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한 권리
자유의 미래
‘괴로움과 증오의 잔을 마시며 자유에 대한 갈증을 채우려 하지 맙시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기독교 신앙과 성장 배경 덕분에 무엇이 자유이고 무엇이 자유가 아닌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고 자유를 얻는 방법론에 대해서도 명확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언론의 자유, 예배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등 네 가지 기본권을 언급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유명한 ‘4대 자유’ 연설에 대한 헌신을 다시금 강조했지만, 전통적으로 ‘타인의 권력으로부터의 해방’1으로 여겨지던 자유는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이 되어가고 있다.2
지금 세대(Now Generation, 다음 세대가 아니라 지금 세대, 주 참조, 역자 주)3에서는 자유를 자기의 삶의 경로, 목표, 의견, 선택, 표현, 자원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한다.4 이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기 위해 자신의 삶에 대한 권한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앞으로의 자유는 외부적인 요소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찾아야 한다.5 유엔의 ‘세계 인권 선언’ 문서의 서문은 자유의 기초를 ‘인류 가족 구성원 모두의 고유한 존엄성과 평등하고 양도할 수 없는 권리에 대한 인정’으로 간주한다고 명시한다.6 다행히도 공동체적 개념으로써의 자유는 여전히 일부 원주민들 사이에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소비주의와 부의 축적, 개인주의에 중점을 두는 자본주의의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경제와 삶의 방식이 등장하면서 이러한 집단적 공동체 개념은 여러 맥락에서 붕괴되고 있다. 이로 인해 일종의 새로운 형태의 자유가 생겨났다. 예를 들어, 공동체 문화에서는 토지가 모두의 소유이며, 아무도 토지를 갖지 못한 채로 남겨지지 않고 모두가 그러한 상황에서 생활한다. 땅에서 일하며 경작하는 사람들은 그 땅의 열매를 공동체와 공유한다. 이 삶은 단순하고 부의 축적이 존재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이 새로운 형태의 자유는 공동체적 삶을 개인의 승리주의로, 자유를 관대함의 부족으로 만들고 있다. 자유의 정의가 공동체 개념에서 개인 개념으로 왜곡되고 있다. 사회적 관점이 본의 아니게 ‘나는 이렇게 말하거나 이렇게 행동할 권리가 없는가?’라는 이기적인 관점으로 바뀌고 있다.
자유의 미래가 걱정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이기심이 자유의 틀 안으로 스며들면 범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기 때문이다. 범죄는 신체적 범죄에 국한될 필요가 없다. 감정적, 경제적, 심지어는 본질적으로 진취적인 범죄일 수도 있다.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은 세계가 인공지능과 기타 신흥 기술이 만들어낸 혁신적인 기술과 정의에 직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기술들은 의도적으로 왜곡되어 공격적인 이기심을 조장함으로써 다음 세대를 위한 자유의 정의를 바꿀 수 있다.
자유에 대한 관점의 변화
자유라는 용어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성경이 자유에 대해 말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담과 이브가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렸던 창조 이야기부터 시작되었으나, 그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기로 선택함으로써 자유를 포기했다. 완전한 자유는 사라졌고, 장기적인 영향은 육체적, 영적으로 모두 나타났다.7 육체적 자유의 상실은 종종 영적 불순종과 연결되었고,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죄로부터의 구원을 추구해야 했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유는 건강의 자유, 경제적 자유, 인간성의 자유, 문화의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땅의 자유 등 총체적인 자유다.
그러나 하나님이 설계 하신 자유에도 제약이 있다.8 나아만의 치유 사례에서의 개인적인 자유9나 이스라엘의 건국 사례에서의 정치적 자유처럼 하나님의 설계에는 제약이 계속 존재한다. 제약이 존중되지 않으면 게하시가 문둥병에 걸리거나10 이스라엘 백성이 적에게 점령당하는 등 자유를 잃게 된다. 애버딘과 오크니의 주교인 로버트 길리스 박사는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소중히 여기지만, 신중한 책임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한 절제가 관용적이고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11고 강조한다.
