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슈얼리티와 젠더
섹슈얼리티(sexuality, 성적 지향성, 역자 주)와 젠더(gender) 대한 경험은 모든 인간 문화의 중심이지만, 이에 대한 보편적 현실에 대한 태도는 전 세계적으로 매우 다양하다. 이 주제의 보편성과 분열성 모두 오늘날 세계 교회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 주제에 대한 경험과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이를 평가하는 시금석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하며 변하지 않는다. 성경은 모든 문화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 도전한다. 섹슈얼리티와 젠더 이슈도 예외는 아니다. 다른 모든 현상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러한 이슈들을 평가할 때 우리의 궁극적인 권위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모든 문화는 고유의 풍부한 역사와 통찰력을 제시하고 이 분야에서 고유한 과제를 안고 있지만, 이 글의 목적에 따라 우리는 주로 서구 세계의 문화적 경향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좋든 나쁘든 서구 문화는 미디어, 영화, 그리고 인터넷 포르노 수출을 통해 전 세계에 불균형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1 이러한 이유로 서구 동향을 조사하면 어떤 면에서 우리는 많은 글로벌 사회 현상의 상류에서 시작할 수 있다. 다음의 이론적이고 실제적인 설명은 세계 복음화를 위한 목회적이고 선교적인 상황을 제공한다.
서구 성혁명의 세계적인 결과
서구의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한 현재의 사고를 이해하려면, 궁극적으로 과거에 유지하던 규범을 무너뜨린 성과 젠더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초래한 1960~1970년대 성혁명을 조사해야 한다. 이 혁명을 가능하게 한 두 가지 중요한 원동력은 피임과 낙태를 더 쉽고 안전하게 만드는 의학적 발전과 사회적으로 두 가지 모두 수용할 수 있게 만든 사회적 태도의 변화였다.
피임과 낙태는 모두 성적 친밀감을 재생산에서 분리하므로 가족에 대한 전통적이고 성경적인 이해에서 성을 분리한다.2 피임과 낙태에 대한 이러한 의료 기술과 이와 관련된 관용적 태도는 오늘날 서구뿐 아니라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도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약화하는 핵심 요인이다.
성혁명의 가장 중요한 주장은, 만일 개인에게 성적 표현에 있어서 무제한의 자유가 주어지게 되면, 개인과 가족과 사회의 복지가 극대화된다는 것이었다. 이로 인해 이전에 낙인찍힌 관행이 수용될 여지가 생겼다.3 또한, 가족과 사회에 대한 전통적인 의무는 개인이 자기만족을 ‘억압'(repressing)하는 구시대적인 방식으로 보는 개인적인 자기 만족적 문화의 성장을 촉진했다. 이에 따라 권위 있는 인물에 대한 거부감이 생겨났고, 이는 권위의 원천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린 기관의 성 추문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었다. 오늘날의 이상(ideal)은 가족의 기대, 사회적 규범, 생물학, 신적 권위 등 모든 외부적 제약으로부터의 ‘자유’이다.
표면적으로는 이것이 성을 과대평가하게 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실제로 성(sex)은 우상들의 신전에서 오랫동안 그 자리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우리는 개인의 권위와 만족을 과대평가함으로써 성의 유일한 가치를 자기실현으로 간주하므로 성을 평가절하했다. 초월적인 목적과의 연관성이 전혀 없으면 남은 것은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다. 즉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경고한 자기 사랑뿐이다(딤후 3:2).
성적 기술의 발달로 인해 가능해진 이러한 자기만족 추구는 사회적 태도에 더 큰 변화를 불러왔다.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의 연구에서 칼 트루만( Carl Truman)4은 이러한 상황을 초래한 사회적이고 지적인 과정을 지도화하고, 이를 ‘표현적 개인주의'(expressive individualism) 문화에서 ‘심리학적 인간'(psychological man)의 발달로 묘사했다. 이러한 문화적 상황에서 가장 높은 목표는 자기 규정적 성취의 확인과 표현을 통해 스스로 진정한 자아로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표현적 개인주의의 세계에서 종교는 개인이 스스로 정한 삶의 목적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는 정도까지 그 가치가 인정된다.
