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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자라는 개척 교회

즈미시에(Zmicier)와 안나(Anna)의 이야기

Sara Kyoungah White 01 8월 2022
로잔 스태프인 안나(Anna)와 남편 즈미시에(Zmicier)는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를 탈출해 폴란드에서 난민을 위한 교회 개척을 시작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한다.

2021년 12월 어느 이른 아침, 즈미시에와 안나 츠비다룩은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고함에 잠에서 깼다. 벨라루스 경찰이 들이닥친 것이다.

“무장한 사람들이 방패와 총을 들고 ‘바닥에 엎드려!’라고 외치고 있었어요. 마치 영화의 한 장면 같았죠” 즈미시에가 말했다.

경찰은 즈미시에를 구타하고 그들의 소지품을 뒤져 귀중품을 빼앗은 뒤 그를 차로 데려갔다. 차 안에서 그들은 테이저건을 사용해, 경찰이 그에게 예의를 갖추었다는 영상을 녹화하도록 강요했다.

“그는 15일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어요” 안나가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그가 그곳에서 나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즈미시에를 데려간 지 한 시간 후, 안나는 자신이 첫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는 전쟁이 발발한 최악의 상황에서 이 부부가 벨라루스에서 우크라이나로, 그리고 마침내 폴란드로 가는 고통스러운 몇 달간의 여정의 시작이었다.

피의 목사(The Bloody Pastor)

안나와 즈미시에는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인 알렉산더 루카셴코(Alexander Lukashenko)가 1994년부터 집권한 벨라루스 출신이다. 루카셴코가 선거(논란의 여지가 있는)에서 다시 한번 승리한 2020년부터 벨라루스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체포되거나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았다.

안나는 “벨라루스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에] 글을 올리거나 말을 하면 체포될 수도 있다는 현실 속에서 살고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츠비다룩(Chviedaruks) 부부가 표적이 된 이유는 2020년 이전에 즈미시에가 두 차례 구금된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투표소에서 부정행위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 것으로 구금되었고, 다음엔 벨라루스에서 발생한 폭력에 반대하는 다른 기독교인과 시위에 참여했다는 이유에서였다. 또한 과거 야당 운동에 가담했었기 때문에 범죄혐의 수사를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체포 후 15일 동안 즈미시에는 4인용의 작은 감방에서 20명의 다른 남자와 함께 갇혀 지냈다. “경찰 구치소의 상황은 끔찍했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마치 강제수용소와 같았죠.”

바닥에서 잘 때는 마치 ‘테트리스 게임’을 하는 것처럼 자야 했고, 간수들은 고문의 일종으로 매일 밤 2~3시간마다 수감자들을 거칠게 깨웠다. 대부분의 사람은 즈미시에처럼 30대였지만, 일부는 노인도 있었다.

끔찍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즈미시에의 감방에 있는 남자들은 교대로 물리학과 역사 같은 주제로 토론을 하기도 하고, 마피아 게임도 하는 등 긴밀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즈미시에는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같은 가치로 단결해 서로 도우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같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라고 회상했다.

즈미시에는 목사이면서 우크라이나의 복음주의 개혁 신학교(Evangelical Reformed Seminary)에서 공부하던 자신이 그들 중에서 유일한 기독교인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사람들이 너무 절망적이어서 기독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질문이 많았어요”라고 즈미시에는 말했다. 그들은 기독교 신앙, 즉 삼위일체와 얼마 남지 않은 성탄절에 대해 많은 토론을 했다. “출소 후에도 연락은 계속되고 있어요.”

“감방에서는 남편을 ‘피의 목사’라고 불렀다고 하더라구요.”라고 안나가 웃으며 말한다.

즈미시에는 감사하게도 12월 23일에 석방되었다. 그가 집에 돌아왔을 때 교인들은 부부에게 나라를 떠나라고 권했다. 즈미시에의 구금 이력 때문에 부부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몇 달 안에 벨라루스로 돌아오리라 생각하고, 2022년 첫날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피난처를 찾아 떠났다. 그러나 2월이 되자 전쟁이 임박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즈미시에가 공부하는 신학교의 총장은 우크라이나를 떠나라는 말을 들었다.

긴장은 계속 고조되고 안나가 임신중인 상황이라 즈미시에와 안나는 밸런타인데이인 2월 14일에 키예프를 떠나 폴란드 바르샤바로 갔다.

동유럽 난민을 위한 교회

“스스로를 난민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바로 그랬으니까요.”라고 안나가 말했다.

폴란드에서의 생활은 츠비다룩 부부를 포함한 벨라루스인과 우크라이나인에게 어려웠다. 언어도 모르고, 생활비는 비싸고, 공동체가 없다는 것은 그들이 매일 직면해야 하는 어려움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전세계 교회에서 도움과 지원을 받았다. 민스크, 키예프, 폴란드 및 전세계의 교회 공동체와 친구들이 모두 재정을 마련하고, 임시 주택을 제공해주며, 비자 지원과 기도로 츠비다룩 부부를 도왔다.

로잔 운동의 스태프인 안나는 “세계 교회 공동체는 이 전환기에 우리를 많이 돌봐주었고, 우리는 이곳에서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전쟁 발발 직후에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는 벨라루스 난민 팀

폴란드에서는 즈미시에와 안나가 처음으로 벨라루스와 우크라이나의 난민들이 바르샤바에 오는 것을 도왔다. 즈미시에는 또한 동유럽의 뉴스를 취재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기자로 잠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곧 폴란드에 있는 난민들에게 교회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고, 전임 사역을 시작했다. 그는 지금 바르샤바에 있는 민스크의 선교사 친구와 목사와 함께 교회 개척을 위해 일하고 있다.

