 대회에서, 국제 코미밤3이 탄생했으며, 다른 국가, 지역, 그리고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관계를 발전시켰다. 코미밤은 실무 그룹 설립을 도왔고, 협의회를 소집하며, 스페인어와 포르투갈어로 책을 출판하고, Ellos y Nosotros(그들과 우리) 잡지 발행을 시작했다. 1988년 세계기도정보(Operation World)에서 패트릭 존스톤(Patrick Johnstone)은 총 1,314명의 라틴 아메리카 선교사를 보고했다. 이 숫자는 1995년에 4,482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이 중 1,364명은 자국 외에서 사역하고 있었고, 2,126명은 타문화권 사역에 참여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지역 전체에 걸쳐 교회를 움직이셨고, 아직 선교 운동이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는 선교 운동을 탄생시키셨고, 이미 선교 운동이 존재하는 곳에서는 국가적인 선교 운동을 강화하셨다. 일부 국가는 20세기 초부터 선교사를 파송해 왔고 국가적인 선교 협력 네트워크도 구축했지만, 1987년 대회는 타문화권 선교 사역을 촉진하기 위한 강력한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이베로아메리카의 전국 선교 협력체(CMN)
시간이 지나며 이 운동은 조직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사회를 구성했으며, 집행 이사를 선출하고, 작은 사무실을 설립했다. 그러나 의심의 여지없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전국적인 선교 운동의 탄생이었는데, 이것은 오늘날 이베로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National Missionary Cooperations(CMN)이라고 불리는 단체이다. 그리고 이 단체는 조직, 사역, 그리고 선교사를 위한 공간으로 전국 교회의 힘이 되었고, 아울러서 경험과 자원을 공유하며 자국의 선교 활동을 전 세계로 확대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4 현재까지 25개의 CMN이 코미밤에 참여하고 있다. 이 25개의 CMN은 코미밤의 여덟 협력 지역인 이베리아, 북미, 멕시코,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 안데스, 남미 원뿔꼴 지역, 그리고 브라질에 속해 있다. 현재, 이 CMN에는 총 1,000개 이상의 선교사 단체들이 참여하고 협력하고 있다.
운동 가운데 있는 코미밤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국제 코미밤이 CMN과 교회의 전략 수립을 위한 장이면서, 세계 선교 공동체와의 협력을 강화할 잠재력을 지닌 관계 구축을 위한 장으로 자리 잡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매우 보수적인 추산에 따르면 교회의 약 10%에서 15%가 세계 선교에 적극적으로 혹은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는 200개국 이상으로 파송된 30,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기록하고 있으며, 매달 약 1,500만 달러의 재정적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다. 전체 파송 선교사 수 중 약 17,000명이 브라질 출신이고 1,200명이 아르헨티나 출신이며, 나머지 11,800명의 선교사는 코미밤의 다른 23개 회원국 출신이다. 최근 파나마에서 열린 Consultation of Unreached Peoples에서 이베로아메리카의 선교 운동은 적어도 1,850개의 미전도 종족 집단에 복음을 전하고 기도하는 과제에 교회와 동행하기로 약속했다. 오늘날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 국제 코미밤이 그 사명을 이행하고 있으며, 그것의 비전, 사명, 그리고 가치에 헌신하고 있다.
아시아로부터의 선교 운동
아시아의 교회는 힌두교, 불교, 이슬람, 공산주의, 그리고 다양한 민속 종교가 복잡하게 혼합되어 생활하는 5,300개의 미전도 종족 집단이 살고 있는 환경에서 세계 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20세기에 다양한 종교적, 정치적 도전, 민족주의와 박해의 증가, 도시화와 세계화를 통한 사회적 혼란, 그리고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의 영향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의 기독교는 인구수보다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45억 인구 중 8.2%를 차지하게 되었다. 서구의 선교 운동이 ‘노년기’에 이르러 다른 조건들을 탐색하고 있을 때,5 아시아 교회는 다음 세기의 세계 선교에 대한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한국
한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한국 사회는 매우 불안정한 특징을 보인다. 급격한 변화는 전통적인 가족 구조의 붕괴, 노사 분쟁, 빈부 격차, 그리고 사회 규범의 악화를 조장했다. 이러한 사회적 불안정 상황 속에서 기독교는 영적이고 도덕적인 나침반을 제공함으로써 사회 문제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한국 교회의 몇 가지 강점에는 1) 새벽 기도회, 2) 활기찬 주일 예배, 3) 십일조와 청지기 정신, 4) 신학 교육, 5) 사회 참여, 그리고 6) 선교에 대한 강조가 포함된다. 한국의 선교 운동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복음전도 대회, 학생 운동, 그리고 폭발적인 교회 성장의 결과물이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32%로 추산되며, 이 중 9백2십만 명의 개신교인(18%)이 포함된다. 코로나19 이전인 2020년, 22,259명의 한국 선교사들이 해외에서 사역했다.