이러한 성혁명의 영향은 광범위하고 깊으며 파괴적이다.
- 결혼율과 출산율은 서구 전역에서 급락하고 있다.
- 난잡한 성행위(일상적 섹스 문화, ‘유혹 문화’, 다자간 연애 등)는 많은 도시 및/또는 청소년 문화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
- 포르노와 그에 따른 성매매, 외설스러운 성에 대한 기대 역시 널리 퍼져 있다. 신성한 결혼 서약조차도 때로는 합의에 의한 일부다처제(non-monogamous) 관계로 재구성되기도 한다.
- 동성 간 성행위는 서구의 많은 도시 및/또는 청소년 문화에서 주류가 되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은 자신을 양성애자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그들이 관계적으로 ‘모든 문을 열어두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이들 대부분은 이성애 관계로 돌아간다.5
- 젠더와 관련하여 인간의 신체를 다루는 생물학(embodied biology)은 더 이상 자신에 관한 어떤 절대적인 지식의 원천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개인의 감정과 욕구에 맞는 장신구다. 성전환(transsexuality)이라는 드문 의학적 상태로 시작된 것이 이런 식으로 트렌스젠더 현상이 되었다.
앞으로 나아갈 길
이 모든 현대 사회의 경향은 인간의 번영을 촉진하는 신실하고 성경적인 섹슈얼리티에 어긋난다. 앞으로 우리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관한 오늘날의 추세에서 몇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가 진화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시나리오는 서로 평행선을 유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인도하고 진정한 하나님 나라 제자도를 형성할 사역적 대응을 고려할 때, 이러한 잠재적 경향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 길: 극단적 개인주의-기술 관료적 자유주의
첫 번째 길은 가족, 우정, 공동체의 유대보다 자기만족이 더 중요한 급진적인 개인주의가 특징이다. 그런 사회는 건강한 성생활의 패턴이 개인의 취향 밖에 존재한다는 생각을 처음부터 거부한다. 여기서 개인은 성적 관계 영역을 포함하여 자신이 속한 우주의 왕이나 여왕이다. 사람들이 공동체와 성적 만족을 위한 가상 공간과 경험을 기대함에 따라, 기술은 가장 일상적인 관계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까지 중재한다. 우리는 섹스 로봇과 가상섹스라는 새로운 기술이 결국에는 자원이 풍부한 사회의 일부 사람들에게 ‘타인’을 불필요한 존재로 만들 것으로 예측한다. 이 시나리오에서 관계의 가상적 성격은 외모에 중점을 두고 일상적이고 상품화된 성을 촉진할 것이다. 또한, 이 경로는 이성애자(heterosexual), 동성애자(homosexual), 범성애자(pansexual) 혹은 다성애자(polysexual) 등 모든 수단을 통해 점점 더 쾌락 추구를 증대시키는 특징을 보일 것이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필연적으로 불안, 우울증, 자살 충동 및 안락사에 대한 관심, 출산율 감소 등 개인과 가족과 사회 전반에 재앙이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신학적 관점에서 이러한 현상은 적극적인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된 파종과 추수의 법칙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레 18장; 롬 1장 참조).6
또 다른 발전은 젠더 이데올로기와 트랜스젠더 운동의 정상화일 것이다. 이미 사용되는 의료 기술은 점점 더 쉽게 접근하게 되어, 한 세대 전에는 믿기 어려웠던 방식의 성형수술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드문 경우지만, 이러한 절차는 심각한 성별 위화감(gender dysphoria)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러한 조치가 점점 더 젊은 사람들에게 쉽게 제공될 것이며 ‘의학적 필요성’뿐만 아니라 삶의 질을 향상하기 위해 제공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러한 진행을 일시 중지하고 이러한 개발에 대해 더 주의 깊은 연구를 수행하기 위한 노력이 이루어졌지만, 우리는 의료 기술에 대한 접근성이 일반적으로 향상될 것으로 예상한다.
