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Analysis

교회와 국가의 ‘아파르트헤이트’

이중 국적자를 위한 필그림 정치

Simon Jooste 1월 2023

나는 아프리카 남쪽 끝에 위치한 케이프타운(Cape Town)이라 불리는 도시에서 영어 다문화 개혁파 교회를 담임하고 있는 목사이다. 네덜란드의 정착민들이 처음 케이프에 상륙했을 때인 1652년 이후로, 교회는 식민주의, 노예제도, 인종차별에서 외국인 혐오 및 부패에 이르는 다양한 정치, 문화적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지상대위임령을 이뤄가기 위해 고군분투해왔다.

다시 말해서, 남아프리카 교회는 여러 가지 대립하는 안건(agenda), 특히 국가가 내세운 안건들이 넘쳐나는 세상 속에서 십자가의 임무를 다하고자 노력해왔다. 이 글은 민간 정부의 정책에 변화를 주거나 이를 준수했던 교회의 모습에서 배울 수 있는 몇 가지 교훈을 제시한다. 나는 교회의 소명과 중심 교리인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 alone)를 지키기 위해, 교회와 국가 사이에 ‘분리’(apartheid, separation)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1]

인종차별정책(Apartheid) 이후 만델라의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해하기

1995년 넬슨 만델라는 유럽인, 그리스도인, 백인, 흑인이 함께 섞여 있는 민족의 복잡한 역사를 넘어 만들어진 새로운 자유 민주주의 국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남아프리카 교회는 여러 가지 종교가 섞여 있고, 불완전한 배경 속에서 교회의 역할에 대해 처음으로 고민해야 했다. 더 이상 교회의 어떤 특정한 전통이 인종적 편견의 체계에 대해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았다. 국가와 교회 간의 뚜렷한 구분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믿는 사람들에게 일반 정치를 포함한 삶의 모든 면에서 성경 말씀을 청사진으로 삼는 것은 확실히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2]


Young Nelson Mandela

하지만, 서구의 국가와 다르지 않은 만델라의 ‘무지개 국가(rainbow nation)’에서의 이러한 발전은 법치주의와 복음 증거 모두에게 좋은 것이 되었을 것이다. 자유 민주주의의 최선으로 여겨지는 국가와 교회의 분리에 대한 생각은 천주교과 개신교 전통의 선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창세기 8:20-9:17과 로마서 13장과 같은 성경 구절에 근거하여 신학자들은 정부가 정치적 질서와 평화를 위해 특별히 신성한 권위 및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관점에서 민법의 최선은 인위적인 의견이 아닌 창조의 질서에서 발견된다. 즉, 정의로운 세속적 통치는 불완전하나,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으며 세상 속에서 분별될 수 있는 하나님의 자연적 법칙을 반영한다는 것이다(롬 2:14-15 참조). 성경은 이 자연적 법칙들에 대해 증언한다(잠언 참조). 목회자들은 그것들을 설교하고 그리스도인들이 그에 따라 살아가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도록 권고해야 한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일반은총 진리가 발견될 수 있는 모든 곳에서 그 진리를 받아들임으로써 인종 차별과 같은 사회적 병폐와 싸우는 것이 꼭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3]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회중 가운데 차별과 같은 불평등이 발견되었을 때,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을 해야 할까?

지난 25년 동안 인종의 통합을 향한 모든 종류의 남아프리카 교회의 여정은 느리고 불완전했다. 주목할만한 일 중 하나는 대표적인 네덜란드 개혁파 교회가 인종차별정책 제도를 공식적으로 지지한 것에 대해 회개를 했다는 것이다. 강제된 인종 불평등의 여파로부터 회복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싸우는 다른 종류의 죄들과 다르지 않다. 차이라면, 교회는 그 부당함을 십자가의 방법으로 다룬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 공동체는 분명하게 다른 도덕적 나침반을 가지고 있다. 몇 가지 적절한 성경적 예를 통해 이러한 현실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4]

서로 모순되는 신적 정의와 민간적 정의

먼저, 교회는 그 어떤 민법도 할 수 없는 인간 마음의 타락을 드러내는 율법의 사역에 관여한다(고후 3:6). 이 사역은 예수님의 팔복을 통해 비춰진 십계명의 두 판 모두에 초점을 맞춘다(신 5:6-21; 마 5-7장; 갈 6:2). 어떠한 생각이나 의도, 행동도 이를 피해갈 수 없다. 이들은 ‘하나님의 완벽하고 거룩한 기준을 비껴가는 신적인 통치를 추구하는 악한 마음’과 같은, 세상의 기관에서는 보이지 않는 원천으로부터 흘러간다 (창 6:5). 아담의 첫번째 죄는 매우 정치적인 죄라고 할 수 있다. 그 이후로 죄인들은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 하나님과 사람 위에 군림하려 하는 유혹을 받고 있다 (창 3장; 8:21; 11장).