즈미시에와 교회 개척 팀은 바르샤바에서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동유럽인들에게 복음 중심의 교제와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교회를 구상하고 있다. 도시에 있는 소수의 폴란드어를 사용하는 교회는 언어와 문화적 장벽으로 인해 동유럽인이 참석하기 어렵고,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복음주의 교회는 역사적으로 가톨릭 전통의 국가에서 찾기 어렵다.

즈미시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바르샤바에 교회를 세우기 원한다.

첫째, 자신들과 같이 독특한 경험을 가진 난민과 이주자들을 보살피기 위해서다. 많은 사람이 투옥과 고문, 상실에 대한 유사한 충격적인 경험을 가지고 있다.

둘째, 복음 중심의 공동체를 위해서다. 교회는 동유럽 지역의 공용어인 러시아어로 진행되기 때문에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러시아어를 사용하는 교회의 교인이 되기를 원하는 여러 나라 사람들이 참석할 예정이다. 많은 우크라이나인과 벨라루스인이 자신의 언어를 선호하지만, 러시아어는 여전히 많은 사람이 이해하는 유일한 언어이다.

안나는 “모든 종류의 국적 사이에 이 커뮤니티가 어떻게 형성되는지 보는 것은 흥미로울 거에요.”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벨라루스인과 우크라이나인 사이에는 약간의 정치적 긴장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하실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소풍을 나온 교회의 소그룹

셋째, 전도를 위해서다. 어려움과 혼돈, 고통은 바르샤바에 있는 많은 비기독교 난민에게 반성의 기회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벨라루스에서 부유하거나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은 평균적으로 스스로를 자수성가한 사람, 성공한 사람 등으로 생각해요.”라고 즈미시에는 말했다. “하지만 삶이 더 어렵고 복잡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계속해서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교회가 영구적인 모임 장소를 찾고 있는 이러한 초기 단계에서도 즈미시에와 안나는 공동체가 세워지고 신앙이 깊어지는 고무적인 징후를 본다.

즈미시에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사실에 정말 감동받았어요.”라고 회상했다. “저는 모든 것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과 같은 그의 섭리에 놀랐어요.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미지의 땅에서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격려가 됩됩니다. 토요일에 성경 공부를 하면서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등 여러 나라의 신자와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놀라워하는 모습을 보니 힘이 납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이 혼란 가운데 있지 않고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주거든요. 이것은 모두 그분의 영광 가운데 있는 일이에요.”

삶과 죽음, 몸과 영혼

“우리 모두에게는 우상이 있어요. 벨라루스가 나에겐 가장 큰 우상 중 하나에요. 왜냐하면 전 정말 벨라루스에 변화가 있기를 원하거든요. 그래서 내 모든 감정과 힘을 벨라루스에 관련된 일에 쏟고 있었죠.” 즈미시에가 말했다.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가장 많이 화가 나 있고 실망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내 인생은 엉망이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과 대답을 인용한다.

Q. 삶과 죽음에서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A. 나는 내 것이 아니요, 살든지 죽든지 몸과 영혼이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해 있다. 그분은 당신의 보배로운 피로 내 모든 죄를 다 갚으셨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다. 그분은 또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이 없이는 머리카락 하나도 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신다.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야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그의 성령으로 나에게 영생의 확신을 주시고, 지금부터 이후로 그분을 위해 살 마음의 준비가 되도록 도와주신다.

“몇 달을 지내면서 하나님을 아는 것이 사람에게 가장 큰 격려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의 난민 생활과 겪은 모든 어려움은 우리가 바르샤바에 오기 전이나 경찰이 우리 아파트에 들이닥치기 전보다 더 하나님을 알게 되는 데 도움이 되었어요.”

안나에게 지난 2년은 저항 운동과 압제 정권을 선과 악이라는 흑백 논리로 보는 관점에서 하나님의 더 큰 관점을 통해 보는 더 열린 마음으로 그녀를 인도했다.

“하나님은 내가 사물을 보는 방식이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주셨고, 즈미시에와 저에게 말씀을 통해 정말 겸손하게 하셨고 그의 관점을 보여주셨어요. 하나님은 항상 그의 관점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내가 그의 관점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지, 그에게 나의 관점을 강요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주된 사랑과 근거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어요”라고 그녀는 말했다. “우리는 공동체와 국민, 국가, 땅, 이 모든 것을 원하지만 이 모든 것이 주된 사랑과 근거가 될 순 없어요. 비록 우리는 벨라루스의 집을 그리워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알아요.”

바르샤바에 있는 안나와 즈미시에의 교회 공장에서의 최근 예배 스냅샷.

함께 기도해주세요

By 사라 화이트(Sarah White)

사라는 지난 몇 년 동안 부부와 함께 여행한 안나의 로잔 동료이자 친구이다.

하나님 아버지, 지난 6개월 동안 그들이 직면한 이 모든 파괴와 전환 속에서 안나와 즈미시에 및 그들의 아기를 안전하게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새로운 도시에 있는 난민들에게 안전한 피난처와 열린 마음을 마련해 주셨고, 또한 그들과 비슷한 과도기적 삶의 단계에 있는 이들과 함께 새로운 사역을 형성하도록 부르심에 감사드립니다.

그들이 열린 손과 마음으로 이 새로운 사역을 시작할 때, 육체적으로나 감정적으로 계속 그들을 보호해 주십시오. 그들이 교회를 개척하고 목양하는 이 새로운 삶의 단계에 들어갈 때 안식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고민과 절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이 교회로 인도하시고, 즈미시에와 안나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그들과 나누게 도와주시옵소서. 그들이 난민을 섬기는 데 필요한 지혜와 방향을 당신에게 구할 때, 그들과 그들의 사역을 축복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