대부분의 한국 선교사는 타문화적으로 안수받은 목회자들이다. 대부분은 복음전도, 제자훈련, 교회 설립, 그리고 리더십 훈련에 중점을 두는 교회와 선교 기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많은 한국 선교사는 열악한 오지에서 교회를 개척하는 일에 참여하고 있으며, 일부는 빈민을 위한 전인적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한국 교회와 선교는 세속화, 젊은이들 사이의 종교에 대한 전반적인 무관심, 대형 교회 스캔들의 영향 등으로 인해 정체 상태에 빠졌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선교사 인구는 점차 고령화되고 있다.
중국
1980년대 중국의 농촌 지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한 가정교회와 1989년 이후 도시 지식인 사이에서의 교회 성장은 선교 운동의 토대를 마련했다. 중국의 기독교인은 전체 인구의 약 6-7%로 9,000만 명으로 추정된다(약 6,000만 명은 가정교회, 3,000만 명은 TSPM 교인). 기독교는 도시화 과정 가운데 사회 문제를 다루면서 성장했다. 현재 중국의 몇몇 일급 도시에서는 평균 임금이 대한민국의 서울과 비슷해져, 선교사 파송을 위한 재원이 준비되었다. 2000년대 중반, 도시의 미등록 가정교회들이 사무실 공간을 임대하기 시작하며 가정에서보다 좀 더 개방적이고 큰 규모의 회중으로 전환했다. 교회들은 목회자의 급여를 지급하고 선교를 포함한 사역을 지원하기 위해 헌금을 모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018년 강화된 종교 정책으로 박해가 증가했으며, 2020년 코로나19와 결합되어 교회들이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는 상황이 되었다.
중국의 선교 운동인 선교 중국(Mission China, 이전의 선교 중국 2030)는 도시 내 미등록 가정교회에서 등장했다. 공식적인 삼자애국운동(Three-Self Patriotic Movement, TSPM) 교회는 법적으로 지역 교회 건물 밖에서 전도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지만, 몇몇 교회는 공동체 내 사회적 관심사를 다루면서 간접적인 전도에 참여하고 있다. 가정교회 리더들은 해외에서 여러 차례의 대규모 선교 중국 연례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2030년까지 20,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겠다’는 목표를 선언했다. 코로나19 기간에 선교 중국 활동은 온라인으로 옮겨서 기도와 선교 동원이 이루어졌다. 200,000명 이상이 카이로스(Kairos)라는 온라인 선교 동원 과정을 수강했다. 별도로 백 투 예루살렘 운동은 주로 농촌 지역인 허난(Henan)과 안후이(Anhui)에서 서쪽으로 수백 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다. 원저우(Wenzhou) 교회도 광범위한 해외 기업 활동을 통해 일정 부분 선교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선교 중국의 ‘핵심 강점’은 박해의 상황에서 태어난 희생적인 선교 정신이다. 고난은 교회가 열악한 미전도 지역으로 선교사를 파송할 수 있도록 도왔다. 박해는 또한 기독교인에게 적대적인 폐쇄 사회에서 사역을 수행할 수 있는 혁신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냈다. 지정학적 힘과 경제력을 갖춘 대국에 상당한 크기의 기독교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중국의 목회자들에게 세계를 향한 선교의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환경 가운데 증가한 정치적 박해 속에서, 대규모 선교 운동이 나타날 가능성은 작다. 검증하기 어려울 수 있겠지만, 추정에 따르면 약 2,000명의 중국 대륙 가정교회 선교사들이 해외에서 타문화 사역을 하고 있다.
