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는 무엇인가?

돌아가다 공동체는 무엇인가?

종족주의

Soojin Chung, Alice Yafeh-Deigh & David Chao

이스라엘은 민족적으로 단일하지 않았다. 그리고 성경은 명백하게 종족주의(ethnicism) 또는 종족중심주의(ethnocentrism)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누가복음 10장 33절에서,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는 이방인 사마리아인이 자비의 본보기를 보였다. 누가복음 17장 16절에서, 예수님께서 열 명의 나병 환자를 치유할 때, 사마리아인만이 겸손한 감사의 마음으로 예수께 돌아왔다.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사람들의 언어를 그들의 피부색이나 신체적 특성이 아닌 가족 관계와 부족에 따라 혼란스럽게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불행하게도, 역사를 통해 많은 사람이 성경을 잘못 해석하여 종족 및 인종 차별을 정당화했다. 한 예로, 창세기 9장에서 종들의 종이라는 가나안의 저주가 아프리카인의 노예화를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다. 많은 사람이 저주받은 함의 후손이 인종적으로 흑인이라고 믿었다. 이 글에서는 종족주의와 기독교의 역사를 살펴보고 교회와 대위임령을 성취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함의를 논의하고자 한다. 

세계 기독교에서 종족주의의 역사

라틴 아메리카

역사적으로 기독교는 종족주의를 정당화하거나 종족주의를 반대하는 데 모두 사용되었다. 인종과 종족 문제는 특히 식민지 시대와 탈식민지 시대의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두드러졌다. 16세기 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정복자들이 새로운 대륙을 정복했을 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종교적 십자군으로 간주했고 무력으로 원주민을 기독교화했다. 또한, 그들은 원주민을 노예화하고 경제적으로 착취했다. 1552년, 도미니카 수도사인 바르톨로메 데 라스 카사스는 그의 저서 원주민 파괴에 관한 간략한 기록에서 원주민 노예화의 참상을 비판했다. 그의 출판물은 원주민 노예 제도의 폐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원주민 노동력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착민들은 1650년부터 1860년 사이에 아프리카 노예를 라틴 아메리카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아프리카 노예 산업은 원주민, 아프리카인, 유럽인 간의 인종 혼합을 초래했다. 엄격한 인종 계급이 형성되었고, 원주민과 아프리카 노예는 심하게 차별받았다. 스페인과 포르투갈 정착민들의 인종적 태도는 700년대에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한 무슬림에 대한 그들의 종교적 십자군 전쟁 기간에 형성되었다. 유럽 기독교인들은 북아프리카에서 온 피부가 검은 무슬림을 침략자로 보고 검은 피부와 이교도를 연관시키기 시작했다. 재정복 기간에, 이베리아반도에서 검은 피부의 무슬림에 대한 승리주의와 증오가 절정에 달했다. 인종과 종교는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었고, 스페인과 포르투갈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기독교 신앙과 ‘혈통의 순수성’을 정당화했다. 원주민과 아프리카 노예는 완전한 영적 통찰력을 가질 수 없는 열등한 존재로 취급되었다. 그들은 많은 시민적, 종교적 특권에서 배제되었고 유럽계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었다. 그들은 성직에 서거나 종교적 공동체에 가입할 수 없었다. 비록 인종 계급제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종족주의는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록 인종 계급제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지만, 종족주의는 오늘날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를 토착화하고 인종 해방을 가져오는 새롭고 창의적인 방법을 계속 발견했다. 주요 예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토착화된 성모 마리아인 과달루테의 성모(Lady Guadalupe)가 있다. 전통적으로 멕시코 시티에서 가난한 원주민 노동자인 후안 디에고에게 성모 마리아가 나타났다고 믿는다. 성모 마리아, 또는 과달루페는 라틴 아메리카 옷을 입은 원주민 여성이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을 위한 희망과 자비의 메시지를 전하며 정착민들로부터 폭력을 겪은 원주민 기독교인들에게 위안을 주었다. 과달루페의 성모는 라틴 아메리카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자비, 희망, 인종 해방의 상징으로서 역할을 한다.

