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 28:18-20)
우리가 모이는 이유
다가오는 주일에 전 세계 수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역 교회 모임을 위해 모일 것이다. 우리는 흔히 “교회에 간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다양한 예배의 방식, 교단들, 성례전들은 어지러울 정도이다.
아마도 내가 다니는 교회처럼, 예배 전에 커피와 케이크를 즐기고, 설교 전에는 많은 찬송과 성경을 읽은 다음, 일주일 내내 그리스도를 섬기라는 명령을 받을 것이다. 우리 교회는 기도 모임과 주중 소그룹을 통해서 이 예배를 더욱 풍성하게 한다. 침묵, 향기와 종소리, 회개 기도 확장된 성찬식(extended Eucharist)과 다른 성례전 등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 있는 임재를 경험하는 것이 모임의 특징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북을 치며 원을 그리고 춤추고,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귀납적인 성경 공부를 한 후, 함께 더 넓은 지역 사회의 필요를 채우러 나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모임의 형태가 어떻든, 대성당, 창고, 숲, 혹은 집 등 어디에서 만나든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왜 우리가 모일까? 이 모든 활동을 하나로 묶고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단순히 ‘사교 클럽(social club)’처럼 시민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 이상의 무엇이 있을까? [1] 교회는 하나님의 선교를 어떻게 이룰까?
더 큰 목적
일요일은 결국 주님의 날(the Lord’s day)—예수님의 생애, 죽음,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다. ‘교회’는 그리스어 형용사 ‘kuriakos’에서 유래했는데, ‘주님께 속한’이라는 의미이다 (참조: 고전11:20; 계 1:10). 그리고 그리스도가 세우겠다고 약속한 ‘교회'(ekklesia)는 사건이나 건물, 프로그램이나 취미가 아니었다. 확실히 종교적인 소규모 집단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말과 행동으로 대표하기 위해 부름을 받고 함께 모인 사람들로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민족(ethnos)의 고유한 문화 집단으로서 그들의 가는 곳마다 그분의 영향력을 퍼뜨리는 것이었다.[2]
교회는 본질적으로 선교적 사람들[3]로 구성된 그리스도의 ‘유형적 나라’이며, 그들은 자신들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찬양을 나타내고 선포하면서,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 세우실 때 세상이 어떻게 보일지를 미리 증거하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한 터전을 마련했다(벧전 2:9-12).
예수님의 본을 따르는 주님의 백성의 목표는 외부인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 모임의 목적은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누구든 24시간 내내 주님의 사람으로 구별되는 사람들을 형성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흩어져 하나님의 사랑으로 주변 사람들을 섬기며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하고 모든 사람이 이 새로운 현실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일치하도록 부르기 위해 모였다(막 1:14-15, 눅 4:18-19).[4] 교회는 잔치(banquet)의 맛보기, 영화의 예고편, 다가올 생명의 표징이다.[5] 따라서 여러분의 교회를 포함한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순례자로서의 백성, 곧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보내셔서 하나님 나라를 관리하고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알리도록 한 신자들의 모임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세주이시며 주님을 가리킨다
그리고 이 목적은 교제의 성격이 무엇이든, 어디서 모이든 우리가 모이는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요크의 (성공회) 사제이자 부주교인 그레이엄 크레이는 “교회는 무엇을 하든 그 소명의 핵심이 제자를 삼는 공동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6] 간단히 말해서 ‘제자의 복수형은 교회’이다. 즉, 교회는 기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에 함께 협력하는 신자들의 역동적인 몸이다.[7] 또는 디트리히 본회퍼의 말로 ‘교회는 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이다. . . . [교회는 구체적으로 이룬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새로운 뜻과 목적을’[8] 이라고 했다.
