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약

선교를 위한 제자 형성과 선교로써의 제자 형성

28 6월 2024

Editor's Note

이 글은 Steve Bryan, Simon Chan, Tom Schwanda, Jonathan Black, Ingebjørg Nandrup, Eiko Takamizawa, Finny Philip, Charles Ringma, Paul Choi가 저술한 로잔 주제연구 보고서(Lausanne Occasional Paper, LOP) 75번의 요약본입니다. 보고서의 전체 내용은 여기에서 확인하세요.

이 글의 필요성은 널리 알려진 두 가지 문제에서 제기된다. 첫째, 선교의 목적 또는 선교의 결과와 관련하여 살펴볼 수 있는데, 낮은 수준의 영적 성숙도, 기독교적 형성의 결핍, 그리고 세계 복음주의 운동 내에서 빈약한 제자도의 증거가 그것이다. 둘째, ‘성공적인’ 선교는 하나님과의 중요한 관계가 부족한 사람들에 의해 수행될 수 있고 종종 수행되지만, 기독교 지도자들의 영적, 도덕적 실패는 궁극적으로 세상 속에서 교회의 증거를 무디게 하고 다른 기독교인들이 걸려 넘어지게 한다.

이 글의 맥락은 넓게는 세계 복음주의 운동과 영적으로 길을 잃고 깨어진 세상을 향한 선교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 글의 맥락은, 1974년 세계를 향한 복음주의 선교를 촉진하고 강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으로 시작된 로잔운동(이하 LM)이다. 곧바로 선교를 주로 선포로 이해해야 하는지, 아니면 사회적 관심과 정의의 문제도 포함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로잔운동은 이 질문에 대한 일종의 양쪽 모두에 대한 대답을 내놓았지만, 질문의 틀 자체가 선교의 결과(outcome of mission)로써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선교의 대리인(agents of mission)으로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크게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이 글의 초점(focus)은 선교와 제자 형성의 관계이다. 이 관계의 본질에 관한 생각에는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이 글의 목적은 선교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선교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영적인 삶의 중요성을 고려하는 것이다. 이 글은 선교가 하나님과의 생명력 있는 관계에 깊이 뿌리를 둔 사람들이 해야 하며, 선교의 궁극적인 목표는 한 민족의 형성, 즉 하나님께서 제자로 세우시는 사람들을 지역 교회로 모으는 것이라는 두 가지 확신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이 글의 논지(thesis) 성경에 제시된 선교의 목표가 예수님의 제자를 삼는 것이며, 이 목표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삶, 죽음, 부활, 승천의 복음에 부합하는 삶의 방식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즉, 선교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제자를 형성하는 것을 바른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에 의해 거룩한 삶의 방식으로 형성된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 지역 교회는 이러한 방식으로 추구하는 선교의 목적이자 수단이다.

만일 우리가 제자도의 성경적 의도를 파악할 수 있다면, 제자도가 지역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주님의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을 포함하여, 기독교인의 형성으로써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또한, 대위임령은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의 방식을 전수하는 가르침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궁극적으로 기독교인의 형성과 제자도의 목표는 성경적 거룩함(즉,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다. 기독교인의 형성과 제자도는 단순히 복음전도와 사회적 긍휼만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기독교인의 형성과 제자도는 도덕적 변화와 하나님과의 친교와 더불어 기독교적 거룩함의 필수적 측면으로서 복음전도와 사회적 긍휼 모두를 촉진한다.

제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가운데 자기를 부인하고 생명을 내어놓는 사람으로 항상 십자가 아래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도의 모습이다. 누가복음 9장 25절에 나오는 예수님의 경고는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 특히 모든 기독교 지도자가 귀담아들어야 하는 말씀이다. 만일 그리스도를 닮지 않고 십자가의 모양이 아니라면, 성공처럼 보이는 것이 치명적일 수 있다. 

