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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자의 이야기

그는 야간 버스를 타고 런던을 거쳐 글래스고(Glasgow)에 도착했다. 시내 중심가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그의 모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자원봉사자의 도움으로 그는 우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었다.[1]

착취와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테러와 전쟁을 피하기 위해 아프리카를 떠나 유럽으로 향했고, 벨기에로 오게 되었다. 그는 망명을 신청하고 문화에 적응하여 유럽에 정착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다른 많은 사람처럼 그도 착취에 취약함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벨기에 농부가 그에게 일자리를 제안했을 때 기뻐했고, 여러 주 동안 그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주 기본적인 숙소와 음식만을 제공받았다. 처음에는 좋은 조건인 것 같았지만, 곧 농부가 그에게 돈을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그가 임금을 요구했을 때, 그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떠나기로 했지만, 어디로 갈 수 있을까? 그는 영국을 선택했고, 아는 사람도 없고 영어도 하지 못한 채, 글래스고에 도착했다. 며칠 밤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나니, 그는 지치고 배고프고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었다.

착취와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은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종교적 또는 민족적 박해를 피하거나, 이 사람처럼(그를 티에리라고 부르겠다) 전쟁을 피하다가 착취당하게 된다. 그리고 그 수는 증가 추세에 있다.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 러시아 군대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3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우크라이나를 떠나야 했다. 실향과 절망 속에 있는 그들은 표적의 대상을 잘 알고 있는 인신매매범들의 착취에 매우 취약할 수밖에 없다. 이미 많은 어린이들이 우크라이나-폴란드 국경에서 실종된 것으로 보고되었다.[2]

방문 센터에서 착취 피해자와 함께 일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최선을 다해 그들을 돕는 것이 우리의 특권이다. 티에리의 경우, 우리는 그가 적절한 지원을 찾도록 도울 수 있었고, 그가 처한 상황이 좋아졌다는 것을 보고하게 되어 기쁘다. 그는 과거의 트라우마와 더불어 살며 더 안정적인 삶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3]

나는 그것이 우리의 특권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렇다. 그러나 우리는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발생한 비극적인 상황 중 극히 일부만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또한 다른 사람을 상품으로만 여기는 범죄자들에 의해 삶이 망가진 사람들을 섬기며, 착취를 자행하는 사람들에 의한 피해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우리는 희생자들을 돕는 일뿐 아니라, 그러한 고통을 애초에 방지하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우리의 사역은 다른 많은 사역과 마찬가지로 착취와 인신매매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한다. 우리는 티에리와 같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고 동행하기 위해 시간을 내주는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교회로부터 후한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착취가 전혀 발생하지 않기를 더 바란다. 그래서 우리는 희생자들을 돕는 일뿐 아니라, 그러한 고통을 애초에 방지하도록 하는 것이 기독교인들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개별 기독교인과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이것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과 거리가 먼 문제처럼 느껴질 수 있다. 우리는 티에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더 이상의 고통을 방지하고 싶어하지만,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거대한 문제에 대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역사로부터의 교훈

우리는 노예 제도의 불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기 위해 많은 일을 했던 남북전쟁 이전 아메리카의 퀘이커 교도(Quakers)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4] 그 시대에는 노예제도가 정상이었고, 그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노예를 소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성경도 그들의 견해를 지지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퀘이커 교도는 노예 소유권이 어떻게 자유와 평등의 성경적 원칙과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해 도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교회와 사회 전체에서 널리 퍼진 문화의 가치와 규범에 맞서기 시작했다.


