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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까지

레너드 N. 바르트로티(Leonard N.(Len) Bartlotti) 24 4월 2024

사도행전 1장 8절에 담긴 그리스도의 강력한 사명은 우리로 하여금 현재 우리가 속한 곳, 즉 우리 교회, 공동체, 국가 뿐 아니라 ‘우리와 같은 사람들’을 넘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다른 민족, 장소, 나라들로 가득 찬 세상을 바라보게 한다. 국제 연구자 크리스 메이너드(Chris Maynard)에 따르면 ‘문제는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있는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즉, ‘기독교인의 85%는 50% 이상이 자신을 기독교인이라고 여기는 국가에 살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인의 85%는 ‘문자 그대로 눈을 들면 기독교인을 보게 될 것이다.’[1]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전 세계적 위임령의 성취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선교하시는 하나님, 선교하는 백성으로서 우리의 정체성을 재발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이 보지 못하는 것, 즉 그리스도가 없는 사람들의 세상을 ‘볼’ 수 있는가?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성령님께서 능력을 주신 부분은 무엇인가? ‘열방’과 ‘땅 끝까지’에 대한 우리 사명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에게는 사도행전 1장 8절을 객관식 질문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유혹이 있다.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 중 한 곳을 선택하라’는 접근 방식이다. 또 다른 접근 방식은 이 구절을 점진적이고 순차적인 증거의 전략으로 축소해서 이해하는 것이다. ‘먼저 예루살렘, 그다음에는(then) “가장 먼 부분”에 도달할 것이다. 우리는 선교를 때때로 모험을 떠나는 이국적이며 부차적인 요소로 여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기독교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자신의 안전 지대에서 벗어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그들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기 전에 내 가족(나의 예루살렘)에게 먼저 다가가야 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다음에는(then)’이 아니라 ‘그리고(and)’라고 말하고 있다. , 모든 문맥상 순서가 없다.[2]

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일련의 해석학적 도약을 시도한다. 즉, 예루살렘은 ‘내 백성, 내 지역’을 나타낸다. 유대는 ‘우리 지역’이다. 사마리아는 ‘멸시 받는 사람’이다. 그리고 ‘땅 끝’이나 ‘가장 먼 곳’은 세계 선교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불편한 사실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리 출신이라는 점이다! ‘예루살렘’은 그들의 집도, 동네도, 사람도 아니었다. 은유 기법은 유용한 설교의 도구가 됨을 인정한다(나 역시 그것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은유가 사용되었다는 해석학적 증거는 없다. 예수께서는 문자 그대로의 역사적 장소와 문화적 영역에 관해 말씀하셨다. 사도행전 10장에 따르면 성령은 말씀 전파를 진전시키고 교회를 깨워 ‘땅 끝’ 모드, 즉 이방인의 세상으로 보내신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이다!

근시안을 극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끝을 계속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은 끝(end)을 염두에두고 그분의 구속 계획을 시작하신다(begin). ‘내가 시초부터 종말을 알리며 아직 이루지 아니한 일을 옛적부터 보이고 이르기를 나의 뜻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하였노라’ (사 46:10). 이런 의미에서, ‘땅 끝’은 선교 모임의 의제 중 마지막 부분이 아니라 처음에 논의되어야 할 주제가 될 수 있다!

우리의 전략은 최종 목표로부터 시작하여 “역방향으로(backwards) 세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열방을 향한 그분의 최종 목표에 대해 어떤 계획을 드러내셨는가? 이 선교 101(Missions 101) 탐구를 시작하기 위해,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역방향으로” 살펴보고, “땅 끝”에 있는 민족과 나라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나타내는 성경 말씀을 연구한 다음, 오늘날 미완성된 과제에 대한 몇 가지 간략한 관찰로 마무리하고자 한다.