인도
19세기 중반 인도의 교회 성장은 사회적으로 가난한 계층을 대상으로 한 복음화에 크게 기인할 수 있다. 노동 계층은 복음에 대해 수용적이며, 특히 시골 지역과 도시 빈민가의 이주민들, 예를 들어 힌두 카스트 제도의 ‘불가촉천민’인 달릿족(Dalits) 사이에서 더욱 그렇다. 지난 50년 동안 교회의 확장은 주로 남인도에서 이루어졌다. 인도의 선교 운동은 북인도의 전통적인 힌두교, 불교, 그리고 이슬람 다수파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인도 선교사들은 국내 2,138개의 미전도 종족 집단(UPGs) 사이에서 ‘타문화적’ 교회 설립에 참여하고 있으며, 선교사의 99%가 국내의 여러 민족 집단 사이에서 타문화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인도 선교사의 성장은 “선교사”라는 칭호에 대한 이해가 변화하도록 이끌었는데, 이 용어는 전통적으로 해외에서 온 사람들과 “백인”과 관련된 사람만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6 인도의 기독교인의 인구는 약 4-5%, 즉 5천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India Missions Association(IMA)은 이전에 60,000명의 인도인 사역자와 300개의 토착 선교 기관이 인도 내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의 주요 강점은 많은 수의 자원봉사자가 있다는 것이다. 선교사들은 종종 사역과 직업을 병행하거나 해외 디아스포라나 외국에서 지원을 받는 이중 직업을 가지고 있다. 인도에서 기독교는 외래 종교로 간주되어 적대적인 시선을 받아왔고, 교회는 점점 더 심한 박해를 받고 있다. 개종법은 기독교인들이 불법적인 방법으로 전도했다고 비난하는 데 사용되었다. 2014년 모디(Modi) 총리의 승리 이후 교회의 민주적인 자유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최근의 민족주의의 부상으로 외국의 영향력이 제거되고 현지 교회에 대한 공격을 강화하는 모습이 목격된다. 새로 강화된 환경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선교 활동이 위축되었지만, 북인도의 상위 카스트 힌두 공동체 내에서 새로운 토착 교회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다른 아시아 국가들
다른 아시아 국가들도 선교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필리핀의 해외 선교사 중 타문화 사역에 종사하는 사람의 수는 약 2,000명이다. 마닐라에 20만 명의 교인이 있는 한 필리핀 교회는 150명 이상의 선교사를 파송하여 아시아 전역에 타문화 교회를 설립하고 있다. 또한 가사 도우미, 육아 도우미, 건설 노동자, 엔지니어, 건축가, 간호사, IT 전문가, 요리사, 그리고 해양 노동자 등으로 활동하는 수천 명의 해외 필리핀 노동자들(OFWs)도 복음과 함께 문화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홍콩, 그리고 싱가포르에서도 교회가 눈에 띄게 성장하여, 이 지역들의 기독교인은 인구의 9%에서 20%로 추정된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약 1,000명의 토착 사역자들이 인도네시아 내 130개 미전도 종족그룹 사이에서 타문화 교회 설립에 관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도 비슷한 수의 타문화 사역자들이 157개 종족 집단에서 사역 중이고, 수백 명의 타문화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했다. 홍콩은 2023년까지 670명을 해외 직업 선교사로 파견했으며, 대만은 2017년에 600명을, 그리고 싱가포르는 2019년에 최소 428명을 파송했다.