민간 정부가 악을 제어할 수는 있지만, 죄로부터 자유함을 줄 수는 없다.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만이 정치적 억압에 대한 합리적인, 그리고 잠정적인 해결책을 제공할 수 있다 (창 9:6; 롬 13장). 대조적으로, 교회의 임무는 국가와 문화에는 이질적인 메시지인 하나님은 구원자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계시는 비례적(proportionate) 정의에 대한 인간적 개념과는 극히 모순된다(창 3:16; 요 3:16; 고후 5:21).[5]

고통과 죽음을 통해 의로워지고 성화되어지는 것

교회 생활에서 죄의 문제는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정의를 만족시키기 위해 예수님이 고통받으시고 죽으신 것에 초점을 둔다 (롬 3:21-26). 아이러니하게도, 그리스도는 1세기 로마에서 죄인들이 ‘정의’를 추구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하나님께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위, ‘선한’ 사람들이 그의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마 27장). 교회의 윤리는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으시고, 연약함을 덮으신 예수님의 역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선행을 찬양하고 인간 고통의 악을 줄이려는 더 넓은 사회 개혁의 정당하고 궁극적인 추구를 바램을 전복시킨다 (롬 13장 참조). 교회에서는 고통을 신기할 정도로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그리고 각자의 십자가를 진다는 그리스도인 성화의 특징이 이에 해당한다 (마 16:24-28; 롬 6:1-11; 고전 1-2장; 고후 1장).

교회는 죄인들이 소망을 가지고 율법에 대한 확신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에서의 한 장소이다 (롬 5-6장; 고후 3장). 교회는 또한 율법이 그릇되게 사용될 때 위험해질 수 있는, 그리고 옳지 못한 이유로 선행을 했을 때 심판을 받을 수도 있는 한 공동체이다 (갈 3:9-13). 행동주의와 율법에 따른 보상이 세상적인 기준으로는 적절하지만, 교회는 자신의 의를 위하여 율법을 지키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갈 1-2장; 고후 3장).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율법에 대해 읽고 설교하는 것으로 그 육체를 십자가에 못 박으신다 (행 2:42; 롬 10장; 갈2:20). 그리스도의 죽음에 동참했을 때 비로소 율법은 새로운 그리스도인에게 ‘어떻게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을지’에 대해 알려주는 안내자가 된다 (골 3장).

필그림 정치(Pilgrim Politics)

신도들의 회중(congregation)은 율법을 어긴 자들이 하나님과 사람들에 의한 인과응보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가장 악한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가 저지른 죄악과 극악한 반역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치르지 않는다. 대신, ‘경건한’ 척하는 사람, 매춘부, 편견에 갇힌 사람 모두 무한한 자비를 누리게 된다. 그들이 함께하는 곳은 굴곡없이 평평하다.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죄와 영생만을 가진 죄인과 성자만이 그곳에 있다. 교회는 두번의 기회, 일흔일곱번의 기회가 주어지는 기묘한 공간이다 (마 11:19; 18:22).

그러므로, 교회 생활은 일반적인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다. 개인의 권리가 중요시되고 억압하는 자들이 옳다 여겨지는 세상 속에서 믿는 자들은 핍박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도 너그럽게 다른 뺨을 돌려 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자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모임은 나중된 자가 먼저되는 곳이며, 눈에 띄지 않는 자가 더 큰 영광을 얻게되는 곳이기도 하고, 사회적, 인종적, 생물학적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리더가 섬기는 곳이다. (마 5-7장; 고전 1:18-31; 15:35-58).

예수님께서 사회적, 정치적인 변혁을 이루지 못했다는 이유로 대중의 멸시를 받았던 것처럼, 교회는 연관성 및 성공이 없어 보인다는 이유로 조롱받는다. 예수님의 사역처럼, 교회는 생명을 가져오는 죽음과 포기의 메시지를 통해 천국을 확장시킨다. 이 메시지는 말씀과 성례라는 평범한 수단을 사용하는 연약한 성직자들을 통해 비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전달된다 (사 53; 마 27:45-56; 고전 1-2장; 11장; 고후 1장).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신약 교회는 구약 시대의 족장들, 욥, 박해받던 선지자, 그리고 유대인 망명자들과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모두가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순례자의 위치에 있다는 것이다 (벧전 1-2장; 계 21장). 그리스도께서 신정 공동체인 이스라엘의 모형 및 그림자의 완전체이시기 때문에, 건강, 부, 번영의 가능성은 공통된 문화적 명령을 통해서만 나온다 (창 8:20-9:17; 눅 24장).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리스도인들은 각자의 십자가를 지고 불의를 겪어내며, 완성될 영광을 기대하며 죽어야 할 것이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