성경의 ‘핵심(Hinge)’ 구절

이사야 49장 6절은 ‘성경의 핵심 구절’이라 불린다. 하나님 아버지와 섬기는 아들은 메시아의 다가오는 사명의 중요성과 궁극적인 의도에 대해 논의한다. 여기서 우리는 그들의 하늘 보좌에서 열리는 이사회 회의에 대해 듣게 된다.

‘그가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사 49:6 개역개정)

‘그것은 매우쉬운일이다.’ 다른 영어 번역에는 ‘그것은 너무 가벼운 것이다’ (ESV, ASV), ‘그것은 가벼운 것’ (KJV), 이스라엘만의 구속자가 되는 것은(CSB: to be, CEV: to be merely)‘너에게 충분하지 않다’라고 말한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아무리 크더라도 히브리어의 의미는 극명한 대조를 불러일으킨다. 하나님의 더 큰 구원의 계획에 비하면 그것은 너무나 ‘작고’ 가벼워서’ ‘하찮은’ (LEB ), 혹은 ‘너무 하찮은 것’(TLV)이다!

야훼(Yahweh)는 “그 사명은 이스라엘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계 모든 나라에 대한 것이다. 혼자서 이스라엘을 구속하는 것은 너무 쉬웠다. 야훼는 당신의 주권이 더 크게 나타나기(display)를 바란다.”[3]  그 더 크게 나타남은 다음 구절에서 드러난다.

“열방의 빛이요.” 이스라엘의 공동체적 사명은 열방에 빛이 되는 것(사 42:1-9)인데, 이는 종(the Servant)에게 개별적으로 다시 맡겨졌다. 즉, 그들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성취하기 위해 야훼에 대한 이스라엘의 의무를 대신하는 역할이다.”[4]

“나의 구원은 땅 끝까지 이르리라.” 종을 통해(사 53장 참조),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세상이 야훼의 구원에 이르게 될 것이다. 어느 날 열방이 하나님의 백성에 포함될 것이다.”[5]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의 일원으로서 성전 안에서 즐거운 예배, 받아들여질 만한 제물, 기도를 드리도록 환영받을 것이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사 56:7).[6]

땅 끝

성경에는 “땅 끝” 이라는 표현이 46번 사용된다. 때로 이 표현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이나 “북방에서” 군대를 “땅 끝에서부터일으키실”  때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에게 임박한 심판을 언급한다(렘 6:22; 50:41). 다른 경우에는 죄 많은 인류에 대한 불길하고 포괄적인 심판을 예언한다. “요란한 소리가 땅 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뭇 민족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내어 주셨음이라…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큰 바람이 땅 끝에서 일어날 것이라.”(렘 25:30-32)

반대로, 선지자들은 구원의 큰 반전을 예견했다! 어느 날 이방 민족들이 “땅 끝에서 와서 이르기를,‘우리 조상들의 계승한 바는 허망하고 거짓되고 무익한 것뿐이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이번에 그들에게 내 손과 내 능력을 알려서 그들로 내 이름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렘 16:19-21)

은유적으로 말하면, “땅 끝”은 “갈 수 있는 만큼 멀리”를 의미한다. “전 세계, 모든 인류, 그리고 인류의 모든 구획, 모든 인종, 국적, 민족 및 언어 그룹, 모든 민족이 도처에 있다.

“갈 수 있는 한”—이는 생각해 볼 만한 문제이다! 그것은 우리의 고향이나 안전 지대, 그리고 교회가 국내에 머물고 복음이 (종종) 하나의 문화 집단이나 환경에 의해 길들여지는 그런 기독교화된 상황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을 가능성이 높다. “땅 끝”은 우리에게 다음을 생각해 보도록 도전한다. 우리는 모든 곳의 모든 민족이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지리적으로, 문화적으로, 사회적으로, 기도와 봉사, 고난과 희생을 통해 “얼마나 멀리” 갈 의향이 있는가?