두 번째 길: 공동체적-자연주의적 율법주의
두 번째 시나리오는 첫 번째 시나리오와 상반된다. 이는 식별 가능한 생리학과 전통적인 종족 공동체의 엄격한 규범에 따라 공개적인 성적 식별과 행위를 좁게 규제한다. 오늘날 이란(Iran)이 동성애(same-sex sexuality)보다 성전환을 선호한다는 점과 규칙 위반에 대한 가혹한 처벌을 시행하는 점에서, 우리는 엄격한 율법주의적 접근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이 길에 따르면 충실하고 순종적인 순응은 현실에 관한 개인의 신념으로 일관되게 살아가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이는 공동체의 권위를 지닌 개인, 의식/의례 및 상징에 대한 충실성을 우선시한다. 이 길은 서구의 문화적 규범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어떤 사회에서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나, 첫 번째 길에 대해 강한 반발을 보이는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
이런 경향은 아마도 도덕적인 종교성을 낳을 것이다. 그 결과는, 성경적 규범을 기쁘고 은혜롭게 받아들이기보다 비판없이 공유되는 ‘종교’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이념은 도덕성(우리의 목적을 위한 공동의 성 윤리)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정적인 공동체의 형성을 낳으며, 그런 도덕성과 무관한 사람들을 배제할 것이다.
그 공동체 외부에서, 공유된 ‘종교적’ 도덕성에 대한 보편적 인식과 그것을 따르라는 압력은 아마도 그러한 종교적 도덕성을 공유하지 않는 소수자, 특히 우리의 목적에 따라 진정성 있지만, 원치 않는 비이성애적(non-heterosextual) 욕구가 있으며 사회의 성 역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도덕적 종교성은 불안, 우울증, 자살 충동을 증가시킬 것이며, 종교와 전통적인 형태의 공동체(예컨대, 생물학적 확대가족)를 개인의 행복을 억압하는 것으로만 보는 편견을 강화할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종교성은 첫 번째 길의 특징인 자기만족을 위해 종교와 공동체를 포기하라는 세속주의자의 요청을 강화할 것이다.
세 번째 길: 신보수주의와 섹슈얼리티와 젠더의 전통적인 이해에 대한 새로운 관심
세 번째 길은 성혁명에 대한 재평가로 설명될 수 있다. 성혁명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았다. 젊은 세대는 자유와 성취 대신 강렬한 깨어짐과 공허함을 물려받았다.7 일부 젊은이들이 그러한 현실을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이러한 이념, 특히 과학적 지식 및 객관적 실재와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입증되는 영역에서 반발을 목격할 수 있다(예를 들어, 미성년자를 위한 성전환 치료[gender reassignment therapies]의 장려와 태아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것). 만일 그렇다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은 주류 문화적 가치를 거부한다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이러한 공동의 싸움(co-belligerence)이라는 요소는 현대 트랜스젠더 운동의 일부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젠더 이데올로기에 저항하고 제한하려는 사람들 사이에 이미 존재한다.
이 운동은 이미 일부 서구 문화에서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사람들이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와 기술 관료주의적 경향에 실망하고 상처를 입으면서 미래의 중심 측면이 될 수 있다. 이 집단의 하위 집단은 자신의 동성애 경험이나 불일치하는 성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탐색하고 하나님의 섭리로써 성행위에 대한 성경적 표준에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그들의 삶은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이 말했듯이, ‘같은 방향을 향한 오랜 순종'(a long obedience in the same direction)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이 길을 위에서 언급한 지배적인 이야기에 대한 대항 내러티브(a counter-narrative)인 더 작고 조용하게 구체화된 존재로 본다.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의 일을 충실하게 증언하는 공동체는 성적 자아실현의 메시지에 대해 대항문화적으로 계속하여 살아갈 것이다.
