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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서치 회사인 입소스 그룹(Ipsos Group)은 2019년에 27개국에서 19,782명의 참가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참가자들에게 20년 전과 비교하여 정치적 분열로 인한 국가의 상황이 어떤지 물었다. 참가자의 41%는 사회가 더 위험해졌다고 했고, 14%만이 상황이 좋아졌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는 것은 사실 사회 건강에 도움이 된다. 생각의 다양성이 창의성을 키운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다양화와 악성 다양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양극화로 인한 문제가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은 2019년에 발간된 책, “분열된 민주주의(Democracy Divided)” 에서도 강조되었다. 저자들은 터키, 케냐, 미국, 인도, 폴란드, 콜롬비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 9개국을 각각 별도의 장을 할애하여 다루었고, 이들 모두가 전례 없는 민주주의 규범의 침식을 겪고 있다고 결론지었다. 잘못된 정보, 극단주의 및 증오 범죄가 전 세계 여러 곳에서 증가하고 있다.

사람들이 다양한 정치적 견해를 가지는 것은 사실 사회 건강에 도움이 된다. 생각의 다양성이 창의성을 키운다는 것은 과학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상적인 다양화와 악성 다양화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분열이 위험 수위에 이를 때, 즉 유독성 양극화의 경우, 정치적 대화는 사람들의 가치가 아니라 사람들의 정체성에 초점을 맞추는 특징을 보여준다. 단순한 의견의 불일치가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적극적인 혐오와 비인간화까지 동반한다. 분열은 가족, 지역 사회, 국가를 잔인하게 반으로 쪼갤 수도 있다.

이 불쾌한 경향의 많은 부분이 교회에 침투했다. 2022년 3월 바나 리서치 그룹(Barna Research Group)의 연구에 따르면, 미국 개신교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무려 42%가 지난 1년 동안 전임 사역을 그만두는 것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그 이유를 묻는 질문에 38%가 ‘현재의 정치적 분열’을 답으로 꼽았다. 전 세계의 목회자들도 비슷하게 느낄 것이다.

그러면 교회에서 이러한 건강하지 못한 정치적 분열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까? 양극화를 감소시키도록 해야 하는 것인가?

내 대답은 “아니오” 이다. 양극화를 줄이는 대신 양극화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교회는 다양한 그룹의 사람들로 구성되어야 하며, 그 다양성은 교회를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문제는 생각의 다양성 자체가 아니라, 오히려 악한 분열의 정신이 스며든 특정한 유형의 다양성이다.

교회에서 다양성과 일치의 위치

세계 교회는 일치와 다양성을 모두 구현해야 한다. 사실 이것은 고린도전서의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비록 교회 지도자들이 맡은 역할은 다르지만,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는 연합해야 한다(고전 3장). 사람마다 인생의 단계는 다르지만, 특별히 부르심을 받은 대로 연합하여 살아야 한다(고전 7장). 비록 성령이 각기 다른 신령한 은사를 주실지라도, 그들은 그 은사를 공동의 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권세를 받아야 한다(고전 12장).

하나님은 교회가 일치와 다양성을 모두 구현하도록 설계하셨다. 우리의 통일성이 일차원적이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다양성이 분열되어서도 안 된다.

일치와 다양성이 함께 건강한 양극화를 보장한다. 다양성을 희생하면서 화합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서로의 복제품이 되고, 교회는 1차원적 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17절에서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고 했다.

반면에 통일성을 희생하면서 다양성을 강조한다면 우리는 악성 양극화의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우리는 끼리끼리 모여,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정죄하게 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장 21절에서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고 했다.

하나님은 교회가 일치와 다양성을 모두 구현하도록 설계하셨다. 우리의 통일성이 일차원적이어서는 안 되며, 우리의 다양성이 분열되어서도 안 된다.

양 극단의 위험

불행하게도, 정치에 관해, 전 세계의 많은 교회 지도자는 종종 다양성을 희생하면서 단일성을 선택하거나 단일성을 희생시키면서 다양성을 선택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그러나 어느 극단도 성경적 모델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한편으로, 다양성을 희생하면서 통합을 선택하는 사람은 종종 정치를 얕잡아 본다. 세속 정치는 교회의 일치를 방해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투표, 시위, 소셜 미디어에 의사 표현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이것들을 교회 담장 밖에서 유지해야 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예배나 교제를 위해 모일 때, 서로의 다른 점을 접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통일을 포기하고 다양성을 선택하는 사람은 정치를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람은 교회에서 정치를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 것은 우리의 도덕적 가치를 타협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뉴스의 특정 사건을 강조하지 않는 교회를 정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정한 정치적 문제에 대한 입장을 취하는 것이 기독교인이 취해야 할 유일한 입장이라는 것이다.

양 극단의 입장에 모두 위험성이 있으니, 양쪽에 몇 마디 하려고 한다.

정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고려해야 할 것은 이것이다. 정치를 예배당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교회는 일치도 다양성도 이루지 못하게 된다. 정치적 다양성뿐만 아니라 진정한 통합도 저해될 것이다. 결국, 화합의 정의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에 대한 경시로 인해 소수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무시당하고 평가절하된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이러한 유형의 ‘통일’은 실제로 분열을 일으킬 수 있다.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 다름을 숨기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 진정한 일치는 우리의 차이점을 확인하고 수용하며 서로를 똑같이 사랑하는 데 있다. 즉, “나는 이제 우리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다른 경험과 가치관, 이야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우리의 일차적인 충성은 정당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나라와 전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다.

또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들은 종종 가장 상처를 받았거나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교회에서 정치를 허용하지 않게 되면, 그들의 고통이 교회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메시지가 전달된다. 뉴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해 슬픔과 고통을 겪고 있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에서 위안을 찾지 못하게 되면, 그들은 정치적 제자도를 위해 TV나 소셜 미디어를 찾게 된다. 대부분의 경우, 이런 행동은 당파성과 고립감을 높이는 역할만 한다.