또한 위의 구절들에 나오는 히브리어의 병렬식 사용에 주목하라.즉, “나라들”(히브리어, goyim)과 “땅 끝”이 거의 동등하게 사용되고 있다. “끝” (KJV) 또는 “땅 끝”은 이방인의 “나라들,” 즉비-유대 민족(goyim)의 거주지이다. “땅 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장소, 모든 민족을 포괄한다. 민족 언어학적, 사회적 집단을 막론하고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감시를 피할 수 없다. 이는 “종족 집단” 패러다임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미전도 종족” 또는 “최소 복음화 종족”, 즉 실행 가능한 토착 교회 개척 및 제자 훈련 운동이 없는 사회 문화적, 언어적, 민족 집단에 우선순위를 두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

데이브 다테마(Dave Datema)는 구약에서 “고이(goy)”는 다양한 유사성/경계(조상, 언어, 토지, 정부)로 정의된 인간 집단에 적용될 수 있으며 비-이스라엘인 이방인과 동의어가 되었다고 설명한다. 70인역에서 고이는 일반적으로민족(ethnos)으로 번역되는데, 이는 예수께서 마태복음 28:19, “모든 민족을 제자 삼아(disciple panta ta ethne)”에서 사용하신 헬라어 용어이다.[7] 이러한 민족(ethne)즉, 나라들(nations)은 우주적으로, 집단적으로(비-유대 민족), 개인적으로(인간 집단이나 종족 집단) 우리가 받은 위임령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핵심이다.

“모든 민족(all the nations)”은 마태복음과 그 독자들에게 보편성(모든 곳에 있는 모든 사람)과 특수성(그들의 다양성 속에서)에 대한 언급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을 모든 사람을 아우르는 집단으로 봄과 동시에 세상이 이루고 있는 다양한 구성 요소도 함께 볼 수밖에 없었다. 모든 민족(Panta ta ethne)은 ‘둘 중 하나/또는’이 아니라 ‘둘 다/그리고’를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다양성 안에 모든 나라/이방인이 포함된다는 의미이다. 민족(Ethne) 의미론적 범위로 볼 때 인종을 포함한 다양한 인간 집단화 및 경계에 대한 개념을 포함한다. 종족 집단 지지자들이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새롭거나 현대적인 생각이 아니다. 오히려 구약에서 신약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고대의 이해에 가깝다.”[8]

되돌아가기: 최초의 대위임령

이사야서 49장 6절의 “핵심 구절”은 창세기 12장의 최초의(original) “대위임령”과 “모든 민족”의 명령(마태복음 28:18-20 훨씬 이전)으로 되돌아간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창 12:1-3)

로잔운동의 창립 지도자인 존 스토트(John RW Stott)는 이 구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경에서 가장 통합적인 구절이며 하나님의 모든 목적이 여기에 요약되어 있다.”[9] “살아계신 하나님은 선교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하찮은 부족의 신이 아니라 우주와 땅과 모든 인류의 창조주이심을 선언하셨다. 창 12장에서 하나님은 흑암의 세력을 물리치고(창 3:15 참조) 타락하고 흩어진 세상 사람들 가운데서 한 백성을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셨다(창 3-11장). 스토트는 “하나님께서는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을 순차적으로 택하셨고, 그들을 통해 땅의 모든 족속을 축복하셨다”고 말한다.[10] 선택된 한 사람을 통해 축복이 “땅 위의 모든 족속”, 모든 나라, 모든 곳에 흘러가게 되어 있었다 .

이로부터 전개되는 이야기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의 중추를 형성한다. 스티브 호손 (Steve Hawthorne)은 이를 “그의 영광의 이야기”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모든 나라로부터 영광을 받으시려고 모든 나라그의 영광을 나타내신다.”[11]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한 하나님의 목적과 소망은 “모든 족속 중에서 한 민족”, 즉 “열방의 모든 족속 가운데서 한 가족”을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땅 끝”은태초부터 시야에 존재했다!