교회가 나아갈 길
교회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이러한 변화하는 태도에 대응해야 한다. 첫째, 그 대응은 최소한 사회가 자멸로 쇠퇴하는 것을 늦춰야 한다. 아마도 그것을 저지하거나 심지어 역전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은 우리와 그리스도와 복음에 대한 그들의 태도와는 무관하게, 그들의 유익을 구하도록 인도한다.
두 번째 이유는 첫 번째 이유에서 비롯된다. 건강한 성생활을 위한 기독교적 틀과 관련된 개념들, 즉 우리의 감정이나 선호와는 무관하게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 있는 질서가 존재한다는 생각은 기독교 복음에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런 개념들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복음의 개념과 하나님을 거부하고 생명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식을 거부하는 죄의 개념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성적인 온전함(sexual wholeness)에 대한 성경적이고 기독교적 태도에 대한 확신은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강화하고 기독교인들이 섹슈얼리티를 포함하여 복음의 요구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힘을 북돋아 준다.
그러므로 교회 지도자들은 세속적 주장을 반박하고 자신의 신자들을 자신 있게 성경에 서 말하는 견해로 이끌기 위해 섹슈얼리티에 대한 성경적 견해에 충분한 확신이 필요하다. 신학 대학들은 성경 전체에 걸쳐 제시된 성경적 성 윤리의 선함과 아름다움을 소재로 하여 성경적 윤리를 뒷받침하는 과학적 증거 및 생생한 경험과 통합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교회는 우리가 두 번째 길의 특징인 비이성애자들을 소외시키고 거부하는 데 기여했던 과거의 잘못을 인식하고 민감하게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오로지 구원하고 섬기기 위해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신 분의 이름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기꺼이 확인하고 도전하며 변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나아가도록 부름 받았다.
첫 번째 길의 함정을 피하기 위해 교회는 다음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 신실한 교회는 세상의 수용을 선호하여 성경적 성도덕을 거부하고 배교하는 ‘진보적'(progressive) 기독교와 구별하라.
- 성적 자기 통제의 가치를 포함하여 성경적 성윤리의 선함과 건전함을 보여주라. 죄악된 성적 충동을 억제하는 것은 ‘억압적’인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고결한 성품을 형성하는 것이다. 순결은 축복이다.
-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은혜와 오직 이신칭의의 우선성을 강조함으로써, 두 번째 길이 주장하는 종교적 도덕주의와 성경적 성윤리를 구별하라. 구원은 행위가 아닌 은혜에 의한 것이며, 우리의 섹슈얼리티의 성화는 성령의 선물이다.
- 성적 방임이라는 우상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성적 순결을 추구하므로 우리가 받게 될 비방과 증오에 대해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다해 준비하라.
우리는 교회가 단지 극단적인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기술 관료주의적 길에 대한 반작용으로 율법주의적 공동체적-자연주의의 길로 빠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위의 접근 방식을 채택할 것을 촉구한다. 이에 대한 교회의 반응은 결과에 대한 두려움에 따라 결정되어서는 안 되고, 은혜를 따라야 하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두 번째 길의 부정적인 요소를 피하려면 다음의 과제를 수행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완전함을 강조하라.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체화된 섹슈얼리티(embodied sexuality)의 법칙에 어긋난 죄를 지은 사람들까지도 회복시키신다.
-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진 구원의 완전함이 어떻게 단순한 도덕주의를 배제하는지를 보여주라. 우리는 이성애나 성적 순결을 통해 우리의 구원을 얻지 않고, ‘순결만으로 구원’을 받거나 이성애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오직 은혜로 구원받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거룩한 섹슈얼리티를 포함한 신실한 삶을 살아간다.
- 그리스도께서 그 시대에 많은 용서를 받은 성적인 죄인들을 환영하셨듯이, 진정한 구도자와 진심으로 회개하는 성적인 죄인을 환영하라. 여기에는 동성에게 매력을 느끼지만, 원하지 않는 사람들과 성전환자를 포함하여 성 정체성과 신앙을 찾는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정직하게 생명을 구하는 조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포함된다. 또한, 성전환을 후회하고 성전환 환원(detransition)을 추구할 수도 있고 추구하지 않을 수도 있는 사람들도 있다.
