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그래함을 기억하며  |  존 스토트를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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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잔운동의 이야기는 특별한 우정과 함께 시작됩니다. 1955년, 복음 전도자 빌리 그래함 (Billy Graham)은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열린 집회의 설교자로 초청을 받았습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는 그 과정에서 빌리 그래함의 주요한 조력자였습니다. 이후 두 젊은 사역자들은 우정을 쌓게 되고, 평생 지속된 이들의 우정은 로잔운동의 탄생으로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둘 사이의 우정이 시작된 지 약 20년 후, 빌리 그래함은 정치적, 경제적, 지성적, 그리고 종교적 격변이 일어나고 있는 세상 속에서 기독교 선교의 의미를 다시금 정립하는 국제 대회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래함은 이러한 일이 ‘전 세계 복음화라는 공동의 과업’을 위해 전 세계의 리더들이 연합할 때만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함과 스토트의 우정은 1974년 7월 스위스 로잔에서 개최된 세계복음화를 위한 국제대회의 토대가 되었습니다. 150개국의 2,400명이 넘는 참석자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타임지의 표현에 따르면, 이 대회는 ‘아마도 지금껏 개최되었던 어떤 모임들보다도 가장 광범위한 놀라운 모임’이었습니다.

이 대회는 빌리 그래함이 그토록 고대해왔던 성경적 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존 스토트가 주 설계자(Chief architect)로 참여한 로잔 언약이었습니다. 현대 교회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서 중 하나로 평가받는 로잔 언약은 지난 20세기 말 이래로 복음주의자들의 사고를 형성해왔습니다.

빌리 그래함과 존 스토트가 평생 전 세계 복음주의자들에게 발휘했던 지도력은 독보적인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또 다른 빌리 그래함이나 존 스토트를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래함과 스토트의 동반자 협력, 곧 전도를 향한 열정과 신학적 성찰과 바른 신학과 바른 실천을 하나로 묶는 운동을 일으키는 일에 협력했던 두 사람의 모습은 복음주의자들에게 하나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빌리 그래함이 ‘로잔 정신’– 겸손, 우정, 기도, 연구, 파트너십, 그리고 소망의 정신 – 이라고 불렀던 이 정신은 오늘날까지도 로잔운동의 국제 대회, 국제 콘퍼런스, 주제별 포럼과 협의회를 통해 면면히 지속되고 있습니다. 존 스토트와 빌리 그래함의 우정이 보여주었던 바로 그 정신 말입니다.

로잔의 독특한 부르심 로잔의 역사와 유산 로잔과 연결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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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래함을 기억하며:
추모 영상

이 특별 영상은 1974년 제1차 로잔대회에서 발표한 분명한 외침과 전 세계 구석구석을 누볐던 발자취를 중심으로 빌리 그래함이 남긴 유산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합니다.

로잔운동, 창립자 빌리 그래함을 추모하며

빌리 그래함 목사가 주님과 함께 안식하게 되었음을 알리는 공식 부고 보도자료

전 세계 로잔 리더들이 추억하는 빌리 그래함

전 세계의 로잔 리더들이 빌리 그래함과 나누었던 교류를 회상합니다. 또 그의 장례식을 기도함으로 회고하며 쓴 마이클 오의 블로그 글을 읽어보세요.

왜 로잔인가?

1974년 로잔대회에서 전한 그래함 목사의 연설은 4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강력합니다.

존 스토트를 기억하며:
추모 영상

목사요 신학자, 전도자, 작가 또 로잔운동의 주 설계자(Chief architect)인 존 스토트는 2011년 주님과 함께 안식에 들어가기 전까지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었습니다. 이 추모 영상은 복음주의 기독교를 형성하는데 그가 미쳤던 기념비적인 영향을 그리고 있습니다.

로잔언약 – 존 스토트

빌리 그래함은 스토트가 ’16세기 유럽 개혁가들 시대 이후로 찾아보기 힘든 진정한 성경적 학자의 시금석’과 같은 인물이라고 그의 글에 쓴적이 있습니다. 이 로잔 언약은 스토트의 학문적 그리고 복음적 열정의 본보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