선교하는 하나님, 선교하는 백성

하나님의 백성은 선교하는 백성이며, 이들은 “이방 민족”과 그들의 우상 숭배와 부도덕과 풍속에서 “구별되었다”(레 20:26, 출 19:6).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거룩하여” , “택하신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였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성별되었으며”, 택하신 백성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였다. 이 정체성은 베드로전서 2:9-10에서 교회에 적용되었다. 이 “제사장 백성”은 열방에 축복을 중재하는 “제사장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롬 15:18 참조). 하나님은 그분의 언약 백성의 순종적인 사랑과 사랑의 순종을 통해 그분의 거룩함과 능력과 위엄을 나타내신다. 이는 우리가 삶과 사역, 관계, 복음 증거를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도록 도전을 준다.

출애굽기는 “열방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능력과 의를 드러냈다(시 98:2). 애굽에서의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건은 한쪽 구석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 이야기는 고대 근동 지역의 ‘소셜 미디어’에서 유행했고, 모든 나라가 “심히 떨었다 ”(신명기 2:25)! 하나님은 바로에게 내가 너를 세웠음은 나의 능력을 네게 보이고 내 이름이 온 천하에 전파되게 하려 하였음이니라”(출 9:16)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성전에서 야훼의 이름과 임재와 능력은 이방 민족과 나라들에게 선교적 매력을 주었다. 솔로몬이 기도하여 이르되“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왕상 8:41-43). 모든 지도자의 마음과 소망과 기도는 솔로몬의 전 세계를 향한 믿음과 의도를 본받아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땅의 만민이 주를알게 하소서!”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그분의 주권에 대한 “증인”으로서의 그들의 정체성을 상기시켜 주셨다. 법정에 출석할 때 증인은 침묵할 수 없다! 증인은 자신이 아는 것, 본 것, 들은 것을 증언한다.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담대하고 분명하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하나님 중심적이고 세계적인 증인으로 부르신다. “내가 알려 주었으며 구원하였으며 보였고 너희 중에 다른 신이 없었나니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43:12, 10; 44:8)

선교는 노래다. 우리는 마음에 노래를 담아 열방으로 간다! 열정적인 성도들과 활기 넘치는 밴드로 가득 찬 예배당, 홀, 경기장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쉽다. 그러나 힘든 곳에서 우리는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하며부르짖을 수도 있다(시 137:4). 그러나 그곳, 어두운 시간, 외로운 곳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신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5). 우리 자신의 영혼과 다음 세대의 “가는 사람(go-ers)”과 “보내는 사람(senders)”을 위하여 우리는 이방 땅에서 “주님께 새 노래를부르는” 데 필요한 인내, 회복력, 성령의 능력에 대한 의존 등을 어떻게 개발할 수 있을까?

앞으로 나아가기: 오실 구세주와 땅 끝까지

이사야 49장 6절의 “핵심 구절”이 창세기 12장과 구약에서 펼쳐지는 하나님의 선교로 되돌아가는(swing back)것처럼, 그것은 메시아의 오심을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swing forward). 이사야 49장 6절은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될 수단과 구속적 종말, 즉 “땅 끝까지 구원하심”을 계시함으로써 끝과 시작을 연결한다 .

그 수단(means)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선택한 종, 자신의 독생자를 보내신다. “내가 너를 이방의 빛으로 삼으리라.”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자기 이해(self-understanding)였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눅 4:18; 사 61:1-2 참조). 그분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어린양, 세상의 구원자로 오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 마 20:28). “그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그리스도의 희생은 충분할 뿐만 아니라 효과적이다. “그는 자기 영혼의 수고의 열매를 보고 만족하게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사 53:11).