- 우월성의 우상과 도덕적 독선에 반대함으로써 발생하는 비합리적인 증오를 견딜 준비를 하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성경적 성 윤리를 가르치는 문화적으로 민감한 방법을 개발하고 개인주의-진보적이든 공동체주의-보수적이든 모든 종류의 문화의 압력과 박해를 견딜 수 있는 성품을 개발하도록 도우면서 세 번째 길을 장려할 것을 권장한다. 만일 교회가 현대인의 혼란, 깨어짐, 깊은 필요를 다루기 원한다면, 결혼 과정, 성경적 상담, 성의 제자도, 건전한 멘토링은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핵심 영역이 될 것이다. 이는 우리 문화의 성 윤리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가 속한 은혜로운 주님을 진정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성취될 수 있다.
섹슈얼리티와 대위임령
성경 드라마의 구성은 창조, 타락, 구속을 거쳐 완성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피조물이 타락하고 그 상태에서 구원을 갈망하는 ‘중간기’(between the times)의 삶을 허락하셨다. 구속은 오직 예수님의 사역 안에서만 이루어지며, 우리는 만물의 완성을 통한 완전한 구속을 고대한다.
때때로 우리는 섹슈얼리티와 젠더와 관련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에 대해서는 덜 말하고 복음의 핵심 진리에 더 초점을 두라는 권고를 받는다. 우리는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적절한 시기에 선별적으로 다루는 것이 전략적 가치가 있다는 데 동의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 즉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치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는 에덴동산에서 남자와 여자의 창조부터 그리스도의 신부의 부활 이야기까지 성경 전체 이야기를 대표하는 성경적 성 윤리를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이, 성적인 온전함에 대한 성경적이고 기독교적 태도에 대한 확신은 복음에 대한 확신을 강화하고 기독교인들이 섹슈얼리티를 포함하여 복음의 요구에 합당하게 살아가도록 힘을 북돋아 준다.
그러므로 기독교인들은 성적인 존재이며 젠더를 가진 존재로서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이 외에도 우리는 포르노 산업, 친밀감을 대체하는 인공지능과 기술의 사용과 같은 파괴적인 세력에 대해서도 다루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이성애자가 아닌 사람들과 공동체에 해를 끼치고 심지어 성적 학대를 조장하고 은폐하려고 권력을 부당하게 사용하는 교회의 사례로 인해 대위임령이 어떻게 위협을 받았는지 확인하고 회개해야 한다.
거듭나고 새로워진 기독교인들의 간증은 대위임령에도 중요할 것이다. 특히 고린도전서 6장 11절과 유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와의 관계로 인해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와 성적 취향이 더 좋게 바뀌었다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들의 간증은 더욱 중요하다. 이들은 한때 포르노 소비자이며 성적 학대의 가해자였고 난잡한 혼전 또는 혼외 성관계를 행하던 기독교인일 수 있으며,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섹슈얼리티를 치유하시고 그들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돌이키셨음을 간증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거듭난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을 자랑스러워할 것이다. 신자들의 삶에 미치는 성령의 변화시키는 역사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생명을 주는 간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덜 공개적이며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동등하게 대항문화적으로 살아가는 많은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과 용서에 대해 그다지 확신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적어도 섹슈얼리티의 영역에서 그들의 삶은 영원한 승리가 아니라 신실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인내라는 특징을 보인다. 그리스도에 대한 조용한 헌신과 그에 대한 충성심으로 인해 내면의 충동을 극복하려는 의지 가운데, 그들은 위에서 언급한 성적 자아실현의 메시지에 대한 구체적인 대항문화적 이야기(embodied counter-narrative)가 된다. 그들의 대항문화적 헌신은, 그들의 값있는 순종이 훨씬 더 값있고 순종적인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방향을 가리키는 살아있는 자체적 증언이 될 것이다.