아프리카

인종 문제는 특히 남아프리카에서 아프리카의 교회 역사에 깊이 얽혀 있다. 1948년, 아파르트 헤이트(apartheid)가 공식 법으로 확립되어 남아프리카 시민들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다. 아파르트헤이트는 인종 분리를 의미하며, 사람들은 인종에 따라 분류되었고, 강제적으로 인종 별로 거주하도록 했다. 1950년대에는 아프리카인들에 대한 경제적, 교육적, 정치적, 종교적 제한을 두는 일련의 법률이 제정되었다. 많은 아파르트헤이트 옹호자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성경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교회 지도자들도 인종 분리를 지지했다. 아파르트 헤이트를 지지하는 종교인들은 바벨탑 비유를 사용하여 사람들은 다르게 창조되었고 하나님이 분리를 원하셨기 때문에 교회를 포함한 모임들은 인종에 따라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82년 개혁교회 세계연맹(World Alliance of Reformed Churches,, WARC)이 인종 분리를 지지하는 것은 이단이라고 선언하면서 아파르트헤이트는 반대에 부딪혔다. WARC는 공통 인류의 연합, 특히 기독교인들의 연합을 강조하였다. 1985년에는 주로 흑인 남아프리카 신학자들이 해방신학에 기초하여 카이로스 문서(Kairos Document)를 발표했다. 세계의 다른 지역들도 남아프리카의 인종 부정의에 반대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교회와 기업들은 투자 철회와 경제적 보이콧을 시작했다. 남아프리카는 세계은행 시스템에서 대출을 거부당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1990년 남아프리카 대통령 F.W. 드 클레르크가 넬슨 만델라를 감옥에서 석방하면서 공식적으로 종식되었다. 넬슨 만델라는 아프리카 국민회의의 지도자로서 27년간 수감되어 있었다.

데스몬드 투투와 넬슨 만델라는 1996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를 창설했다. TRC의 궁극적인 목표는 용서와 화해였지만, 투투는 진정한 치유와 화해가 고백과 회개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천명했다. 많은 아프리카 국가는 모든 인류의 상호 연결성을 의미하는 ‘우분투(ubuntu)’ 철학을 믿는다. 이 이념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서로 간에 의존적이고 상호 책임이 있으며 종교적 경험의 공동체적 측면을 강조한다. 또한 투투는 TRC의 주요 신학적 동력으로 우분투를 활용했다. 전 세계적으로 종족중심주의, 인종 차별, 외국인 혐오가 여전히 문젯거리이며, 교회는 예언적 역할을 해야 하는 능력과 책임이 있다. Pew Research에 따르면, 젊은 세대는 그들의 신앙과 사회적 책임 사이의 연결을 더욱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2050년까지 교회의 종족주의와의 투쟁에 대한 참여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적으로 종족중심주의, 인종 차별, 외국인 혐오가 여전히 문젯거리이며, 교회는 예언적 역할을 해야 하는 능력과 책임이 있다.

세상과 교회에 대한 종족주의의 함의

2050년에 다가가면서 종족성, 세계화, 다양성의 만남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 섹션은 종족성이 글로벌 다이내믹스, 기독교 교회, 그리고 대위임령의 재해석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고자 한다.1 종족성은 다양성 속의 통일을 추구하는 세계 교회의 선교에 도전과 기회를 제시한다. 이 시대는 교회가 결정적으로 종족 정체성, 글로벌 상호작용, 그리고 복음 전도 접근 방식을 다룰 수 있다. 주요 도전 과제는 식민지 시대의 억압 안에서 교회의 역사적 역할이다.2 이러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세계 평화, 효과적인 복음 전도, 그리고 종족 집단 간의 제자 훈련을 촉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하다. 종족성의 복잡한 영향을 이해하는 것은 다원적 세계에서 대위임령을 수행하기 위해 미래의 전략을 수립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이다. 

세상에 미치는 영향

세계화가 점점 증가하는 상황에서 종족주의는 글로벌 사회정치적 환경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2050년까지 교회의 대위임령 사명에 영향을 준다. 기술 진보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화는 상호연결성을 촉진하여 종족 그룹 간의 아이디어와 전통의 교환을 촉진한다. 이는 상호 간의 장벽을 감소시키고 효과적인 소통과 협력을 촉진하여 대위임령의 근본적인 목표 달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는 교차 문화적 대화(cross-cultural dialogue)를 장려하고, 교회가 경계를 넘나들 면서 사회적 참여를 하는 공동체로 만들어 주고, 종족적 경계를 넘어서 복음을 수용하게 만든다.3 

종족성은 다양성 속의 통일을 추구하는 세계 교회의 선교에 도전과 기회를 제시한다.