장 폴 사르트르와 같은 실존주의자들의 뉴 에이지 가르침(New Age teachings)의영향을 받은, 지금 세대는 자유를 개인주의로 오해하고 있으며, 오늘날 자본주의가 사회에 스며들어 공리주의와 소비주의를 강력하게 주입하고 약육강식의 경쟁을 만들어 많은 폐해를 낳고 있다. 자유는 강압이나 구속없이 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으로 설명된다.12 개인주의적 사고는 제약의 중요성을 약화하고 무제한적 생활 방식ㅇ르 높이 평가하여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13 윤리는 개인에 따라 재정의될 수 있으며, 사회의 한 부분에서 옳다고 인식되는 것이 같은 사회에서 다른 부분에서는 그른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는 종교적 다수주의, 민족 억압, 언어적 격차, 성차별, 직장 내 정원 할당 등 불공정이 만연할 수 있는 모든 문제로 확대될 수 있다. 의사 결정은 어려워질 것이다. 왜냐하면 제도적 정책을 설계하는 각 주체의 지도층이 반드시 윤리적이거나 영적으로 옳지 않은 다수를 편애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적 자유는 이미 부자들이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보다 ‘더 자유로운’ 사회에서 돈에 대한 탐욕을 키우고, 범죄를 부추기며,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 자유를 잃게 만드는 등 큰 피해를 입혔다. 제한 없는 자유는 모든 사람이 본질적으로 선하고 서로의 자유를 존중하는 사회에서만 작동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사회의 범죄와 혼란을 가속화할 뿐이다.14
교회 내에서 또래의 영향을 받는 대다수의 지금 세대는 자신이 제약을 받고 적절한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고 느낀다. 라이프웨이 리서치에 따르면 지금 세대가 교회에 환멸을 느끼는 두 번째로 큰 이유는 비판적인 성도들 때문이다.15 그들은 이런 비판적인 태도를.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들의 불만은 세대 차이를 고려할 때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절대적인 자유가 해결책은 아니다. 비평가들의 비판에 적절히 귀를 기울일 때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분별력을 바탕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과 함께 교회가 연루된 다양한 이유를 인정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그러나 제한 없는 자유는 교리가 희석되고 개인적 선호에 따른 신앙 형성을 허용함으로써 혼합주의적 신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기회와 도전
하나님 나라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며, 일터와 사회 속에서 사람들을 공평하게 대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다. 연대 경제(solidarity economies)를 장려하는 소수의 공동체가 등장하고 있지만, 대다수에게 자유는 개인주의를 조장하여 사회에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교회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첫째, 혼란을 최소화하는 예언자적 행동을 할 수 있다. 둘째, 교회는 일상적인 활동을 계속하면서 이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회고적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다.
총체적 복음
대부분의 경우, 마케도니아의 교회 부름16은 직접적인 전도에 국한되어 있다. 전도의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부를 세상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복음을 제시하도록 부르셨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복음을 전할 때는 설교와 실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혼란을 막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동은 성경에 설계된 자유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성경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 12:31)는 말씀에 따라 소금과 빛이 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은 사회의 윤리적 제약이 있는 자유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데 참여할 수 있다.
여기서 실패한다는 것은 지금 세대(Now Generation)가 꿈꾸는 자유가 ‘힘이 곧 정의’라는 관행이 사회에 만연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교회의 과제는 평등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 ‘힘’의 우월적 지위를 부정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의 일부분은 심각한 배척을 겪게 될 것이다. 탈식민지 시대의 세계는 이미 정치적 경계를 넘어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큰 혼란을 일으켰고, 주요 민족 공동체는 새로 형성된 국가에서 소수 민족이 되었다.
많은 사람에게 식민지 국으로부터의 자유는 단지 지배자가 바뀌었을 뿐이다. 정치 계급에 의해 자유가 ‘민족주의’와 동일시되면서 다양한 형태와 제재를 통해 소수 민족과 경제적 약자들은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다수의 자유를 고려한 정책과 관행이 설계되면서 공동체적 연고주의를 조장하고 있다. 많은 국가가 기반시설 개발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체계적이고 의도적으로 원주민 공동체를 그들의 영토에서 쫓아내고 있다. 소수 민족의 문화와 언어는 그들이 쫓겨남과 함께 소멸하고 있지만, 다수는 이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고 있다. 소외된 사람들의 사회 운동에서 비롯된 여러 유기적이고 정신적인 지식 체계, 토지 기반 시스템 및 체계가 의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거짓 평화라는 구실 아래 소수자들은 협상을 강요받는다. 약육강식의 경제가 조장되어 원주민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의 생명을 위협한다. 지식 공유를 위한 자유로운 접근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더 공정하고 건강한 세상을 위한 투쟁을 진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장기적인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고등교육은 세계의 다양한 지식 시스템 중 많은 부분을 배제한다.17 이러한 자유는 억압자들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뿐이다.