어라이즈 아시아
아시아 선교 운동에 새로운 동력이 형성되고 있다. Asia Evangelical Alliance, Asia Theological Association, CCCOWE, Movement Day, 그리고 로잔운동의 아시아 지도자들이 2022년에 모여 아시아 교회와 그 선교의 미래에 대해, 특히 아시아 상황 안에서, 논의했다. 2023년 7월에는 ‘복음이 없는 곳으로 가라’는 세계 선교를 주제로 Arise Asia에서 37개 아시아 국가의 1,800명이 넘는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모였다. 평균 나이 25세의 젊은이들에 의해 수백 건의 타문화 선교 헌신이 이루어졌다. Arise Asia 운동은 밀레니얼 세대와 Z 세대로부터 탄력을 받고 있다. 아시아의 교회가 선교사를 받는 대륙에서 선교사를 보내는 대륙으로의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아프리카에서의 선교 운동
성경에 나오는 구속(redemptive)의 이야기들은 이주에 관한 내러티브로 가득 차 있다. 아브라함의 부름에서 이집트의 아기 예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이동하는 민족들과 하나님께서 그 이동을 통해 민족을 구속하시는 태피스트리를 읽는다. 지난 한 세기 반이 넘는 기간에 유럽인들은 탐험, 식민지개척, 상업, 그리고 기독교 선교 활동에 참여하기 위해 세계 곳곳으로 이동했다.7 20세기 중반부터는 이주 추세가 역전되기 시작했다. 남-북 이주의 현상은 아프리카 내부적으로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선교 운동에 대한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학술적 논의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전 세계 이주 추세의 한 측면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현상은 아프리카인들의 운동(단지 아프리카 대륙 내부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를 넘어서)을 촉발시켰으며, 이는 아프리카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잠재적 선교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보여준다.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참여하는 선교 운동의 잠재력과 관련해서, 많은 아프리카 이민자가 거주하는 유럽, 북미, 그리고 오세아니아의 여러 도시에서 점점 더 많은 아프리카 이민 교회들이 등장하고 있다. 아프리카 이민자 기독교인들은 글로벌 북부의 호스트 국가 도시에 교회를 설립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 교회(성공회)는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 두 개의 교구를 가지고 있다. 미국의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철학 박사와 목회학 박사 학위를 소지한 나이지리아 성공회 사제들과 다른 아프리카 성공회 사제들의 숫자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 이들이 설립하는 교회들은 보통 몇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이들은 쇠퇴하고 있는 미국의 주류 개신교 교단에 속한 예배 장소를 매입한다.8 몇몇 사제들은 주류 미국 개신교 교회의 목회자 자리를 맡기도 한다. 이러한 추세는 나이지리아 성공회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9
선교의 영은 북아프리카에서도 움직이고 있는데, 예수를 따르는 이집트인(장로교와 다른 개신교 교단 모두)들이 선교 파송 단체를 결성하고 있다. 특히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일부 예수를 따르는 이집트인들이 아랍 세계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카이로에 있는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는 교육 과정에 선교 훈련을 포함시켰다. 향후 25년 안에 이집트에서 아랍 세계 전역으로의 선교사 운동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그렇다면, 향후 25년 혹은 50년 동안 아프리카 밖에서 활동하는 아프리카 교회와 아프리카 선교사들이 이민자의 지리적 상황 가운데에서 선교에 어떤 잠재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아프리카에서 기인한 역사적 운동들
교파적이거나 초교파적인 아프리카의 토착 선교 단체는 1970년대 중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2011년 9월 5-9일에 나이지리아 아부자(Abuja)에서 Movement for African National Initiatives(MANI)의 제2차 협의회가 열렸다. 이 협의회 선언문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프리카 교회를 충분히 준비시키고 능력을 풍성하게 하셔서, 복음을 우리 대륙의 모든 지역과 전 세계에 전할 수 있도록 하셨다고 믿는다.’ 그렇다면, 오늘날 아프리카 이민자로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땅에서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해 어떻게 약속에 충실할 수 있을까?
타문화 사역자를 파견하는 초교파적 아프리카 토착 선교 기관의 명성을 보여주는 한 예는 1975년 북부 나이지리아에서 시작된 Calvary Ministries(CAPRO)이다.11 또 다른 예는 The Evangelical Missions Society(EMS)이다. 이것은 Evangelical Church Winning All(ECWA)의 교단 선교 단체이다. 보안상의 이유로 현재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집트에서 아랍 세계에 이르기까지 몇몇 부상하는 기관들이 있다. 아프리카에서 다른 지역으로의 새로운 운동 속에는 도전과 기회가 공존한다.
아프리카 교회의 선교적 기회들
아프리카 대륙과 전 세계에서의 큰 변화로 인해, 아프리카 교회에 중요한 선교적 기회가 찾아왔다. 다음은 가능하고 부상하고 있는 몇 가지 기회들이다.
- 글로벌 교단 리더십: 미국과 유럽의 주류 교단의 수적 강세가 감소함에 따라, 아프리카 기독교인은 이러한 교회의 교인과 목회자가 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미 몇몇 아프리카 목회자들은 미국의 저명한 복음주의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친 후, 현재 미국 내 백인 주류 교회의 목회자로 활동하고 있다. 더 나아가, 디아스포라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은 현재 대부분의 주류 아프리카 이민 교회가 속한 호스트 국가들의 추세와 상관없이 선교적 힘을 발휘할 수 있다.