기독교 제자도는 인지적, 정서적, 관계적, 신체적, 도덕적/윤리적 다섯 가지 차원에서 각각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성장하는 것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기독교인은 항상 성장하는 과정에 있다. 우리의 형성은 하나님 지향적이면서도 타자 지향적이며, 기독교인의 성숙함과 제자 삼기, 그리고 교회와 세상에 대한 섬김 모두를 적절하게 이끌어낸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제자는 다가올 시대의 권능을 누리는 사람들이며, 영생을 얻었다. 하나님의 나라는 완전하지는 않지만, 우리 가운데 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며,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 그 안에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 백성과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성취를 향해 나아간다. 따라서 제자도는 세상에는 너무 늦었고 천국에는 아직 이르지만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실 모든 것을 이미 기대하며, 지금 여기에 깊이 관여하는 한편, 그 자체를 넘어선다. 즉, 제자들은 하나님의 최종적인 미래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살아가며 기도하고 섬긴다. 

그리스도의 교회가 21세기의 2분기에 접어들면서, 우리는 모든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과업을 맡은 사람들이 스스로 제자로 살아가야 하며, 모든 민족을 향한 선교의 올바른 목표는 좋은 소식을 듣고 믿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형성하는 것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긴박한 필요를 느낀다(마 28:18-20). 이를 위해, 우리는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응답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촉구한다.

우리는 제자 형성을 선교의 목표로 삼지 못하고 선교를 위한 제자로 형성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교 과업은 단순히 기독교 신앙 고백을 안전하게 확보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의 과업은 십자가에 달리신 메시아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 메시지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자주 이런 방식으로 살지 못하고 이러한 목적을 추구하는 데 실패했으며, 그 결과 지도자들의 재정 관리의 실패, 성추문, 학대 그리고 복음주의 교회의 영적 빈혈과 미성숙을 초래했다. 우리는 이러한 실패를 애통해하며 겸손히 회개한다.

우리는 로잔운동의 유산을 존중하면서 미래를 찾아야 한다. 로잔운동은 선교의 과업을 명확히 하고, 선교의 긴박성을 알리며, 모든 곳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도록 동원하는 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산은 축하하고 칭찬하며 지속되어야 한다. 동시에, 제자로서 형성과 선교적 형성 간의 관계에 대한 현재의 이해를 초월해야 할 분명한 필요성이 있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현재 복음주의적 이해의 상당 부분이 행동주의적이며 존재보다는 행동에 더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행동주의(activism)가 문화적, 정치적 목소리와 트렌드보다는 하나님의 온전한 권고를 반영할 수 있도록 우선순위와 실천을 항상 평가해야 하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소금과 빛으로서 그리스도인의 현존(presence), 특히 선교적 실천의 중요성을 진심으로 확언한다. 그러나 소금은 그 맛을 잃지 않아야 한다. 복음주의적 행동주의는 항상 내주하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아버지와의 적극적인 관계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이것이 선교적 행동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다.

만일 기독교 선교의 목표가 제자를 삼는 것이고, 이것이 제자로 살아가는 사람만이 성취할 수 있는 목표라면, 복음으로 삶이 변화된 사람이 제자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때 시작된다. 그러나 좋은 토양에 심은 씨앗처럼, 복음은 단번에 충만한 변화를 불러오거나 변화의 열매를 맺지 않는다. 오히려 생애 전반에 걸쳐 복음의 변화시키는 능력의 실재를 보여주는 거룩함과 사랑의 성숙함 가운데 이러한 변화가 일어난다. 

복음주의자들은 성경의 우선순위, 복음 전파(evangel)의 중심성, 그리고 삶의 변화를 올바르게 강조해 왔다. 그러나 그런 삶은 개인주의적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있다.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복음주의적 이해의 대부분은 특히 서구 상황에서 극단적으로 개인에 초점을 두는 것으로 형성되었다. 물론 성경이 기독교 제자도의 기초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의 믿음이 환원될 수 없는 필요성을 증명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에 초점을 두는 것은 필요하며 옳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의 삶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이며, 그러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이웃과의 관계와 분리될 수 없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고 은혜롭게 그분의 거룩하고 의로운 통치 아래 살게 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 삶, 죽음, 부활, 승천의 복음에 부합한 삶의 패턴을 따르는 사람으로 형성되는 것이다. 따라서 선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타자에 대한 사랑이 한마음으로 연합된 제자의 형성을 적절한 목표로 삼는다. 이러한 결과는 모든 민족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한 언약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을 인간의 마음에 기록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적절하게 이해된다. 이 신적 성취의 구현으로써, 지역 교회는 이러한 방식으로 추구되는 선교의 수단이자 목적이다. 

