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15살쯤 되었을 때 어린아이와 같이 항복하는 자세로 두 손을 펴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간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기도했다. 비록 그때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거의 이해하지 못했지만, 나는 세월과 시간과 힘과 돈과 생각과 마음의 최선을 다해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섬기겠다고 다짐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나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게 응답해 주셨다. 주님을 섬긴 지 20년이 넘은 지금, 나는 기독교인으로서의 섬기도록 우리를 부르신 것에 대해 그 당시에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던 무언가 매혹적인 것들을 깨달았다.
첫째, 기독교인으로서의 우리가 행하고 있는 사역에 대한 소명은 긴급한 일이지만 결코 특정한 필요를 충족시키고, 사역의 자리를 채우거나, 특정한 행동을 진전시키기 위한 일차적 소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우리의 소명은 한 사람의 총체적인 언행을 보고, 알고, 따르고, 포용하는 것이다. 그 사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결과적으로 우리 사역의 효율성은 우리의 많은 외적인 성취나 지적 달성에서 발견되거나 측정되지 않는다. 대신에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신실하게 예수님을 알고 따르는지, 그리고 우리의 계획, 힘, 능력, 권세 또는 능력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와 능력과 임재 안에서 발견된다. 이것은 특히 우리 중에서도 추진력이 강한 사람들에게는 실행에 옮기는 데 큰 어려움이 될 수 있다.
셋째, 나는 기독교 사역이 공식적인 성직자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교회 건물에만 국한되어서도 안된다.
주로 기독교계가 이끄는 사역들은 꼭 필요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이것은 (선교팀원, 청년부 목사, 선교 목사, 음악가, 강사 또는 기타의 역할을 맡은 이로서) 아프리카, 아시아 및 캐나다의 많은 상황에서 나의 소명과 사역을 통해 내가 깨달았던 점이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유일한 증거가 나의 자원하는 마음과 열린 손과 성경 뿐이었던 오랜 기간도 경험해 보았다. 그렇다면 나의 부족한 사역 환경은 내가 사역을 그만둘 때임을 알리는 신호가 되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종들을 선택하시고 보내실 때 그들을 온갖 곳으로 보내시며, 가끔씩은 지역 교회로도 보내신다.
종의 척도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우리가 특정 사역 환경에서 어떤 공식적인 역할이나 지위를 맡느냐 하는 것은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이렇다.
위대한 족장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라. 그는 공식적인 제사장이었는가? 전통적인 성직자의 의미로 볼 때 그는 그런 역할을 맡고 있지 않았다. 그는 고향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평범한 농부였다. 그가 어떻게 들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 귀를 기울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신뢰했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순종했으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열방의 조상이 되었다. 오늘날 세계 3대 종교(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의 영적 유산은 그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비밀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그의 믿음이었다. 그는 자신의 직업과 위치가 부차적인 문제가 될 정도로 하나님의 인격과 임재와 음성에 몰두했다. 하나님은 그의 주된 비전, 소명, 지도자, 친구였다. 그런 자세가 모든 것을 변화시켰다.
열왕기와 역대기에 이스라엘과 유다의 위대한 왕들에 대해 기록된 모든 것을 생각해 보라. 북이스라엘 왕국의 18명의 왕들 중, 제대로된 왕이 유일하게 한 명이 있었는데 그마저도 여전히 좋은 속성과 나쁜 속성을 동시에 갖고 있었다. 그리고 유다의 23명의 왕(그리고 한 명의 여왕) 중에서, 하나님을 온전히 기쁘시게 한 사람은 네 명에 불과했고 다른 소수의 왕들은 부분적으로만 그렇게 했다.[1]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틀어 이와 같은 구절들이 친숙하게 반복된다. ‘아사랴가 그의 아버지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였으나 오직 산당은 제거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열왕기하 15:3~4, 개역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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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ost Strategic Mission Field
The workplace is the key to fulfilling the Great Commission.