- 세계적인 학자들: 일부 아프리카 기독교인들이 글로벌 북부의 신학 기관에서 훈련을 받음에 따라, 그들은 서구 세계 내에서 선교 교육 인력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부는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저널에 학술 논문을 출판하고 있다. 이들의 학술적 저술이 북미와 유럽 신학 기관의 강의 계획에 필독 목록으로 자리 잡게 될 경우, 금세기의 향후 25년 혹은 50년 동안 신학 교육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영성 강조: 복음주의와 오순절 배경을 가진 대부분의 아프리카 기독교인은 기도와 영적인 힘을 강조한다. 앤드류 월스(Andrew F. Walls)는 서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그는 ‘행복하게…다양한 조각들의 패치워크로 이루어진 2세기 기독교 문헌을 설명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2세기 교회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 2세기 기독교 공동체의 삶과 예배, 그리고 해석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12 사람들의 삶과 사회에 미치는 기도에 대한 열정과 영적 능력의 인식이 아프리카 복음주의와 오순절 기독교인 가운데 분명하게 나타난다. 따라서 세계 선교에서 비아프리카인과 함께 일하는 아프리카인의 존재는 비아프리카 출신 동료에게 영적인 부분과 기도에 있어서 자극을 줄 수 있다.
- 청소년과 여성의 활력: 요 페르비(Yaw Perbi)와 샘 응구기(Sam Ngugi)는 몇 가지 잠재적이고 지속적인 문제를 제시한다.13 그중 하나는 청년과 여성의 활기찬 신앙이다. 많은 유럽과 북미 기독교인의 젊은 세대가 신앙을 갖지 않는 ‘무종교인’이 되어가는 반면, 아프리카 기독교 청년은 활기차고 열정적인 신앙을 갖고 있다. 특히 여성의 경우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25년 동안 선교에서 여성의 영향력은 계속 커져 왔으며, 다음 세기에도 여성의 힘과 영향력은 타문화를 아우르는 세계 선교에 계속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그러나 종종 기독교 사역과 선교 분야에서 여성의 기여와 영향력은 과소평가 되곤 한다. 선교, 기독교 교육, 그리고 교회의 지도자들은 그리스도 몸의 다양한 사역, 특히 선교 분야에서 기독교 여성의 능력을 식별하고 활용해야 한다.
아프리카 선교 운동의 도전들
이 모든 것을 감안했을 때, 아프리카 선교 운동이 극복해야 할 도전은 비아프리카인들이 메시지와 선교에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는 것이다.
- 타문화 전도: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교회는 의도적으로 비아프리카인에게 복음을 선포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엠마누엘 베디아코(Emmanuel Bediako) 박사는 MANI 콘퍼런스에서 발표한 논문에서,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교회는 약 99%가 아프리카인 혹은 아프리카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부분 아프리카 이민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14 서구에 거주하는 아프리카 이민자 인구 사이에 선교 잠재력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추세를 면밀히 관찰하면 아프리카 이민 기독교 인구의 동질적인 경계를 뛰어넘는 선교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호스트 국가에서 기독교 사역에 참여하는 대부분의 예수를 따르는 아프리카인들은 그들의 문화적 환경이라는 동질적인 영역 내에서 사역을 하고 있기 때문에, 비아프리카 출신의 미전도 종족에 대한 타문화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 타문화 상황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교회는 교회 운영 방식을 호스트 국가의 문화적 규범, 가치,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스타일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 아프리카 사람의 시간 개념이 한 예이다. 일부 디아스포라 아프리카 교회는 주일 예배에 2-3시간을 할애하고, 예배가 끝나면 ‘끊임없는 친교’ 시간을 한 시간 더 갖기도 한다. 이러한 예배에 초대받은 백인 미국인은 한 시간 반 이상을 넘기기 어려울 수 있으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문화적 시간 개념의 문제 외에도 재평가해야 할 몇 가지 다른 문화적 뉘앙스가 존재한다. 상황화의 원칙을 적용해야만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기독교인의 메시지와 예배에 관심을 보일 수 있는 비아프리카인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 문화적 차별: 또 다른 도전으로는 비자와 이민 제한, 재정적 능력, 그리고 인종 차별과 편견이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자존감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자아 개념을 갖는 것 외에도, 인종 차별과 편견에 직면한 상황에서 세계 선교에 참여하는 아프리카 기독교인은 회복탄력성과 어려운 사회적 역학 관계를 헤쳐 나갈 수 있는 역량이 필요하다.