종신(whole-life) 제자들
따라서 로잔운동의 선교적 목적의 핵심은 모든 민족과 지역을 위해 제자를 삼는 교회가 세워지는 세상을 상상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다양한 정의가 존재한다. 최근에 인기 작가이자 목사인 존 마크 코머는 마가복음 3:13-15에서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을 바탕으로 제자도를 정의했다. 제자도란 예수님의 길을 실천하는 것 즉, 예수님과 함께 있고,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행하는 것[9] 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나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와 같은 질문을 던지도록 권장한다.
런던현대기독교연구소(London Institute for Contemporary Christianity, LICC)에서는 지금 이 순간 각자의 자리에서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법을 배우는 사람을 ‘종신 제자(whole-life disciple)’라고 말한다. 우리는 모두 같은 주님을 따르도록 부름 받았지만, 우리가 부름 받은 상황, 특히 우리가 살고 배우고, 일하고 놀고, 쇼핑하고 봉사하는 장소가 다르기 때문에 모든 제자가 똑같을 수는 없다.
제자들은 구세주와 가까이 지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가 사는 세상과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에 귀 기울이고, 일상에서 그리스도를 닮아 가도록 서로를 격려하며 평생을 배우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실천 공동체(community of practice)에서 함께 가르치고 배우며 머리(지혜), 마음(덕성), 손(기술)이 성숙해지면서 예수님의 길을 도제식으로 익히고, 무엇이 번영을 가져오는지 아는 ‘지혜로운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부터 샬롬을 위해 일하고자 한다(마 5:9; 10:16).[10]
그리고 교회 유급 사역자의 소명은 당신의 여가 시간을 사용하여 그들의 선교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당신의 시간을 더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11] 오히려 그리스도께서는 성숙한 제자로서 ‘봉사의 일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에베소서 4:11-13) 교회 지도자들을 세우셨다. 레슬리 뉴비긴이 주장하듯이, ‘정의와 평화라는 위대한 문제와 관련하여 교회의 주요 역할은 시민으로서 세속적 의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신자로서 책임감 있게 행동할 남성과 여성을 지속적으로 양육하고 지탱하는 데 있을 것이다.’[12]
그렇다면 종신 제자를 양육하는 것이 모든 교회의 존재 이유이자 최우선 과제라면 세계 선교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상상해 보자.[13] 우리가 모든 곳에서 사람들을 예수님을 닮아가는 데 전념하고, 일주일 내내 선교 전선에서 사회 모든 영역에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끼친다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교회의 논리
이것이 교회의 선교 논리다. 모임은 종교적 ‘서비스’를 소비하기 위해 오는 관람 스포츠가 아니다. 오히려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하는 헬스 세션에 가깝다.[14] 우리가 모일 때의 모든 행동은 사무실로, 대학으로, 동네 카페로, 엄마 모임으로 ‘세상에 빛이 되어 하나님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해'(마 5:13-16, 메세지성경) 함께 흩어지면서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운동이다.
예배로의 부름, 인사, 찬양, 성경 봉독, 죄의 고백과 용서의 확신, 세례, 신조들, 기도, 설교, 성찬식, 헌금, 파송과 같은 예배의 모든 순서는 우리의 생각을 형성하고, 우리의 마음을 이끌고, 우리의 손을 강화하여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와 그분의 나라를 갈망하며 그분을 위해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15] 예를 들어, 주님의 식탁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주일을 잘 지킬 때, 우리는 우리 삶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신실한 임재에 마음을 열게 된다. 따라서 이러한 실천은 우리가 함께 파송 되면서 확장되어 식탁을 차릴 때 은혜로 충만한 방식으로 이웃을 대접할 뿐만 아니라 흩어진 교회처럼 주일 모임을 넘어 공동체에서 평화의 사람들로부터 나오는 환대의 표현을 인식하고 격려하는 것으로 이어진다(눅 10:1-11).[16]
잊혀진 제자도?