대위임령의 수행을 위한 기회와 도전
교회는 기독교인의 소망 위에 서 있다. 성적으로, 관계적으로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복음은 우리 영혼뿐 아니라 우리 몸과 사회 전체를 위한 좋은 소식이 될 수 있는 놀랍고도 적합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모든 선물과 마찬가지로 섹슈얼리티 역시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 우리의 종이 되어야 한다. 그 목적을 향해 우리는 기독교인이 소망하는 표지로서 우리의 섹슈얼리티를 관리해야 한다.
대위임령의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인의 소망은 섹슈얼리티와 젠더를 신실하게 관리하는 사람들의 간증을 통해 가장 설득력 있게 구현되고 전달될 수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트라우마, 학대, 중독, 무질서한 성생활 및 타락이 인간의 섹슈얼리티에 미치는 다른 영향에서 구속하신 사람들, 그리고 그의 능력과 은혜로 감정적으로나 영적으로 안전하고 안정된 교회 환경에서 건강한 섹슈얼리티를 함양한 사람들을 포함할 것이다.
우리가 이 소망을 추구하는 데는 여러 가지 위험이 뒤따른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공급이 모든 사람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기대하는 경향인데, 이는 잠재적으로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두 번째는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9:1-3) 다른 사람의 고통이나 질병을 그 사람이나 부모의 탓으로 돌리려는 유혹이다. 우리의 타락한 상태와 그에 따른 다양한 형태의 신적 회복의 복잡성을 분열의 문제로 만들기보다, 서로 인내하며 부지런히 성경적 분별력을 발휘하고, 그것이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든 진정한 하나님의 구원을 경축하자.
또한, 우리는 지도자들이 성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책임감이 거의 없거나 전혀 없는 유명 기독교 문화의 유혹에 대해, 그리고 선을 위해 기술을 활용하되 기술에 종속되지 않는 도전에 대해서도 경계해야 한다.
이 모든 것 있어서, 교회는 다양하고 다원적인 사회에서 기독교적 헌신을 확고히 고수하면서 우리의 윤리에 동의하지 않고 다른 삶의 방식을 실천하는 사람들에 대해 예의를 갖추어 존경과 긍휼의 태도를 보여주는 ‘신념에 찬 시민정신'(convicted civility)8을 실천해야 한다.
이러한 긴장을 효과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새로운 자신감을 보여주어야 한다.
- 아름다운 신비이자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델인 남자와 여자의 일부일처제 결혼 내의 성(엡 5장; 계 19, 21장)
- 신체적인 가정생활의 일상적 리듬에서 독신자들을 위한 실제적, 영적 지원과 함께 독신에 대한 높은 견해
- 모든 인간은 타락했고(창 3장) 하나님의 목적과 일치하지 않는 죄악된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수용
- 투명성과 겸손을 위한 정서적, 영적으로 안전한 장소인 교회, 신자들이 서로 나누고 지지하며 서로의 짐을 질 수 있는 교회
- 불건전한 욕망, 부자연스러운 성향, 불경건한 행동 사이의 차이를 분별하는 것. 우리는 그들의 욕망과 성향에도 불구하고 섹슈얼리티와 젠더 관련 이슈를 충실히 탐구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의 은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 탄력적이고 고결한 성품을 배양하는 데 있어 자제력의 가치
- 우리의 영광스러운 소망의 실재, 부활한 불멸의 몸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스러운 영생을 누리는 기쁨
교회는 하나님의 본질적인 성품인 선이 승리할 것을 기대하며 섹슈얼리티와 젠더에 관한 대화로 들어간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은 최종 목적지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인간의 섹슈얼리티 혹은 모든 수준의 완성에 대한 인간의 갈망(eros)은 그것이 오직 영원 속에서만 충족될 것이라는 보편적인 신호이다. 독신 생활과 결혼 생활의 순결을 통해 구현되는 기독교인의 소망은 우리를 신랑과 신부의 영원한 비전으로 인도한다.