그러므로 마태복음 28:18-20의 “대위임령”은 새로운 생각도 아니고 이미 존재하는 메시아에 대해 나중에 생각한 것도 아니다! 이는 하나님의 원래 “땅 끝” 목적을 추진하고 성취하라는 확언이자 반복이자 권위로 가득 찬 명령이다.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panta ta ethne)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제 그 차이점은 십자가와 부활이 죄와 죽음, 그리고 열방을 지배하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침으로써 하나님의 구속 계획의 성취를 보장한다는 것이다! “내가 내 교회((ecclesia)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권능의 증인

사도행전은 성령의 능력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백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거침없이 전파되는 것을 자세히 설명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제자의 수가 더 심히많아지니라”(6:7).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12:24).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19:20). 종교적 반대, 제국의 칙령, 탄압, 박해, 환난, 죽음 등 그 무엇도 복음을 막을 수 없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 1:16). 가말리엘은 산헤드린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5:38-9).성령에 이끌려 복음은 오늘날 지상의 모든 나라에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와 신앙 공동체가 있을 정도로 전파되었다! 하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나의 증인”이 되도록 “권능”을 약속하셨다. 이 권능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고향과 안락한 지역을 벗어나 모든 지리적, 문화적, 언어적, 사회적 장벽을 넘어 “땅 끝까지” 가도록 강하게 이끈다. 성령의 지속적인 능력이 없다면 우리의 노력은 육체적이고 효과가 없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 4:6). “내가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 20:22). “매여…가는데…알지 못하노라” —동사의 순서가 중요하다! —이것이 “땅 끝까지” 증인이 되도록 보냄을 받은 성령 충만한 신자들의 믿음이자 성령 충만한 여정이다.

오늘날, 특히 도시에서는 나라들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우리 문 앞에 있다! 두바이, 싱가포르, 상파울루에서 뉴욕, 런던, 브뤼셀, 마르세유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이제 제자도의 필수 요소인 타문화 간증에 필요한 기본 지식, 이해 및 관계 기술을 전수해야 한다. 미전도 종족을 위한 사역에는 이제 우리 이웃이 된 나라에서 진행되는 디아스포라와 이민자 사역이 포함되며, 그중 많은 사람은 국경을 넘어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파송(sending)”은 여전히 필요하다. 일부 데이터에 따르면 가장 큰 “전방 개척 종족 집단” 중 다수는 디아스포라 및 이주 인구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고국에는 아직도 전방 개척 사역을 위한 사역자들이 필요하다. 이는 식민지나 서구의 활동도, 문화적 제국주의의 한 형태도, 이념적 헤게모니도 아니다. 오늘날의 선교는 “모든 나라에서 모든 나라로” 다중심적이다. 파송은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곳”(롬 15:20-21)에 타문화권의 제자를 삼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해나 수용의 장벽으로 인해) 기존 교회와 교제에 아직 통합되지 않았거나 “통합될 수 없는” “숨겨진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눈을 주시기 바란다.

변화에 대한 우리의 부르심은 세계복음화에 대한 우리의 부르심을 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좋은 소식을 선포하고, 간증하고, 말하고, 이야기하고, 선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으며 특권을 받았다! 선포 없는 변화는 포기이다. 말씀과 성령의 시너지 효과는 성경 전체의 주제이다. 성령은 영감을 주고, 강권하고, 기름부음 받은 말씀을 선포하게 하신다.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우리는 지혜롭고 매력이 넘치며 진심 어린 방법으로 모든 민족의 모국어로 “화해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간청하고 호소할 대사의 권한과 의무가 있다.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고후 5:19-20).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 (롬 10:15).

놀라운 비전

최소 복음화 종족과 “땅 끝”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를 성경 이야기의 핵심으로 안내한다. 우리가 “열방 중의 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갈망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새로운 전 세계적 현실과 복음화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지속적인 필요를 보게 된다.[12]

마지막 환상은 숨이 멎을 만큼 놀랍다. “또 내가 보니 한 어린 양이 서 있는데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계 5:6). 하나님의 백성이 드리는 향 기도(incense prayers)와 새 노래가 분위기를 가득 채운다.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이 장면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이지만 다수의 국적, 인종,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 눈에 보이고 들리는 구별을 통해 믿음과 예배로 하나가 되었다! 모든 민족은 하늘 경기장에 각자의 자리가 있다.