요컨대, 성경을 통해 바라보는 교회의 필그림 정치가 갖고 있는 십자가적 성향은, 교회가 세상적 관념의 정의, 권력, 영광과 얼마나 상충하는지 보여준다. 하나님의 말씀, 곧 지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육신이라는 특별한 구조는 믿음의 공동체에 반문화적인 지상대위임령을 부여한다 (요 18:36; 마 28장). 성경은, 교회의 힘이 사회 개혁을 국민의 생활이나 사회 개혁을 포함한 인류 역사의 집단적인 성과에서 발견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서처럼, 교회는 성장하고 승리할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은 눈에 보이는 결과를 원하는 세상으로부터 숨겨진 열정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위와 같은 교회 생활의 윤곽을 고려할 때, 교회는 어떻게 국가 윤리에 변화를 주거나 혹은 그에 따를 수 있을까? 법과 복음 사이에서 혼동이 되지 않겠는가? 창조가 무너지고 구원이 되는 것인가? 믿음과 자연 이성이 어우러지는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정치적 자유주의가 도래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의 공적 역할에 대해 재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것은 어쩌면 잘된 일이다. 교회가 정의를 추구하는 정치 이론이나 정당의 의견을 포함하거나 반영해서는 안되는가? 그렇다면, 교회와 국가의 ‘분리’라는 약속은 어떠한가?[6]

두 왕국(Two Kingdoms)과 자연법 패러다임(Paradigm)을 위한 시간?

일부 (혹은 많은) 독자들은 교회와 국가를 분리한다는 이 발상이 거슬린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편함이 십자가의 공격적인 메시지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어거스틴의 두 도성, 루터와 칼뱅의 자연법과 두 왕국의 정치 신학, 그리고 현대 루터교, 장로교, 개혁파 교회에 이르기까지, 이 관점을 받아들이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실질적인 전통이 있다. 삶의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의 통치하심에 대해 말하는 이 관점은 그리스도인을 이중국적자라 칭한다.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는 교회의 정책에 따르지만, 동시에 민간 정부의 비례적 정의 통치하에서 불신자들과 함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7]

이 패러다임의 가치는 교회의 지상대위임령과 복음을 지켜내는 그 약속에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하라는 지상대위임령을 실현하며 자유롭게 사회 속에서 잠정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회 안팎으로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가 확산됨에 따라, 에큐메니컬(ecumenical) 그리스도와 문화 담론의 측면에서 두 왕국과 자연법 패러다임을 위한 공간이 어느 때보다 많은 것 같다.[8]

미주

  1. See article by Thomas Harvey, entitled ‘The State and Religious Persecution’, in the March 2016 of Lausanne Global Analysis, https://lausanne.org/content/lga/2016-03/state-and-religious-persecution.
  2. Simon N. Jooste, ‘Recovering the Calvin of “two kingdoms”: A historical-theological inquiry in the light of church-state discourse in South Africa’ (PhD diss., University of Stellenbosch, 2013), Chap. 3, https://scholar.sun.ac.za/handle/10019.1/80065; and ‘From Orange to Pink: A History of Politics and Religion in South Africa’s Cape Town,’ Modern Reformation Nov/ Dec 2021.
  3. A contemporary leading proponent of this perspective is David VanDrunen. See Living in God’s Two Kingdoms: A Biblical Vision for Christianity and Culture (Wheaton: Crossway, 2010); Natural Law and the Two Kingdoms: A Study in the Development of Reformed Social Thought, Emory University Studies in Law and Religion (Grand Rapids / Cambridge: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2010); Divine Covenants and Moral Order: A Biblical Theology of Natural Law (Grand Rapids, Eerdmans, 2014); and David VanDrunen, Politics after Christendom: Political Theology in a Fractured World (Grand Rapids: Zondervan, 2020). See also Bryan D. Estelle, The Primary Mission of the Church: Engaging or Transforming the World? (Fearn, Mentor Imprint, 2022); R. Scott Clark, Recovering the Reformed Confession: Our Theology, Piety, and Practice (Phillipsburg, NJ: P&R, 2008); Michael Horton, The Christian Faith: A Systematic Theology for Pilgrims on the Way (Grand Rapids: Zondervan, 2011); and D.G. Hart, A Secular Faith: Why Christianity Favours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Chicago: I.R. Dee, 2006).
  4. My hermeneutic draws inspiration especially from Martin Luther’s 1518-1519 Heidelberg Disputation; see Luther’s Works, Vol 31, edited by Helmut T. Lehmann (Philadelphia: Fortress Press, 1957).
  5. A related way in which the church defies the standards of the world is her material abundance that transcends worldly economic scarcity (2 Cor 8-9).
  6. I seek to answer these questions in a forthcoming volume called Pilgrim Politics: Recovering the Cruciform in our Creed (2023).
  7. See endnote 2 above.
  8. Jooste, ‘Recovering the Calvin of “two kingdoms”’. I am grateful for the input of David VanDrunen on sections of this essay.

Author's Bio

Simon Jooste

사이먼 주스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케이프타운 출신이다. 2014년부터 남부 교외의 개혁파 교회의 목회자로 섬기고 있다. 2010년 남아프리카로 돌아오기 전, 15년간 미국에 거주하는 동안 공인회계사로 일했고, 경영학 석사(MBA)학위와,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신학교에서 목회학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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