안타깝게도 교회가 다양한 표현으로 모일 때 우리는 제자 삼는 일 외에는 거의 모든 일에 바빴던 것 같다. 달라스 윌라드의 기억에 남는 표현을 빌리자면, 제자 훈련(disciple-making)은 ‘잊혀진 제자도’가 되었다.[17] 전 세계 교회 대부분이 제자도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우리의 주된 초점을 잃어버리고 ‘개종자’를 만들고 사람들을 교회 행사에 참여시키려고 ‘새신자들이 그냥 잘 해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18]
로잔운동은 모든 지역과 이슈 네트워크, 세대 간, 수천 시간의 공청회를 통해 전 세계 교회에 가장 공통적으로 필요한 것은 전도를 넘어 선교와 아웃리치를 촉진하는 제자 훈련이라는 것을 발견했다.[19] 우리가 ‘제자 훈련’을 할 때에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일하고 쉬고 노는 일상에서 시작하는 것보다 일반적으로 교회 모임과 타문화 선교에 초점을 맞추고 교회 안에 위치하며 그 안에서 이루어진다. 디지털 기술의 부상은 지식의 비실체적 전달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우리는 깨어진 세상에서, 특히 우리의 직업을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법을 함께 배우면서 삶 속에서 형성되는 것을 우선시해야 한다. 제자 훈련은 통합적 선교의 토대이자 교회의 첫 번째 책임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가 옳았음을 증명하기
그렇다면, 그리스도는 옳았을까? 제자 삼는 것이 정말로 세계 선교의 핵심이고, 교회의 부르심이며, 모든 사람과 모든 장소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살아내고 나누는 수단일까? 특히 지역 교회에서 이것이 여러분의 우선순위인가? 교회 문화에서의 작은 변화로 우리가 왜 모이는 지에 대해 다시 집중할 수 있다. 즉, 전 생애의 비전을 제시하고, 일상 속에서의 사역에 집중하며, 목회적 돌봄에서 목회적 구비(equipping)로 전환하고, 하나님이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우리의 상상력이 아니라 우리의 의지이다. 이것이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인가?
제4차 로잔대회를 향해, 그리고 그 이후에도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 우리가 발을 딛는 곳마다 가시적인 하나님 나라를 경험하며 그들을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도할 수 있기를 기도한다.
브린 질레트가 이 로잔의 중심 기둥을 그린 그림(이미지 참조)에서 힘 있게 표현했듯이, 성령 충만한 제자 훈련을 통해서만 교회는 재림하시는 신랑 그리스도를 위해 준비된 흠 없는 신부가 될 수 있다. 이것은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모든 나라에 불꽃을 전하는 세계적인 비전이며, 그리스도의 겸손, 정직, 단순함을 반영하여 모든 부족, 방언, 민족의 사람들을 인도한다. 우리는 주님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분만이 합당하시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마음으로 모든 민족과 장소에 제자 삼는 교회를 세워 함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란다. — 온교회가 온 세상에 온전한 복음을 전하게 하소서.
Endnotes
- Emmanuel Ogamdi, ‘Have Churches Become Just Another Social Gathering?’ Medium, June 22, 2023.
- See the 2010 Lausanne Covenant, section A9, ‘We love the people of God’: ‘Jesus calls all his disciples together to be one family among the nations, a reconciled fellowship in which all sinful barriers are broken down through his reconciling grace. This church is a community of grace, obedience and love in the communion of the Holy Spirit, in which the glorious attributes of God and gracious characteristics of Christ are reflected and God’s multi-colored wisdom is displayed. As the most vivid present expression of the kingdom of God, the church is the community of the reconciled who no longer live for themselves, but for the Saviour who loved them and gave himself for them.’