그러나 세계화는 또한 종족 간의 갈등과 분열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우세한 문화와 국제 기업은 특정 그룹을 소외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주는 사회적 이탈, 불관용, 차별을 초래할 수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은 교회의 사명에 도전하며, 불신과 적대감을 조성하고 충돌하는 집단 간에 복음 전파를 방해한다. 종족주의가 통합과 분열을 동시에 가능하게 한다는 이중적 잠재력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관계와 종교적 사명을 형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완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에 미치는 영향

개발 도상국에서의 선교 활동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를 지속시킨다는 비판을 받아왔다.4 이러한 활동은 종종 식민지 프로젝트의 일부로 여겨졌으며, 현지 문화를 열등하다고 여기며 악마화(demonizing) 했다.5 무사 두베(Musa Dube)와 조지 M. 소아레스-프라부와(GM Soares-Prabhu)와 같은 비평가들은 선교사들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제국의 대리인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활동은 문화적 지배를 위 함이었고 외국의 가치와 규범을 강요하고 원주민 문화와 언어를 약화했다.6 그들의 목표는 단순히 개종뿐만 아니라 서구 기준에 맞춘 문화적 동화였으며, 식민자들의 지배력을 강화했다.7

또한 대위임령의 성별적 특성(the gendered nature)을 포함하여 역사적 관점을 다룰  필요가 있다. 탈식민지 시대에 이 대위임령은 가부장적 구조를 강화하는 데 사용되어, 여성의 목소리와 종교적 경험을 소외시켜 버렸다.8 결과적으로 많은 탈식민지 공동체는 대위임령을 식민지적이고 가부장적인 유산과 분리하여 재해석했다. 그들은 대위임령을 사회적 정의, 해방, 그리고 교회 내에서 원주민 문화와 여성 리더십의 확인을 위한 부름으로 생각했다.

2050년을 향해 나아가면서, 세계 교회는 특히 대위임령이 어떻게 인식되고 실행되는지에 대하여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된다. 다양한 인간 경험에 의해 영향을 받는 더 역동적인 대화로의 전환을 희망한다. 대위임령의 선교 명령은 지속적인 상황화, 재해석 및 현지 문화의 역사와 정체성의 지지를 위하여 계속해서 변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목표는 더 포괄적이고 문화적으로 민감한 대위임령의 해석을 촉진하고, 점점 더 상호 연결된 동시에 다양한 세상과 대위임령의 연계성을 강화하는 것이다. 

대위임령에 미치는 영향

종족주의 맥락 안에서 대위임령은 중요한 해석상의 도전을 제시한다.9 성경의 상황적 틀 내에서 대위임령을 해석하는 것은 중요하고, 특히 2050년까지의 복음 전도에 대한 함의와 관련해서도 중요하다. 이 논의의 중심은 창세기 1장 26–27절의 유대적 기독교의 신념이다. 즉,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하며, 종족성에 관계없이 개인의 본질적 가치를 확립한다. 이 원칙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눅 10:25–37)10에서도 반복되며, 종족적 편견을 해체하고 모든 이웃에 대한 희생적 사랑을 강조한다. 이러한 내러티브는 문화 간 대화와 상호 존중으로 인도해 준다. 

사도행전은 추가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 베드로의 깨달음(행 10:34–35)11은 하나님의 공평함을 강조하고, 포용성을 촉진하여, 종족 중심적 편견에 맞선다. 예루살렘 공의회의 결의(행 15장), 갈라디아서 3장 28절, 고린도전서 9장 20–23절의 신학적 주장은 기독교 참여를 위한 포괄적 패러다임을 제시하며,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전복하고, 종족 중심주의에 도전하면서, 개인의 종족 문화적 정체성을 보존한다.12 

종족주의는 다른 문화 간의 교량을 놓고 초문화 선교에 참여하는 긍정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종족주의는 다른 문화 간의 교량을 놓고 초문화 선교에 참여하는 긍정적인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요한계시록 7장 9절13에 나타나 종말론적 비전은 종족 경계를 초월하는 믿음의 공동체의 예시로 들 수 있다. 교회에 대한 종족주의의 도전을 고려할 때, 성경적 모델은 각 사람의 본질적 가치를 인식하고 종족 간의 연합과 상호 이해를 옹호하도록 장려한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2050년 및 그 이후의 글로벌 기독교 증거와 전도의 맥락 안에서 종족 관계를 다루기 위한 신학적 기반의 전략을 제공한다.