예배와 기도로 그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그들의 업적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중요했다. 그들의 다른 성공에 대한 내용은 성경 이외의 역사 책에서 더 자세히 기록되었지만 성경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은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는지 여부이.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하는 일이 그분에 대한 우리의 진실하고 진심어린 헌신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제자들도 대부분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이었다. 그들은 어부, 세리 등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섬기는 공적인 성직자나 제사장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놀라운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영으로 무장되고 능력을 받았다. 그렇다면 그들의 비결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과의 관계와 성령님의 능력이 평범한 사람들을 비범하게 만들었다.
바울의 동료 선교사들은 대부분 헌신적인 평신도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 주요 도시를 여행하면서 유럽 전역에 복음을 전파하는 새로운 종류의 선교 사업을 개척했다. 다시 말하지만, 그들의 노력을 통해 생명을 가져온 것은 그들 안에 있는 성령의 능력이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지상에서 예수의 어머니가 된 어린 소녀 마리아는 어떤가? 그녀의 소명이 얼마나 평범하면서도 비범했는지 생각해 보라. 더러운 기저귀를 갈거나 침을 흘리는 입을 닦을 때 하나님의 임재가 그녀의 가정 생활을 흠뻑 적셨다. 그것이 그녀의 사역, 즉 그녀의 고귀한 소명이었다. 그녀는 공적인 성직자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집이 그녀의 교구였다.
또한 가브리엘 천사가 성전 제단에서 섬기는 제사장인 엘리사벳의 남편 사가랴를 방문한 것을 생각해 보라. 마리아는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묻는다.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눅 1:18, 38, 개역개정). 따라서 가브리엘은 그들에게 아들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성취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에 스가랴가 말을 못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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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fficult Terms: ‘Whole-Life Discipleship’
Imagine the missional potential if every follower of Christ was trained and equipped to follow him 24/7.
누가복음에 나란히 배치된 두 이야기는 성전 사역이 사역의 신실함을 나타내는 경우가 거의 없음을 미묘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마리아는 성전에서 섬기는 공식 제사장이자 성직자인 스가랴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성경적 예들은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섬기는 일에 대한 단순한 진리를 보여준다. 그분의 능력과 임재는 우리 삶의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우리 자신의 행위로 얻을 수 없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일을 믿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기도, 겸손, 믿음, 하나님을 의지하는 태도는 항상 우리 사역의 중심 목표이자 초점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역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어디서든지) 항상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는 헌신,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성령님의 충만함과 권능과 인도하심을 받는 것에 대한 헌신이어야 한다.
전 생애 사역을 되살리다
사역의 소명에 대한 이 근본적인 진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섬김의 장을 열어준다. 내가 성직자든 사업가든, 안내인이든 회계사든, 미혼 여성이든 기혼 남성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을 헌신적으로 따르는 사람이고, 그 모든 공간에서 그의 이름을 전하며, 정직하게 살고, 그의 빛을 비추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서 성령의 권능과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노력으로 얻는 지위, 필요 또는 성공이 아니라 자기 부인, 분별력, 사랑, 성령의 권능, 순복, 겸손, 용기, 그리고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찾아가기를 원하신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을 위하여 온 교회를 동원하기 위해 우리는 또한 적어도 네 가지 주요 영역인 씨족(가족), 직업(직업), 지역 사회( 이웃 ) 및 회중(지역 교회 및 사역)가운데 이뤄지는 진심어린 사역 봉사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한다. 선교적 부흥의 중요한 부분은 기독교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다양한 종교적, 비종교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하고 섬기는 이 모든 곳에서 사역에 더 능숙해지는 것과 관련이 있다.
바울은 사도행전 20장 24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달리고 완주해야 할 정해진 길이 있다고 말했다. 이 과정은 주 예수님께서 친히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올림픽 선수들처럼 우리도 그 코스를 달릴 수 있도록 성공적으로 훈련해야 한다. 기독교 운동의 미래는 우리 교회의 ‘평신도’ 교인을 어떻게 평가하고, 훈련하고, 권한을 부여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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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er Upon Shigionoth
Why are there so many who don’t know Jesus? Jervis Djokoto implores God to revive his church.
미주
- ESV 스터디 바이블의 ‘열왕기상 1-2장에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에 대한 평가’ 도표에서 발췌, https://www.esv.org/resources/esv-global-study-bible/chart-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