요약하자면, 지난 수십 년 동안 기독교의 무게 중심이 아프리카로 이동함에 따라 아프리카 교회는 향후 25년 동안 세계 선교 운동을 위한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지만, 이는 전 세계 교회와 협력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 잠재력을 탐구하고, 기존에 있는 기회를 포착하여 최대한 활용하며, 열방이 기뻐하고 기쁨으로 노래할 수 있도록 비판적이고 건설적으로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
결론
새로운 세계 선교의 시대에, 새로운 선교동력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등장했다. 세계 선교의 새로운 역동성은 다중심적이고, 대부분의 세계를 아우르는 다양한 중심지에서 영감을 얻고 있다. 이 새로운 선교사 파송 중심지들은 각자의 문화적,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상황에 따라 고유한 전략과 방법, 그리고 도전 과제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전 세계 선교 공동체와 깊이 연결된 새로운 선교 시대의 시작에 불과하다. 땅끝의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복음이 없는 곳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대위임령에의 부르심은 전 세계 모든 신자에게 똑같이 주어져 있다.
주
- Pablo Carrillo. Huellas en el Desierto (PM Internacional, 2010) 20.
- Luis Bush. ‘Our History’. COMIBAM Internacional. www.comibam.org.
- The title of the 1987 gathering was later changed from ‘congress’ to ‘cooperation’. The resulting mission movement of the same name—the Ibero-American Missionary Cooperation—is also known as COMIBAM Internacional.
- You can learn more about COMIBAM’s CMNs at https://comibam.org/es/cooperaciones-misioneras/.
- Andrew Walls.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Studies in the Transmission of Faith (Maryknoll, NY: Orbis Books, 1996) 261.
- Mats Ekström and Marianna Patrona (eds). Talking Politics in Broadcast Media: Cross-cultural Perspectives on Political Interviewing, Journalism and Accountability (Amsterdam: John Benjamins, 2011) 232.
- Brian Stanley. The Bible and the Flag: Protestant Missions and British Imperialism in the Nineteenth and Twentieth Centuries (Leicester, England: Apollos, 1990).
- 주류 개신교 교단들은 ‘주로 감리교, 루터교, 장로교, 그리고 성공회’를 포함하며, ‘보수 교단은 남침례회, 하나님의 성회, 오순절과 성결교, 그리고 일부 [다른] 교회’를 [포함한다]. Michael Hout, Andrew Greeley, and Melissa Wilde. ‘The Demographic Imperative in Religious Change in the United States. Survey Research Center (SRC) (Berkeley, CA: University of California, Berkeley, 2001) 2.
- 이것은 Redeemed Christian Church of God (RCCG), The Church of Pentecost from Ghana, the Assemblies of God from Africa, Christ Embassy of Nigeria, the Deeper Life Bible Church of Nigeria, the Methodist Church Ghana, the Presbyterian Church of Ghana, the Seventh-day Adventist Church, 그리고 아프리카에 연고가 있는 다른 교단(주류 교단이든지 혹은 African-initiated churches (AICs)이든지)도 마찬가지이다.
- ‘MANI 2011 Declaration.’ MANI (Movement for African National Initiatives, 2011).
- CAPRO는 Calvary Productions의 약자로 후에 이름이 Calvary Ministries로 바뀌었다. 그러나 사역을 알리는 약어(CAPRO)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불어권 국가에서는Action Missionnaire Interafricaine (AMI)으로 알려져 있다. Festus Ndukwe, ed. From Africa to the World: The CAPRO Story: The Birth and Growth of a Mission (Lagos, Nigeria: CAPRO Media, 2019)을 보라.
- Andrew F. Walls. The Missionary Movement in Christian History: Studies in the Transmission of Faith (Maryknoll, NY: Orbis, 1996) xiii.
- Yaw Perbi and Sam Ngugi. Africa to the Rest: From Mission Field to Mission Force (Again) (Maitland, FL: Xulon, 2022) 49–99.
- Emmanuel Bediako. ‘Africa in Missions: Africa Doing Missions in Diaspora.’ Presentation at MANI (2011). Accessed Jan. 18, 2021) slide 31. https://maniafrica.com/mani/wp-content/uploads/2015/07/Diaspora-Africa-in-Mission.p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