기독교 상황 내에서 대위임령에 대한 이해는 특히 식민지 이후의 상황에서 상당히 진보했다. 선교사들은 전 세계적으로 교육과 보건을 발전시킨 공로가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식민지 권력과 연계하여 현지 문화와 가치를 혼동시킨 사건들로 인하여 역사적 오점을 남겼다. 이러한 연관성은 기독교 선교가 식민지 억압의 도구라고 표현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종족 주의가 부상하면서, 교회는 중대한 순간을 직면하고 있다. 종족주의의 부상은 글로벌 커뮤니티와 종교적 상황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러한 종족주의에 영향을 받은 전 세계적인 흐름들은 교회가 대위임령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다양하고 복잡한 영향을 미친다. 격차를 해소하거나 확대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미래는 교회의 역량, 즉 그들이 섬기는 공동체의 경험에 공감하는 신학과 선교적 윤리를 개발하는 데 달려 있다. 이러한 신학적 윤리는 대위임령의 핵심인 화해, 치유, 자기 헌신적 사랑, 회복적 정의라는 하나님의 사명에 부합하면서 변혁적이어야 한다.

도전과 기회

로잔운동의 사명은 복음을 선포하고, 제자를 삼고, 그리스도를 닮은 지도자를 세우며, 모든 종족과 장소에 하나님 나라의 영향을 미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는 다양한 종류의 민족 집단이 존재한다는 개념을 전제로 한다. 선교적 운동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는 시간과 공간에 따라 사람들이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이 차이를 설명하는 한 방법은 인종-민족(race-ethnic) 카테고리를 통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인종-민족 카테고리가 지리, 역사, 문화 및 정치경제의 물질적 차이에 의해 생성된다고 본다. 저자의 경우는, ‘인종(race)’은 형태적 차이에 따른 사회적 정체성의 구성을 의미한다. 반면에, ‘종족성(ethnicity)’은 문화와 관련하여 사회적으로 구성된 정체성을 의미한다. 이 글에서는 문화의 주요 특징인 언어 사용에 중점을 둘 것이다. 더욱이 저자는 ‘종족주의’를 ‘자민족 중심주의(ethnocentrism)’와 ‘인종주의(racism)’와 유사한 사회적 도전으로 간주한다. 민족주의, 민족 중심주의 및 인종주의는 기독교 교회가 피하고 개선해야 할 사회적 병폐이다. 

복음의 보편성에 초점을 맞추기

종족주의의 관점에서 대위임령이 직면한 두 가지 과제가 있다. 대위임령에 대한 첫 번째 도전은 복음의 보편성 개념이다. 즉, 복음은 종족적 특수성에 의해 구별되지 않고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8절을 보면,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라고 명시한다. 즉, 기독교 복음은 보편적이라는 건 사실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동시에 우리가 이 복음을 증거할 때 항상 특정 지역의 상황과 문화 안에서 소통이 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우리는 결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사람들의 언어로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 복음은 오직 특정 지역 문화와 언어를 통해서만 선포된다.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에 포함되는 것은, 오직 지역 문화의 언어 내에서 성령님의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특징은 무한한 번역 가능성(Lamin Sanneh))이 있다는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특정한 상황화된 방법을 통해 전달된다. 따라서 우리가 대위임령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보편적인 매력을 항상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구현된 의사소통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대위임령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언어가 아닌) 지역 언어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종족성의 중요하고, 중대하며, 필수적인 역할을 인정해야만 한다. 기독교 신앙의 문화-언어적 특성(George Lindbeck), 그리고 그에 따른 복음의 사회적, 민족적 구체화는 대위임령과 기독교 신앙을 전달하기 위해 타협할 수 없는 특징들이다. 만일 우리가 대위임령의 보편적 측면을 강조하고 대위임령의 모든 노력에서 적절한 종족 특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특정 민족을 향한 복음 증거를 가리게 될 것이다. 구원의 복음을 위해서 비상황적인, 실체가 없는, 혹은 보편적인 증거란 존재할 수 없다. 

기독교 정체성과 민족 정체성의 혼동

대위임령에 대한 두 번째 도전은 첫 번째 도전의 정반대이다. 일단 기독교를 특정 민족들이 사용하는 특정 언어로 구현된 문화-언어적 종교로 간주하면, 그 민족 정체성이 기독교 정체성과 동일시되는 유혹(즉, 대위임령에 대한 도전)이 있다. 이것은 덴마크 루터교에서 세렌 키르케고르가 불평했던 국가적으로 확립된 기독교 명목주의 형태일 수 있다. 혹은 미국과 같은 곳에서 점점 더 분명해지는 기독교 민족주의와 같은 해로운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 키르케고르의 시대에 루터교인이나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단순히 덴마크인이 되는 것을 의미했으며, 그 결과 명목상 기독교인만 존재했다(명목주의).