- Hugh Halter and Matt Smay, The Tangible Kingdom: Creating Incarnational Community (Jossey-Bass, 2008). See also Rei Lemuel Crizaldo, ‘Missional People: A Sabbatical, Sent-out, and Sustained Community,’ Lausanne Blog, December 19, 2023; Christopher Wright, The Great Story and the Great Commission: Participating in the Biblical Drama of Mission (Baker Academic, 2024), 60–86. Inherent within The Great Commission are three reinforcing points of mission: building the church; serving society; and caring for creation. Building the church is ‘through evangelism and teaching; bringing individual sinners to repentance, faith, baptism, and obedience as disciples of Jesus Christ; and building them up to maturity in the fellowship of God’s holy people.’
- Neil Hudson, Scattered & Gathered: Equipping Disciples for the Frontline (IVP, 2019).
- Lesslie Newbigin, ‘On Being the Church for the World’, in Giles Ecclestone (ed.), The Parish Church (Mowbray, 1988), 37–38.
- Shared at an LICC event in London, 2011. For more, see his book, Disciples and Citizens: A Vision for Distinctive Living (IVP, 2007).
- Ross Hastings, ‘Vocation from Union with Christ: Overcoming Dualisms in the Calling of the Church’, The Regent World, iss. 33, no. 1 (April 20, 2021). See also Lesslie Newbigin, 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Eerdmans, 1989), 227–228.
- Dietrich Bonhoeffer, Sanctorum Communio (Fortress Press, 2009), 199, 141. See also the Lausanne Covenant, article 6: ‘The church is the community of God’s people rather than an institution, and must not be identified with any particular culture, social or political system, or human ideology.’
- John Mark Comer, Practicing the Way: Be With Jesus, Become Like Him, Do as He Did (Form, 2024).
- Being a ‘wise dove’ was prized in the ancient church as the best witness to a bemused pagan world. For example, the 3rd-Century discipleship manual Didascalia Apostolorum (The Teaching of the Apostles) was designed to help reform pagans who committed to follow the way of Jesus but were now facing persecution for this costly decision. It gives us a picture of real Christians dedicating their everyday actions to Christ, imitating his teaching with patience. They were commended as being ‘like wise doves, at peace with one another, striving to fill the church’. See Alan Kreider, The Patient Ferment of the Early Church: The Improbable Rise of Christianity in the Roman Empire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6), 223–242.
- Mark Greene, at the 2010 Third Lausanne Congress on World Evangelization critiqued this primary mission strategy of the church, which seemed to be: ‘To recruit the people of God to give up some of their leisure time to support the mission initiatives of church-paid workers.’ See his manifesto, ‘The Great Divide’, online here.
- Lesslie Newbigin, T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 (SPCK, 1989), 139.
- Neil Hudson, Imagine Church: Releasing Whole Life Disciples (IVP, 2012). See also core LICC publications toward this end, such as ‘Frontline Sundays’, ‘Leading a Whole-Life disciple-making Church’, ‘Sustaining Whole-Life disciple-making Church’, and more to support whole-life disciple-making churches.
- David Benson, ‘A Litany of Practices,’ Practical Theology vol. 12, iss. 3 (2019), 253–256. For examples of such practices, see here.
- James K. A. Smith, Desiring the Kingdom: Worship, Worldview, and Cultural Formation (Baker Academic, 2009), 155–215. See also Lausanne’s Manila Manifesto, section B8 on ‘The Local Church’: ‘The church is thus both a worshipping and a witnessing community gathered and scattered, called and sent. Worship and witness are inseparable.’
- See the work of David Fitch with his ‘7 Practices for the Church on Mission’, outlined in most detail in his book, Faithful Presence: Seven Disciplines that Shape the Church for Mission (IVP, 2016), explored here.
- Dallas Willard, The Great Omission: Reclaiming Jesus’s Essential Teachings on Discipleship (Monarch Books, 2006).
- Lucy Peppiatt, The Disciple: On Becoming Truly Human (Cascade Books, 2012), 12.
- See Global Listening Team, ‘Analysis of Lausanne 4 Listening Calls,’ Lausanne Movement (2023), 5–6, 13, 32–33, 59, 66. 20. See the 2010 Lausanne Covenant, section I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