참고문헌
- Harrison, Glynn (2016). A Better Story: God, Sex & Human Flourishing. London: Inter-Varsity Press.
- Jones, S., & Jones, B. (2019). How and When to Tell Your Kids About Sex: A lifelong approach to shaping your child’s sexual character. Colorado Springs, CO: NavPress.
- Patricia Weerakoon (https://youthworksmedia.net/search?q=patricia+weerakoon)
- The Center for Faith, Sexuality & Gender (https://www.centerforfaith.com)
- The Sexual & Gender Identity Institute (wheaton.edu/sgi)
- Stott, John R. W. (2017). Same-Sex Relationships. The Good Book Company.Yarhouse, Mark (2015). Understanding Gender Dysphoria: Navigating Transgender Issues in a Changing Culture. Downers Grove, IL: InterVarsity Press Academic.
주
- David L. Rowland & D. Uribe, ‘Pornography Use: What do cross-cultural patterns tell us?’ In Cultural Differences and the Practice of Sexual Medicine, eds. David L. Rowland and Emmanuele A. Jannini (New York City, NY: Springer, 2000), 317-334.
- 문화마다 가족을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다. 어떤 문화권에서는 남편, 아내 및 친 자녀로 구성된 핵가족에 더 중점을 둔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조부모, 삼촌, 이모 등의 대가족을 포함하기도 한다. 하지만, 두 개념 모두 공통의 유전적 조상을 우선시한다. 여러분은 공유된 DNA를 통해 가족과 연결되어 있다. 그 공유된 DNA는 무시할 수 없는 관계적 의무를 만들어냈다. 효도를 하지 않으면 ‘나쁜’ 식구가 되는 것이다
- 이성애적 난잡함, 소아성애, 젠더 불일치 경험, 그리고 동성애 관계는 현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유의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히려 이러한 현상은 역사와 문화 전반에 걸쳐 어느 정도 발생했다. 디다케(Didache)와 같은 초기 기독교 저술에서는 그러한 행위가 교회의 확장을 통해 서구 문화에서 비난받게 되었음을 암시한다(디다케, 2:2 참조).
- Carl Truman, The Rise and Triumph of the Modern Self: Cultural Amnesia, Expressive Individualism, and the Road to Sexual Revolution (Wheaton, IL: Crossway, 2020).
- 애나 브라운(Anna Brown), 성인 양성애자는 게이 남성이나 레즈비언에 비해 주변 사람들에게 “커밍아웃”(out) 할 가능성이 훨씬 낮다. 퓨 리서치 센터 (2019년 6월 18일) https://www.pewresearch.org/short-reads/2019/06/18/bisexual-adults-are-far-less-likely-than-gay-men-and-lesbians-to-be-out-to-the-people-in-their-lives/
- 이것은 섹슈얼리티나 젠더에 대한 다양한 경험이 그 자체로 항상 신적 정죄의 표시라는 의미는 아니다. 예수님은 성적인 죄를 승인하지 않으셨지만, 성적인 죄인들이 종교적 광신도들에 의해 형벌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셨고, 자신의 이름으로 죄인들을 용서해 주셨으며, 죄를 회개하고 성적으로 온전한 삶을 살도록 부르셨다(눅 7:36-50; 요 4; 고전 6:10-11 참조).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경험 중 일부는 타락의 결과(또는 타락으로 인해 가능해진)이지만, 개인의 고의적인 불순종의 결과는 아니다. 그러나 성과 젠더에 대한 이러한 종류의 반관계적 태도가 만연하고 이를 기념하는 것은 인류 역사에서 수없이 목격되어 온 사회적 쇠퇴의 징후이다.
- Glynn Harrison, A Better Story: God, Sex & Human Flourishing (London: IVP, 2016).
- Richard Mouw, Uncommon Decency: Christian Civility in an Uncivil World (Downers Grove, IL: IVP,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