A신약 학자 고든 피(Gordon Fee)가 이 빛나는 예배의 파노라마를 설명하는 것처럼, “새 노래”는 그분의 구속 행위의 (“당신의 피로”), 그 희생의 효과(“당신이 하나님을 위해 사서 ”), 구속의 범위(“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의 사람들”), 그 목적(“우리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와 제사장이 되게 하시고…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그리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하나님께서 정하신 절정(“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에 찬사를 보낸다.[13]  우리는 “경의와 경외심으로 나아가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계 1:2; 20: 4)에 대한 신실한 십자가 증인으로 반응하도록 초대받았다.(계 6:9-11; 19:10)

과업(the Task)의 규모

7,300개의 “미전도 종족(Unreached people groups, UPG)” (복음주의자는 2% 미만, 기독교인은 5% 미만)에 속해 있는 34억 명—인류의 40%—이다. 이들 중 20억 명은 “전방 개척 종족 그룹”에 속해 있으며, 사실상 어떤 종류의 기독교인도 없고 알려진 복음 운동도 없음. 1,600개의 “미접촉 UPG”, 이들을 전도할 계획이 알려진 바 없음. 복음과 교회 운동을 접할 수 없음. 개척적인 타문화 사역자가 필요함.[14]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수 13:2).

과업의 복합성

3,500개의 무슬림 미전도 종족 그룹(UPG), 2,203개의 힌두교 UPG, 511개의 불교 UPG, 925개의 부족 UPG(민족 종교인). 문화적, 사회적, 종교적, 정치적, 편견, 언어적 장벽. 도시화, 세계화, 이주, 선호 그룹, 다중 정체성, 청각 장애, 글로벌 청소년 문화, 박해.

과업의 실행 능력

글로벌 교회—10억 명의 대위임령 그리스도인(살아 있는 믿음), 인류의 13%. 중국, 아시아의 불교도, 오세아니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부족 집단, 동남아시아의 무슬림과 힌두교도를 대상으로 하는 운동을 통해 발전, 기관 간의 파트너십 증가. 서구 및 다수 세계, 지역 및 국제 네트워크 간의 협업. 미디어와 디아스포라 사역. 활발한 기도 운동.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시 2:8).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마 28:18).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행 1:8).

과업의 우선순위

99%의 국제 사역자들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의 99.99%가 살고 있는 세계 인구의 3/4에서 섬기고 있다. 모든 국제 사역자의 1%는 20억 명의 인구, 5,000개의 종족 집단, 0.01%의 기독교인으로 구성된 세계 1/4에서 섬기고 있다. 예수님은 99마리의 양을 떠나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셨다. “또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기록된 바 ‘주의 소식을 받지 못한 자들이 볼 것이요 듣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5:20-21).“우리의 소망은…너희 지역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고후 10:15-16).

과업의 긴급성

“’누구든지 주의이름을 부르는 자는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과업 성취의 동기[15]

  • 하나님께 영광 –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열정(요한복음 17:4; 벧전 2:9; 계 4:11; 5:12).
  • 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 – 그리스도를 선포하고 제자 삼으라고 하신 위임령(마 28:18-20; 행 1:8).
  • 타인을 향한사랑– 그들의 구원과 선에 대한 열망(눅 15:11-31; 롬 9:1-3; 고후 5:14-15).
  • 필요 잃어버린 자들의 영적, 육체적 필요에 대한 긍휼(마 9:35-38; 10:1; 14:13-31; 눅 19:41).
  • 보상하나님의 기쁨과 승인(고전 3:11-15; 고후 5:10-11; 살전 2:19).
  • 소망 -하나님의 목적 성취에 대한 열정과 비전(요 4:34; 17:4; 계 5:9; 7:9).