우리는 선교의 목적(telos)으로써 지역 교회의 중심성을 회복해야 한다. 선교의 목적이 교회의 창조라면, 그 목적의 본질은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친교와 그 안에서의 친교이다. 교회는 성도들의 친교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선교는 제자로 형성된 제자들이 모든 민족으로 구성된 하나님의 하나 된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제자 삼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사랑과 거룩함이 넘치는 교회 안에서 제자로 형성된 사람들은 이웃, 일터, 지역사회, 그리고 사회에서 불의와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에 언제나 깊이 관여하게 될 것이다.

지역 교회는 그들의 공동의 삶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부합하는 삶의 패턴을 반영하도록 보증해야 한다. 지역 교회는 신실한 복음 전파, 세례와 주님의 만찬에서 정기적으로 복음을 재현하고 기도와 찬양으로 감사함으로 복음에 응답함으로써 이를 실천한다. 교회 안에서 신자들은 성령께서 전달해 주시는 은혜를 동료 신자들에게 중재함으로써 천국 시민으로서 그 시민권에 합당한 삶을 사는 법을 배운다(엡 2:19; 빌 3:20; 살전 2:12). 이러한 방식으로, 신자 개개인은 가장 거룩한 믿음(유 1:20)으로 세워지고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며 거룩함과 믿음, 그리고 주님의 재림에 대한 정결한 소망의 삶을 살도록 격려받는다. 

위기를 통한 회심에 대한 지나친 집중과 과도한 개인주의의 한계를 넘어설 때 우리는 순례하는 교회(pilgrim church)로써 지역 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필연적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예술 작품'(work of art, 엡 2:10)이라면, 교회는 진행 중인 작품이다. 교회는 진행 중(in via)이다. 우리는 기독교인의 삶의 현재 진행적 성격을 강조하므로 실패가 변명의 여지가 되지 않더라도 타락한 자의 결말이 되지 말아야 한다. 제자도에는 타락한 자를 회복시키려는 제자 훈련의 요소가 있다. 특히 지역 교회는 사역자와 선교사가 지역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삶과 긴밀히 연결되며 하나님의 성령께서 행하시는 지속적인 역사를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  

주님은 섭리 가운데 그의 백성을 제자 삼기 위해 무장하고 구비하는 초교파 선교단체 사역과 선교 파트너십을 일으키셨다. 우리는 이러한 사역의 중요성을 확증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형성하시는 새로운 인류의 구현으로써 지역 교회에 대한 분명한 초점과 연결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도 확증한다. 이러한 사역들은, 한 개인이 아닌 복음의 영적 권위의 위치를 보존하는 책무, 감독, 다중 리더십과 통치 구조의 패턴과 원칙에 대해 지역 교회에 주어진 교훈을 성경에서 끌어낼 때 그리스도를 존중하게 된다. 

우리는 제자로서 우리를 형성하는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 복음은 창조에서 새 창조로 나아가는 이야기 안에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인간의 반역과 죄에 반응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복을 회복하려는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의 형태를 띤 이야기이다. 그분은 그분의 아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죽음, 부활, 그리고 승천을 통해 그 회복을 이루셨다. 개인이 그 메시지를 듣고 믿을 때, 그들은 성령의 중생하게 하는 역사로써 하나님의 생명을 매개로 역사하는 변화를 경험한다. 이 회복은 개인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 뿐 아니라 사람들과 올바른 관계로 세우는, 즉 하나님과 사람 간의 올바른 관계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 안에서 경험하는 두 가지 회복이다. 예배하는 백성은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 가운데 그 생명을 품고 있다. 이 백성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 받은 생명을 살며, 복음 안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이 생명에 동참하도록 모든 곳에서 모든 사람을 초대한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