특정 민족 및 인종 정체성이 기독교 정체성과 얽히는 현상은, 민족 그룹들을 넘나드는 보편적 성격의 기독교 정체성을 부분적으로 상실했기 때문이다. 회심이란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 백성의 경계로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매우 정당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삿 20:2, 삼하 14:13; 히 4:9; 계 21:3).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이란 새 언약(렘 31:31-34)을 통해 마음에 새롭게 쓰인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새로운 백성임을 언급한다. 학자들은 종족성에 관한 이러한 기독교적인 언어를 일종의 민족적 추론이라고 지칭했다(데니스 뷰엘: Denise Buell). 기독교 정체성이 민족-인종 정체성과 융합될 때, 민족-인종 정체성은 문제가 있는 세례를 받고 신성시된다. 그러면 인간 영혼의 죄를 성령의 탓으로 돌리며, 이는 그리스도 몸의 집단적 증거를 손상시킨다. 

첫 번째 도전에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민족적 정체성이 기독교인으로서의 정체성과 세상에서 선을 행하고자 하는 열망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지 망각한다. 두 번째 도전에서,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특정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고 기독교 수사학을 통해 다른 민족을 지배하고자 한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 기독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맹목적으로 보편화하고 유해한 특정한 도전들의 진퇴양난을 통과해서 나아가는 길은 기독교 신앙의 보편적이고 특수한 특성을 올바르게 조정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길은 둘 중 하나의 선택 문제가 아니다. 기독교는 둘 다 필요하다. 즉, 기독교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과 변혁을 가져다 주는 보편적 종교임과 동시에, 기독교는 항상 특정 문화-언어적 관행을 가진 지역 공동체에서만 뿌리를 내린다. 이것들은 서로 경쟁하거나 배타적이지 않다. 종족 정체성은 기독교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한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인 기독교 정체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 정체성은 종족 정체성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하지만 기독교 정체성이 단순히 민족 정체성으로 환원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독교 신앙의 보편적인 측면과 특정한 측면을 조화시키는 핵심 기제는, 서로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공간과 시간을 넘어서는 기독교적 관습으로 상호 인식하는 교회의 사회적 관행이다. 이것은 그리스도 몸의 성령 충만한 보편성(catholicity)에 대한 주장이다. 대위임령의 과제는 하나의 주님이자 구원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 지속적으로 빛을 비추는 성령님의 급진적이고 경계를 넘는 일을 인식하는 것이다(J.I. 패커).

