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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선교의 새로운 시대 속에서 살아가기

제3세계(Majority World)의 교회 성장에 응답하는 세 가지 방법

Justin Schell 31 1월 2023

지난 100년간, 기독교의 양상은 극적으로 변했다. 이것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믿는 자들에게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런던에 사는 한 친구가 있다. 그는 나에게 세계 교회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었다. “런던에 살게 된 이후로, 길거리에서 내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접근한 세 사람이 있었어. 두 사람은 아프리카, 다른 한 사람은 중국에서 온 사람이었어.” 이 친구는 아직 영국 사람이 이런 식으로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러한 경험은 세계의 현실, 즉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인이 세계 교회의 주를 이루고 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창이다. 오늘날 세계의 대략 77퍼센트의 복음주의자들이 대부분 이들과 같은 대륙 출신이다. 심지어, 2050년에는 그리스도인의 절반이 아프리카인일 것으로 추정된다.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의 시대 이후로 많은 것이 변했다.

I단순히 제3세계에서 그리스도인의 수가 더 많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내 친구가 겪은 일은 세계 선교에 있어 새로운 시대로의 변화를 보여주기도 한다. 한때, ‘서구에서 나머지 세계로 향해가는’ 것으로 여겨졌던 선교가 이제는 세계적이며,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향하는’ 다중심적 형태가 된 것이다. 백 년 전만 해도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라틴아메리카는 주로 선교지로 여겨졌다. 오늘날 그들은 선교의 원동력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기독교가 어떻게 이러한 전 세계적 현실이 되었는가?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는 주변의 문화들보다 더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많은 교회 역사가들이 한동안 알고 있었던 것, 특히 기독교가 세계적인 운동의 형태로 출발했으며 항상 그런 형태로 존재해왔다는 점이 강조되었다.

앤드류 월스(Andrew Walls)의 은하계 전공의 박사 과정 학생에 대한 이야기는 역사적인 교회가 가지는 세계적인 본성을 보여주는, 어쩌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예화이다. 한 외계인 학자가 지구라는 자그마한 행성의 ‘기독교’라 불리는 종교 현상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은하계를 날아 여행하기로 결심했다.

이 학생의 수명은 굉장히 길어서, 2000년이라는 시간 동안 지구를 여러 번 방문할 수 있었다. 방문할 때마다, 그는 그가 생각하기로 기독교의 중심이 되는 곳을 방문했다: 1세기에는 예루살렘, 4세기에는 니케아, 19세기에는 런던, 그리고 20세기에는 나이지리아.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보라(초대 교회의 유대인으로부터 나이지리아의 수많은 종족의 사람들 중 믿는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신학적으로 강조가 된 부분의 범위에 대해 생각해보라(예루살렘에서의 메시아를 향한 기대로부터 니케아의 견고한 삼위일체론, 그리고 서아프리카에서 성령님의 임재에 이르기까지). 예배와 선교의 다양성에 대해 생각해보라(성전 예배에서 수도원의 금욕주의, 심지어는 노예 폐지 운동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공간 모든 면에 있어 교회에는 다양성이 존재한다. 교회는 언제나 다양한 운동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또 다른 의미에서 여전히 어떤 새로운 것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 글에서 나는 종교개혁의 선교적 영향으로 모국어 번역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진 것과 모든 믿는 자에게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게 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의 사역이 주어진 것에 주목했다. 윌리엄 캐리(William Carey)라 불리던 구두 수선공이 성경을 여러 가지 언어로 번역하기 위해 인도로 가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해보라.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캐리의 사역은 향후 100년 동안 더 많은 사역의 모형이 되었다. 이로 인해 케네스 스콧 라투렛(Kenneth Scott Latourette)은 19세기를 교회 역사에서 위대한 세기라고 칭했다. 그가 말하기를,

이전에 기독교나 어떤 종교도 그렇게나 많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에 소개된 경우는 없었다. 같은 시간 동안 기독교나 다른 종교가 19세기 때처럼 그렇게 넓은 지역에 퍼져 나간 경우는 없었다. 기독교나 다른 종교가 널리 퍼져나가는 것을 돕기 위해 수십만 명이 자발적으로 기부한 경우는 없었다.

두 차례의 세계 대전으로 인해 세계가 황폐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추진력은 계속되었다. 한국의 경우를 보자면, 20세기 초 한국인 그리스도인의 비율은 1%였으나, 세기말에는 대략 25%에 다다랐다. 이는 필립 젠킨스(Phillip Jenkins)가 부르는 기독교의 새로운 국면(The New Faces of Christianity)의 한 예시일 뿐이다. 우리는 유럽과 북미의 모든 성공회 교도 및 성공회 교회를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그리고 점점 더 많아지는 성공회 신도들이 나이지리아에서 매주 주일 예배를 드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면,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형제, 자매들은 하나님을 예배할 뿐 아니라 선교를 위해 나가고 있다. 15,000명 이상의 선교사를 보유한 나이지리아 복음주의 선교 협회는 ‘지상대위임령을 완수하기 위한 선교 운동과 나이지리아 교회를 위한 교제 및 네트워킹의 플랫폼이 되겠다’라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인의 국가적 계획(African National Initiatives)을 위한 운동은 비슷한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대륙을 가로질러 사역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코미밤(Comibam)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그의 세계적 선교에 참여하도록 동원하는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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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spectives from Global South Christianity

Three scholars from Ghana, Brazil, and East Asia share key attributes and practices in their region.

