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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적 공동체 101

선교적인 사람들: 안식하는, 파송 받은, 그리고 지속되는 공동체

19 12월 2023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 4:18-19)

예수님께서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서 이 말씀을 읽으셨을 때, 바로 그날 그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확언하셨다. 이는 그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던 소망의 성취를 의미했다. 가난과 불의, 질병과 지배, 로마 제국의 식민 통치 아래 사회 제도의 허무함 속에 살아가던 사람들이 기다리던 ‘복음’이었다.

희년의 공동체

누가복음 4장 18~19절의 번역에서 자주 잊혀지는 유명 문구는 ‘주님의 은혜의 해’이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 대한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고 선포하신다. 하지만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기서 말하는 ‘은혜의 해’란 어떤 해를 가르키는 것인가? 당시 예수님 주변의 사람들은 그것이 희년을 줄인 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레위기 25장에 명시된 이 해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뿌리내린 불행과 병폐, 불의를 바로잡기 위한 대대적인 재도약을 의미했다.[1]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랐던 공동체에게 있어 사랑은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그분의 제자가 되는 대가 그 자체

하지만 예수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도대체 무엇이 달라진 것인가?’라는 질문이 자리 잡고 있었을 것이다. 세례 요한도 헤롯 왕에 의해 감옥에 갇혀 고립되어 있을 때 고민했던 질문이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이렇게 답을 주셨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11:5-6). 다시 한번 이야기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당신의 오심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 마침내 실현되고 있음을 강조하셨다. 세상에는 강력하고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회에서 가치가 없던 사람들이 가치를 인정받고, 버림받은 사람들이 환영받으며, 힘없고 소외된 사람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희망이 피어오르고 있었고, 그 희망은 소외된 사람들에게도 전해지며 모두에게 분명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 일어난 사건에 대한 누가의 기록을 살펴볼 때 이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이 중요하다. 사도행전에서 예수라는 메시아를 중심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선지자 이사야가 예언한 것과 동일한 특징을 보여준다.  사도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놀랐던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당신께서 시작하신 일의 ‘증인’이 되라고 위임하신 것과 이에 수반되는 권능을 주신 것이다(행 1:8). 오순절의 이야기에 이어,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올바른 질서를 기대하는 삶으로 특징지어지는 신앙 공동체의 ‘집단적 증언’에 대해 읽게 된다. 희년의 사역은 매우 빠르게 교리, 기도, 예배에서 ‘함께함(코이노니아)’, 그리고 ‘서로(알렐루야, allelous)’의 안위를 돌보는 일로 이어져, ‘그들 가운데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행 2:42-47, 참조: 행 4:32-37).[2] 당시 토라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신명기 15:1-11에 적힌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궁핍한 자를 돌보라 하시는 여호와의 비전과 권고를 기억했을 것이다. 심지어는 사도들이 열정적으로 가르침의 사역에 집중할 수 있도록, 특정 사람들을 이 긍휼의 섬김 사역을 책임지고 헌신할 수 있도록 했다(행 6:1-6).

누가는 이런 류의 ‘공동체 생활’이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을 뿐만 아니라 이 이상한 종류의 ‘함께함’에 동참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추가되었다고 말한다. 즉각적인 영향은 분명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어떻게 니고데모와 같은 율법 교사들도 이 새로운 공동체에 대해 긍정적으로 대할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숨겨진 전략이 있었을까? 그들이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했을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을까?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단순히 새로운 삶의 방식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신 메시아의 본보기를 따르는 것에 충실했다(요 13:15-17).[3]

            ‘이웃을 사랑하라…’

            ‘원수를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게 하라…’

적어도, 가장 먼저 예수님을 따랐던 공동체에게 있어 사랑은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막 10:45) 주기 위해 오신 그분의 제자가 되는 대가 그 자체였다고 말할 수 있다.