교회의 예언자적 역할
그러므로 교회의 책임은 억압받는 자들과 소외된 자들의 자유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전통적인 금식의 가치를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내가 원하는 금식은 이런 종류의 금식이다’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억울하게 갇힌 사람들을 풀어주고, 당신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짐을 덜어주라. 억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사람들을 결박하는 사슬을 풀어주라(사 58:6)’ 교회가 억눌린 자의 자유를 요구하는 이러한 종류의 금식에 대해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교회가 억압받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목소리를 내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지도층의 발언에 그치고 현장의 사람들이 행동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가 많다. 교회는 불의를 고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해방하고, 압제자들의 무제한적인 자유에 대항하는 일에 더욱 신속하게 나서서 예언자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일부 지역에서는 교회가 지역 사회에서 예언자적 역할을 잊고 통치자들과 결탁하는 경우가 있다. 역사적으로, 식민지 시대에 고안되고 형성된 ‘권위에 대한 복종’의 신학은 재고 되지 않았다. 복종의 실체에 대해서는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복종이 타당성을 갖기 위해서는 상황에 맞는 사고가 필요하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는 특히 애국심과 결합한 자유라는 이름으로 불의의 핵심이 권력자들로부터 시작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분별하는 데 있어 교회에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냈다.
성경의 자유는 공동체 간의 평등을 우선시한다. 그것은 누군가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포용하는 것을 말한다. 중립적인 것은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 데스몬드 투투 주교는 ‘불의한 상황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항상 억압자를 돕는 것’이라고 경고한다. 수십 년 전, 기독교 공동체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는 속담이 회자되곤 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18 이제 교회가 같은 맥락에서 소명을 되새겨야 할 때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억압받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실 것이다.
상황화된 자유
자유에 대한 이해는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도 자주 재검토되어야 한다. 획일적인 군주제 사회에서 작성된 신학적 성찰이 이질적인 민주주의 공동체에 모든 면에서 적절할 수는 없다. 신학적 이해는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숙고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자본가는 원주민을 아무런 배려 없이 다른 지역으로 쫓아내고 개인이 채굴 사업을 할 수 있는 곳을 자유라고 생각할 것이다. 정부 또한 그것이 국가 전체에 수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자본가의 편에 설 수 있다 따라서 강제로 흩어진 원주민 공동체는 새로운 지역에서 소수민족이 되어, 다수에게는 쓸모 없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그들의 언어와 제도를 경험할 기회를 잃게 될 것이다. 관습과 삶의 터전을 잃은 원주민 공동체는 인신매매, 감염, 착취 등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되기 쉽다. 많은 경우 비정부 부문은 피해자의 재활이나 이러한 잔학 행위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지만 근본 원인을 관리하는 데는 소홀하다.
교회의 역할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 방관자가 되어야 할까? 소수의 필요에 대해 목소리를 내야 할까?19 교회는 지역사회의 모든 언어적 소수자를 위해 기도할 것인가, 아니면 자본가들의 자금이나 정부로부터의 보호를 받기 위해 침묵할 것인가?
‘권위에 대한 복종’의 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교회는 소위 국가의 장기적인 경제적 이익을 위해 서야 할까, 아니면 무분별하게 여러 지역으로 쫓겨나는 원주민의 편에 서야 할까?다수 공동체 출신 지도자들이 이끄는 국가 교회는 다수 공동체로 대표되는 정부의 표적이 되고 있는 소수 민족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교회의 가르침 중 정치적 또는 경제적으로 억압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부분이 얼마나 될까? 그 가르침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가시적인 실천에 옮겨지고 있나?
교회는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양성함으로써 성경에 나타난 정의로운 자유를 구현할 책임이 있다. 신앙 공동체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만 국한되지 말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예술, 비즈니스, 미디어, 교육, 정부, 서비스업, 기술 등 공동체에서 모든 의사 결정의 위치와 영향력의 중심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영향력 있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계획과 결정을 통해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행동해야 한다. 자유를 올바르게 정의하고 이를 사회에 구현하는 시장에서의 영향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의 연합이 필수적이다.
그리스도의 자유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지역사회를 복음화하고 복음화된 사람들을 복음화된 틀 안에서 지탱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교회가 지역사회에 복음을 전할 때만 가능하다. 복음이 전해지든 전해지지 않든 간에 말이다. 진리이신 예수님이 전파되면 모든 사람이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전인적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통합적 복음은 교회가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조직적 폭력 구조를 고발하고, 필요하다면 교회 구조를 수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좋은 소식을 선포하도록 요구한다.
예수님은 제도적 불의로 인해 온전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삶을 주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설교도 하셨지만, 치유도 하셨다. 예수님은 불의에 대해 말씀하셨고 모든 형태로 불의에 맞서 행동하셨다. 예수의 발자취를 따라야 할 책임이 있는 교회 역시 복음을 전하고, 병자를 치유하며, 자유를 실천해야 한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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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세대(Now Generation)는 교회 내 ‘젋은 세대’를 지칭한다. 로잔운동 아시아 2020대회는 이들을 현재 기성교회에서 설 자리가 없는 ‘내일의 세대(tomorrow’s generation)’로 지칭하는 대신 ‘지금 세대’로 부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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