한국은 한동안 선교사를 가장 많이 파송하는 상위 10개의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미전도 종족을 위한 중국 교회의 동원력은 아마도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면에서 아시아 2022 대회는 전례가 없는 행사였다. 첫째는 아시아 전역을 동원한 범위 면에서 그랬다. 둘째로 아시아 로잔, 아시아 복음주의 연맹, 그리고 아세아신학협회가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이다. 셋째로는, 대회에 앞서 연합을 위한 수년간의 노력, 그리고 교회를 개척하고 늘려가기 위한 준비와 지속적인 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내 마음 안에 가장 흥분되는 사실은 이것이 박해가 심해지고 있는 지역을 걸쳐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되기 가장 어려운 50개의 국가에 대한 오픈 도어(Open Doors)의 세계 기독교 박해보고서(World Watch List)에는 대부분의 아시아 지역이 포함되어있다. 나이지리아 또한 이 목록에 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밀물처럼 들어오기도, 썰물처럼 빠져나가기도 했으며, 이는 종종 박해라는 파도와 맞물렸다. 내가 아는 바로는 기독교 역사상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박해의 한복판에서 동원 운동이 일어난 적이 없다. 이는 순교한 세대의 영웅적인 신실함, 충성함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 자들, 혹은 복음이 탄압당하는 땅에 희생하는 마음으로 이동하여 그곳에서 사역한 자들을 무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박해에 대한 전형적인 반응은 믿음을 전파하기보다는 믿음 안에 굳건히 남아있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 시대는 하나님의 사람들의 역사에 있어 정말로 새로운 시대이다. 이 짧은 글을 통해 새로운 현실 속에서 대응하거나 앞으로 전진할 수 있는 모든 방법에 대해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아래의 세 가지의 제안을 통해 그 방법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1. 주님을 찬양하라

이전 세대의 선교 지도자들과 참여자들은 제3세계 국가들을 통해 교회가 개척되기를 꿈꿔왔다. 성샹치에(Sung Shang Chieh)는 오늘날 중국 교회의 성장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에이미 카마이클(Amy Carmichael)은 지금 천국에서 얼마나 기쁘게 인도 교회의 성장을 축하하고 있겠는가? 그들과 함께 기뻐하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다.

2. 국지적

선교에 있어서 세계적인 협력(partnership)이 목표일 수 있으나, 때로는 지역 단위로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전체를 이루는 각 부분이 건강해야 전체가 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3세계의 지도자들은 그들이 이어받은, 그리고 이끌어가고 있는 역사적 변화에 대해 청지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함께 만남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신학에서부터 교회의 관례, 그리고 선교에 이르기까지, 영적인 건강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최고 권위인 성경에 대해 기쁨으로 순종하며 겸손히, 그리고 절박하게 드리는 기도가 매우 중요할 것이다.

서양에서 우리는 문화적 힘이 더 이상 신앙에 동기부여를 하지 않는, 긴축(retrenchment)적인 상황이라 불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영향력이 상실되고 하나님의 집 안에서 수치스러운 죄가 드러남을 통해 결국에는 교회가 정결해지고, 아름답게 겸손해지며, 거룩해지게 되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는 전 세계의 형제, 자매들과 협력하며 더욱 섬김의 자세를 갖추게 되고, 더 밝게 빛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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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e Foreigners Still Needed in the Age of Indigenous 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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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협력을 위해 준비하라.

우리는 1974년 첫 번째 로잔대회 이후로 협력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는 여전히 해야 할 선교의 사명이 있고, 그 성공을 위해서 우리는 여전히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국지적, 지역적, 그리고 세계적으로 상호간의 협력이 필요하다. 얇고 두터운 협력, 화합적이고 보완적인 협력, 교회와 선교단체 그리고 양면의 복합적인 협력, 평신도와 성직자, 즉 우리가 명명한 느헤이야와 에즈라 협력관계가 바로 그것이다.

더 확장된 로잔4 과정 내 추진 활동 중 하나는 수천 명의 공동 작업팀을 동원하는 것이다. 이 팀들은 작은 규모일 수도, 혹은 꽤나 큰 규모일 수도 있다. 국지적, 지역적, 혹은 세계적일 수 있다. 그 팀들이 가지는 공통점은 2024년 서울 로잔대회와 그 이후, 심지어는 2050년까지 이어지는 연구를 통해 확인될 지상대위임령의 간격을 메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팀들을 만드는 데 소요되는 기금, 커뮤니케이션, 기술, 그리고 겸손함은 그 어떤 네크워크나 운동이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를 능가한다.

런던의 거리에서 복음이 선포되고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다. 제3세계의 교회에 성장이 있다는 것은 매우 경이롭다. 함께 이를 기뻐하자.

그리고 여전히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기억하자. 더 많은 기도.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더 큰 순종, 그 말씀에 의한 변화, 그 말씀의 전파. 아직도 복음을 전혀, 혹은 거의 접할 수 없는 수많은 민족이 있다. 서양에서는 회복이 일어나야 하고, 제3세계는 계속해서 성장을 이뤄가야 한다. 생애 처음 자신들의 언어로 복음 듣기를 기다리는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그리고 정령 신앙을 가진 수백만의 사람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그리스도를 닮은 리더십이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가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각 나라 족속과 백성, 방언의 모든 형제, 자매들과 함께 천국의 보좌 아래 함께 모일 때까지 서로를 필요로 할 것이다 (계 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