보냄받은공동체

사도행전에서 몇 장이 채 지나지 않아 누가는 제자 공동체가 누렸던 긍정적 환영이 박해로 바뀌었다고 말한다. 결국 유대교 지도자들과의 충돌이 일어났다. 사실 순교는 예수님처럼 복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이 가야 할 길이되었다(행 7장). 결과적으로 예루살렘으로 모인 공동체는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이 전파되기를 계획하셨던 예수님의 뜻대로 인접한 지역으로 흩어져나갔다(행 1:8). 그렇게 그들은 ‘가는 곳마다 말씀을 전했고’(행 8:4), 사마리아 도시의 경우 예수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논쟁적인 만남(요 4:1-42)을 연상시키는 ‘큰 기쁨’(8절)을 가져다주었다.

치명적인 박해가 그들을 ‘내보냈다’(라틴어로 missio), 즉 희년 공동체의 생명을 구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흩어짐은 복음이 유대인의 국적, 신앙, 문화의 영역을 넘어 로마 제국의 다양한 민족, 지역, 종교에 전파되며 사회적 장벽을 더욱 허물어뜨리는 계기가 되었다. 그 과정에서, 희년의 첫 모습은 유대인들의 상에만 존재하던 이상적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흩어진 신자들이 페니키아(Phoenicia), 키프로스(Cyprus), 구레네(Cyrene)까지 여행할 때,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재하며 생겨난 새로운 현실과 마주하게 되었다. 사도 베드로는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행 11:17)며 강력한 깨달음을 얻었다.

희년의 약속은 나머지 인류에게 생생한 현실이 될 것이다! 그렇다, 하지만 그것은 독특하고 구별된 방식으로 만들어져나갈 것이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은 사도들과 지도자들은 그들의 신앙 공동체가 유대교에 얽메여 있어서는 안되며 유대교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4] 이에 대한 초기의 단서는 신앙 공동체에 대한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 즉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는 ‘그리스도인’(행 11:25)이라는 이름이 예루살렘이 아닌 안디옥,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비유대교인들을 놓고 불려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최초의 선교 공의회로 볼 수 있는 회의에서 매우 흥미로운 반전이 이어졌는데, 바로 예수님을 따르는 비유대교인들을 유대 전통의 틀에서 해방시키는 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행 15:1-31). 이때부터 고린도, 데살로니가, 에베소 등 그레코로만(Greco-Roman) 세계의 다른 도시들의 상황, 문화, 삶의 문제 속에서 ‘기독교 공동체’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의미를 지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이 새로운 ‘예수 공동체’ 구성원의 몫이 된 것이다.[5] 이 좋은 예로 로마의 헌신적인 시민들이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던 정치적 충성심의 충돌을 들 수 있다: ‘야손이 그들을 맞아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행 17:7).

새로운 상황과 다양한 공동체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복음의 의미를 풀어내야 하는 부담의 대부분은 사도 바울이 짊어져야 할 몫이었다. 에콰도르의 신학자 카를로스 르네 파딜라(Carlos René Padilla)는 이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 겸손한 섬김과 가난한 사람들과의 연대, 진리에 대한 헌신, 모든 형태의 위선에 대한 흔들림 없는 대적 등 예수님의 삶이 재현될 수 있는 제자를 만드는 일’[6]이라고 적절하게 설명했다. 상당수 옥중에서 쓰여진 편지를 포함한 이방인의 사도로 여겨지는 바울의 서신은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마 18:19-20)는 엄청난 도전에 대한 증거이다. 참으로 위대한 사명이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에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로마에 구금되었지만 하나님 나라가 임박했다는 소식을 기꺼이 ‘보내는 일’을 멈추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행 28:30-31).

지속되는공동체

이후 수백 년 동안 로마 세계에는 믿음의 간증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증거하는 ‘증인’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7] 희년의 비전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현실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이기심, 불안, 두려움을 초월하는 것을 목격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마 6:10)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도록 가르쳐졌고, 자신들이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의 일부가 될 것을 확고히 했다.

희년의 비전에 의해 살아 움직이는 강력한 현실 속에는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함께하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뿌리내린 이기심, 불안, 두려움을 초월하는 것을 목격되었다.