때로는 영적 분별력과 인식이 요구되는 보편적 교회에 새로운 도전이 있다. 이 인식은 선험적으로 결정될 수 없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모임에서 기도와 교제를 통해 영적으로 분별 되어야 한다. 상업과 기술을 통해 우리의 세계를 축소하는 글로벌 운동이 일어남에 따라, 여전히 소외되고 지배를 받는 민족 집단의 착취와 지배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성령님의 일하심을 분별하는 영적 분별은 2024년 제4회 로잔대회와 같은 모임에서 계속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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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위임령의 선교학적, 신학적 근거는 마태복음 28:19-20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명령에 요약되어 있다. 하지만 ‘대위임령’이라는 용어는 현재 기독교 신학과 선교에서 전문 용어로 사용된다. 특히 19세기에 개신교 선교 운동 중에 이 용어는 대중화되고 표준화되었다. 이 본문은 선교사, 전도사, 신학자들이 선교적 의무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주었다. 중국 내지 선교회의 창립자이자 중국에서 사역한 침례교 선교사 허드슨 테일러는 종종 대위임령를 실행한 예로 인용이 된다. Cf. “The Bible in Hudson Taylor’s Life and Mission, Part 1 & II” Global China Center, https://www.globalchinacenter.org/analysis/2014/03/28/the-bible-in-hudson-taylors-life-and-mission-part-ii
  2. Cf. Musa Dube,; Pui-Lan Kwok, Postcolonial Imagination and Feminist Theology (Louisville:
  3. Cf. Daniel Patte, “Reading Matthew 28:16-20 with Others: How It Deconstructs Our Western Concept of Mission,” HTS 62 (2006): 521–557; Choan Seng Song. Theology from the Womb of Asia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5);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Mt 28:19a): A postcolonial perspective on biblical criticism and pedagogy,” in Teaching the Bible (ed. Fernando Segovia and Mary Ann Tolbert; Orbis Books: Maryknoll, NY, 1998); 224–245.
  4. Cf. Dube,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Song. Theology from the Womb of Asia; Young Chung, “A postcolonial reading of the Great Commission (Matt 28:16-20) with a Korean myth,” Theology Today 72 (2015): 276–288. https://doi.org/10.1177/0040573615601466
  5. Cf. Kwok, Postcolonial Imagination & Feminist Theology, 61.
  6. Cf. 두베, “그러므로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마태복음 28:19a)”; 소아레스-프라부는 기독교 선교란 “선교사의 복지보다는 선교의 확장에 더 몰두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마태복음 구절의 전통적인 승리주의 해석을 강하게 비판했다.
  7. Cf. Musa, “Go therefore and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Mt 28:19a)”; Rs Sugirtharajah, “A postcolonial exploration of collusion and construction in biblical interpretation,” in The Postcolonial Bible (ed. Sugirtharajah RS. “Sheffield: Sheffield Academic Press, 1998): 91–116; The Bible and the third world: Precolonial, colonial and postcolonial encounters,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1); Darren Cronshaw, “A Commission ‘Great’ for Whom? Postcolonial Contrapuntal Readings of Matthew 28:18–20 and the Irony of William Carey,” Transformation, 33 (2016): 110–123. https://doi.org/10.1177/0265378815595248
  8. See Mercy Amba Oduyoye, Daughters of Anowa. African Women and Patriarchy (Maryknoll (N.Y.): Orbis Books, 1995);Pui-Lan Kwok, Postcolonial Imagination and Feminist Theology (Louisville:
  9. 라민 사네는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의 선교 활동의 복잡한 수용 역사를 인정하였다. 동시에 선교 활동의 식민지 유산과 현지인 공동체가 현지 자치와 문화 보존을 정당화하기 위해 “대위임령”을 어떻게 재활용하였는지 광범위하게 조사하였다. 또한 사네는 성경을 현지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 기독교를 토착화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의 획일화에 맞서고자 현지 문화와 방언을 활성화하고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올바르게 지적하였다.
  10. 누가복음 10장 34~35절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는 종족을 초월한 사랑을 강조한다.
  11. 사도행전 1장 34-35절: ‘이에 베드로가 그들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백성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NRSVUE). 사도행전 10장 34-35절은 하나님의 공평하심과 포용성을 강조한다.
  12. 예루살렘 공의회와 갈라디아서 3장 28절과 고린도전서 9장 20~23절의 가르침은 포괄적인 기독교 패러다임을 제공한다.
  13. 요한계시록 7장 9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옷을 입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NRSV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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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약력

Soojin Chung

정수진 박사는 프린스턴 신대원 해외 사역 연구 센터 소장이자 국제 선교 연구 소식지 편집장이다. 그녀는 제럴드 H. 앤더슨 강연을 주최하고, 역사 및 에큐메닉 학과에서 강의 중이다. 2021년에 '하나님을 위한 입양’을 저술했다. 현재 그녀는 세계 기독교에서의 인종주의, 종족중심주의 및 외국인 혐오를 연구하고 있다.

Alice Yafeh-Deigh

앨리스 야페-데이 박사는 캘리포니아의 아주사 퍼시픽 대학의 종교학 교수이다. 그녀는 포용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데 열정적이며, 수업에서 공정성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앨리스는 성경의 타문화 해석을 강력하게 옹호하며, 다양한 성경 번역 이니셔티브에 참여하고 있다. 인권 컨설턴트로서 그녀는 카메룬의 소외된 아동을 지원하는 교육 정책 개발에 참여하고 있으며, 특히 장애를 가진 아동들을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David Chao

데이비드 C. 차오 박사는 프린스턴 신대원 아시아계 미국 기독교 센터 소장이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 신학 과정을 강의하고 아시아계 미국인 신학과 사역 프로그램을 조직한다. 그의 연구와 저술은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일반 아시아계 기독교인들의 신앙과 실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의 종교 생활과 정치에 대한 그의 연구는 헨리 루스 재단과 루이빌 연구소에서 자금 지원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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