Endnotes

  1. Chris Maynard, “Shining a Light into a Dark Corner: Looking at Mission Information Work.” Global CMIS, 2018. https://www.globalcmiw.org/node/52.
  2. https://www.thetravelingteam.org/articles/your-jerusalem-judea-and-samaria
  3. Barry, J. D., Mangum, D., Brown, D. R., Heiser, M. S., Custis, M., Ritzema, E., Whitehead, M. M., Grigoni, M. R., & Bomar, D. (2012, 2016). Faithlife Study Bible (Is 49:6). Lexham Press.
  4. Ibid.
  5. Ibid.; cf. Isa 2:2–4; 56:3-8
  6. Note that, in context, the house of prayer ‘for all nations’ does not refer to a place of intercession for those outside the temple (eunuchs, foreigners), but to prayers by offered inside by people previously excluded but now welcomed by God; this house is ‘for all nations’ to offer joyful, acceptable worship.
  7. David Earl Datema, “Panta ta Ethne: A Biblical Case for the People Group Concept in Mission,” in People Vision, (ed.) Leonard N. Bartlotti, William Carey Publishing, forthcoming 2024.
  8. David Earl Datema, “The universal particularism of panta ta ethne: A biblical case for the continued viability of the people group concept in mission,” in Missiology: An International Review, Vol 50 (2), 2021, p. 9, revised and republished in Bartlotti (ed), People Vision (forthcoming, 2024).
  9. “The Living God is a Missionary God,” in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 Pasadena: William Carey Publishing, 2009, p. 3.
  10. Ibid., p.4.
  11. Steve Hawthorne, “The Story of His Glory,” in Perspectives on the World Christian Movement, Pasadena: William Carey Publishing, 2009. https://waymakers.org/hope/story-of-his-glory/
  12. Leonard N. Bartlotti, “Reimaging and Re-envisioning People Groups,” in Evangelical Missions Quarterly, Vol 56 (4), 2020, revised and republished in People Vision, (ed.) Leonard N. Bartlotti, William Carey Publishing, forthcoming 2024.
  13. G. D. Fee, Revelation: A New Covenant Commentary, Eugene, OR: Cascade Books, 2011, p. 88.
  14. Figures from https://joshuaproject.net , Dan Scribner, R.W. Lewis, and Chris Maynard. For a helpful theology of data and the importance of data in missions, see Chris Maynard, “Honouring Data in Missions,” WEA Missions Commission, Aug 26, 2023. https://weamc.global/archive/reimagining-data.pdf .
  15. 요 17:4; 벧전 2:9; 계 4:11; 5:12; 마 28:18-20; 행 1:8; 눅 15:11-31; 롬 9:1-3; 고후 5:14-15; 마 9:35-38; 10:1; 14:13-31; 눅 19:41;1 Cor 3:11-15; 고후 5:10-11; 살전 2:19; 요 4:34; 17:4; 계 5:9; 7:9.

Author's Bio

레너드 N. 바르트로티(Leonard N.(Len) Bartlotti)

레너드 N. 바르트로티(Leonard N.(Len) Bartlotti)는 선교 전략가이자 문화 간 교육자이며 이슬람 세계의 기관과 사역자를 위한 컨설턴트이다. 그와 그의 아내 데비(Debi)는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종족 집단 중 한 곳에서 14년 동안 섬겼으며, 그곳에서 그는 제자도, 민족 음악, 구호 및 개발 기관에 대한 컨설팅, 무슬림 문화, 민족 및 구비 문학 연구의 선구적인 사역에 참여했다.
고든 콘웰 신학교를 졸업하고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0년 영국 램피터(Lampeter)에 있는 OCMS(Oxford Center for Mission Studies)/웨일즈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OCMS, 바이올라 및 기타 대학에서 교수진을 지도했다.

렌 박사는 로잔운동의 최빈국을 위한 촉매자이자 비전 5:9 글로벌 동향 TF팀의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성경적 진리, 문화적 지식, 그리고 최소 복음화 종족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누는 데 열정을 가지고 있다. 렌과 데비에게는 세 명의 성인 자녀와 일곱 명의 손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