사도행전 이후 그 이야기를 이어받은 고대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 역사의 기록 속에는 예수님의 제자도를 따라 살겠다는 그들의 굳건한 헌신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이교도 사회에 비하면 혁명적인 돌봄의 유형이 원칙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모든 공동체 구성원에게 확대되었다는 것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형제’, ‘자매’와 같은 단어의 사용이 단순한 애정 표현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과부 고아, 노약자, 병자, 일할 수 없는 자, 실업자, 죄수와 유배자, 여행 중인 기독교인, 그리고 특별한 도움이 필요한 다른 모든 교인에게도 돌봄이 확대되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이 품위 있는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배려했다.

실직자와 일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보살핌은 특히 더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일할 것을 주장했고, 할 수 있는 한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상 일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도 공동체의 지원이 제공되었다. 고대 사회에서 보기 드문 고용 지원 시스템과 사회 보장 네트워크가 갖추어져 있었던 것이다.[8]

이런 사랑이 기독교 공동체의 경계를 넘어 확장되었을 때, 로마의 황제조차도 부끄러워했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줄리안(Julian) 황제(AD 361-363)은 ‘기독교인들은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도 먹여 살린다…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어야 할 도움을 기대하지 않는다’고 말했다.[9]

결론

총체적, 통합적, 변혁적, 십자가적, 선교적과 같은 단어들은 오늘날 이 강력한 집단적 증거를 설명하는 데 사용되어 왔다. 이 단어들은 사도행전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예수님의 혁명적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의 폭과 깊이를 다시 한번 조명하고 강조한다.

줄리안 황제가 분명히 이해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기독교 공동체의 사랑을 받으면 그 메시지를 받아들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Endnotes
  1. To read more about the Jubilee and its formative influence in the life of the early followers of Jesus, see Ched Myers, The Biblical Vision of Sabbath Economics (Washington: Tell the World, 2008).
  2. John Stott noted two aspects of koinonia as it is used in the book of Acts: what the believers ‘share in together’ and what they ‘share out’ together. ’Koinonia in the New Testament concerns not only what we possess but what we do together, not only our common inheritance but also our common service,’ he wrote. John Stott, One People (New Jersey: Revell,1986), 87.
  3. David Zac Niringiye remarked that the ‘growth’ experienced by the believers in the book of Acts runs contrast to much of today’s church growth theories and practices in the sense that the latter ‘lay a great emphasis on strategies and methods rather than the faithful life and witness of believers.’ David Zac Niringiye, The Church: God’s Pilgrim People (Carlisle: Langham, 2014), 133.
  4. Craig van Gelder suggests that the way to understand the missional calling of the church is to understand the ministry of the Spirit especially in the church’s formative stage and the quick instance of the need to keep with a continuous ‘forming’ (or reforming) as shown in the book of Acts. Craig Van Gelder, The Ministry of the Missional Church: A Community Led by the Spirit (Grand Rapids, MI: Baker Books, 2007), 24, 40.
  5. Melba Padilla Maggay’s perspective on the dynamics of Gospel and culture is worth citing here: ‘Christianity is a global religion that is at the same time incarnational…Being incarnational in witness means that we take seriously a culture’s themes and construct a culture-specific message that truly speaks to that culture…It is time to move away from a transnational model of mission to an incarnate one, with a gospel that is shaped autochthonously.’ Melba Maggay, Global Kingdom, Global People: Living Faithfully in a Multicultural World (Carlisle: Langham, 2017), 124-125.
  6. C. Rene Padilla and Tetsunao Yamamori, The Local Church, Agent of Transformation: An Ecclesiology for Integral Mission (Buenos Aires: Kairos Ediciones, 2004), 31.
  7. For a landmark and thorough study of the ‘shared life’ of the early Christian community in the second and third centuries (pre-Constantinian period), see Helen Rhee, Loving the Poor, Saving the Rich: Wealth, Poverty, and Early Christian Formation (Grand Rapids, MI: Baker Academic, 2012).
  8. Gerhard Lohfink, Jesus and Community: The Social Dimension of Christian Faith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84), 155.
  9. As quoted in Stephen Neil, A History of Christian Missions (New York: Penguin, 1964), 3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