그리고 정치를 우상화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도 유사하다. 정치를 최우선으로 하는 교회는 통일성도 다양성도 이루지 못한다. 영적 일치가 방해 받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다양성도 방해 받게 되다. 교회에 참석할 유일한 사람들은 당신과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러한 유형의 ‘다양성’은 실제로 획일성을 유발할 수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온라인에서 친구 관계를 끊고 가족 관계마저 단절하고 교회나 교단을 떠날 때, 이는 점점 자기를 분리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의 모든 정체성의 중심을 다름(difference)에 둔다. 우리 정체성의 특정 측면이 너무 간과되었다고 생각하면, 추의 반대편으로 기울어져, 그 측면을 다른 모든 정체성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적 정체성이든, 성적 정체성이든, 정치적 정체성이든, 우리는 우리의 주요한 정체성이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주된 가족은 우리의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교회인 것이다.

천적의 무리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택하신 기관은 정부가 아니라 교회이다. 결국 우리는 개별 국가의 정치보다 하나님 나라의 정치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일차적인 충성은 정당에 대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나라와 전 세계에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어떠한 모습일까?

간단히 말해서 정치 이야기를 환영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정치적 문제에 관한 사려 깊은 설교, 성경 연구, 패널 대화 및 세미나가 필요하다.

간단히 말해서 정치 이야기를 환영하는 교회가 필요하다. 정치적 문제에 관한 사려 깊은 설교, 성경 연구, 패널 대화 및 세미나가 필요하다. 우리는 소외된 이들과 낙심한 이들을 위한 플랫폼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온 교회가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를 우상화하지 않고 당파적이지 않으면서, 이 모든 것을 해야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에게 정치에 대해 말하는 법을 가르치는 교회가 있어야 한다. 겸손과 은혜로 정치에 참여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중상하거나 과장하려는 유혹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을까? 정치적 정체성보다 영적 정체성을 어떻게 우선할 것인가?

많은 문제에 대해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친구가 있다. 내가 페이스북(Facebook)을 통해 생각을 게시하거나 기사를 공유할 때마다 그는 종종 내 댓글 섹션에서 자신이 동의하지 않는 이유를 알려준다. 그러면 나는 보통 겸손과 분별력으로 응답하려고 노력하며, 의견이 다르다는 것에 동의할 때까지 의견을 주고받는다. 나는 우리의 대화가 우리의 입장을 많이 바꾸리라고 확신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것은 온라인에서 보는 사람들에게 건강한 방식으로 대화하는 방법의 공개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21년 1월, 워싱턴 DC에서 시위가 있었고 많은 사람이 미국 국회의사당 건물에 침입했다. 이는 미국에서 매우 논쟁적이고 분열적인 사건이었다. 다음 토요일에 나는 일어난 일에 대한 내 생각을 페이스북 글에 썼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친구가 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은 그가 쓴 글이다:

저는 이번 주에 우리 국가와 정치,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난 사건을 위해 많이 기도했습니다. 당신은 내일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목사님 같은데, 이런 상황 가운데 감정적일 수 있는 성도들을 돌보며,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지혜와 신실함을 달라고 특별히 기도했습니다. 내가 당신의 논평 섹션에서 비판적이지만 (그리고 그것은 아마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응원하고, 당신은 내가 관심 있는 문제에 대해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목사로 제 친구들에게 추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원수인 우리를 취하여 친구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서로 그와 같이 하라고 명령하셨다.

여러 면에서 이 친구는 정치적 다양성 속에서 교회의 일치를 구현했다. 비록 그는 나와 같은 정치적 충성을 공유하지는 않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로서 나와 함께 서겠다고 약속했다.

많은 사람은 종종 통일성이 공통성(commonality)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누군가와 공통점이 많을수록 당신은 그 사람과 더 일치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생각은 기독교의 복음과는 맞지 않는다. 십자가의 도는 우리가 예수와 아무 공통점이 없으나, 그가 오셔서 육신을 입고 영원히 우리와 연합하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사랑으로 원수인 우리를 취하여 친구로 삼으셨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서로 그와 같이 하라고 명령하셨다.

D.A. 카슨(D.A. Carson)은 그의 책, Love in Hard Places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교회]는 원수들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공통된 교육이나 인종, 소득 수준, 정치, 국적, 억양, 직업 또는 그 밖의 그 어떤 것도 아니다.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이유는 그들이 자연스러운 배열을 형성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구원받았고 그에게 공통된 충성을 빚지고 있기 때문이다. . . 이런 점에서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 서로 사랑하는 원수의 무리이다.

교회의 목표는 획일성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정치를 신중하게 받아들일 때, 우리의 희망은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투표하도록 설득하거나, 어느 한 정당에 대해 몰표를 주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같은 방식으로 투표하지 않더라도 서로 경청하고, 서로에게서 배우고, 서로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서로를 돌보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교회가 다양성 가운데 하나 되어, 결과적으로 복음을 영광스럽게 드러내도록 해야 한다.

사진 출처

Original illustration by Sandy Swartzentruber

래리 린(Larry Lin)은 주로 캠퍼스와 목회 사역을 맡아 왔다. 그는 현재 신앙 공동체가 분열에 맞서고 정치적, 인종적, 종교적 분열을 넘어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하는 비영리 단체인 원 아메리카 운동(One America Movement)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복음을 현재의 사건과 연결하고 교회가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도록 동원하는 일에 열정이 있다. 래리(Larry)는 아내 반-킴(Van-Kim)과 두 자녀와 함께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살고 있으며, 웹사이트나 페이스북을 통해 소통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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