“17세기 버지니아에서 일하고 있는 노예들”

그들에게 핵심은 이른바 ‘황금률’이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니라'(마 7:12). 그들은 그들 자신이 노예가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것을 요구할 수 없었다. 필연적으로 그들의 입장은 비판과 적대감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성경이 노예 소유를 지지한다고 믿는 기독교인들로부터 그랬다.[5]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사회와 기독교인 사이에서 널리 퍼진 문화에 맞서 일어서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데 크고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격언이 현대판 노예 제도에 맞서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우리에게도 역시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라.’’라는 격언이 현대판 노예 제도에 맞서는 자극제가 될 수 있다. 아마도 가장 확실한 방법은 티에리와 같은 사람들이 스스로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역에 직접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년간 착취당하고 물건 취급을 경험한 사람들의 삶에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러나 착취와 노예화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도 많이 있다.[6]

퀘이커 교도처럼 우리도 정의와 자비를 구하고 권력에 진실을 말하는 예언자의 전통에 참여할 수 있다. 퀘이커 교도처럼 우리도 인신매매라는 불의에 반대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인식 개선에 참여할 수 있다. 우리는 인간의 상품화에 반대하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로비를 할 수 있다. 사람들을 착취하여 제품을 생산하는 회사를 상대로 불매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질병의 징후와 증상을 식별하고 치료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인신매매의 원인은 기회의 부족, 자본주의, 불평등(인종, 사회, 종교, 성별) 등 많고 복잡하다.[7] 이런 것들은 물론 정치적인 문제이며, 이 차원에서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다. 그러나 그 근본 원인은 훨씬 더 깊은 곳에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사람들은 인간의 결점, 즉 다른 사람에 대한 탐욕과 권력에 대한 욕망 때문에 착취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우리 기독교인들은 할 말이 있다. 왜냐하면 우리의 성경 전체에 나오고, 예수님 자신이 보여주신 예언자의 전통이 바로 이러한 것들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을 점검하기

우리의 메시지가 신뢰받으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철저히 점검해야 한다. 먼저 우리는 돈과 소유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대해 자문해 보아야 한다. 우리는 돈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마 6:24). 물질주의 문화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것은 특히 직면하기 어려운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착취의 원인에는 경제적 문제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이 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 대한 착취는 사람에 대한 선입견에 기인한다.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 또는 성별 때문에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착취하기가 쉽다. 여성에 대한 상업적 성착취는 여성을 단순한 사물로 보기 때문에 발생하고, 열등한 인종이나 종교에서 온 것으로 간주하는 많은 사람들이 물건처럼 취급된다.[8]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 또는 성별 때문에 자신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착취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인종, 종교, 사회적 지위, 성별에 대한 태도는 매우 문화적으로 얽혀 있으며,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기독교인들은 언제 우리가 지배적인 문화의 규범을 준수해야 하는 지, 그리고 언제 그것에 도전해야 하는 지에 대해 씨름해왔다. 때때로 이것은 노예 제도의 경우처럼 교회 안에서 큰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 어려움은 성경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구약의 선지자들, 그리고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에 맞서는 예수님의 입장뿐만 아니라, 갈라디아서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초대 교회에서도 나타난다. 갈라디아 교회는 유대 율법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열등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주장과 함께 그 관습을 따라야 한다는 사람들의 요구로 공격받고 있었다. 바울은 이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하여 이것이 갈라디아 교인들을 ‘종의 멍에'(갈 5:1) 아래 두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대인이 아닌 이교도 배경의 신자들이 열등한 기독교인이라는 생각에 반대했다.

더욱이 그는 그의 주장의 범위를 넓혔고, 세례를 통해 모든 것이 평등하게 된다고 선언했다. “이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와 여자가 더 이상 차별이 없습니다”(갈 3:28). 이 유명한 말은 바울이 인종적, 사회적, 성별의 차이를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말하는 것은 우리의 사고를 지배할 수 있는 문화적, 종교적 전제와 그것이 우리에게 미치는 부지불식간의 영향이, 서로를 사랑하는 능력에 손상을 줄 정도로 우리 공동체를 지배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갈 5:6).

도전에 대한 응답

바울의 말은 교회에서 인종, 성별, 사회적 지위에 관한 우리 자신의 태도를 숙고하도록 도전한다. 우리는 정말로 서로를 평등하다고 생각하는가? 그리스도의 새로운 창조물이 가져오는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자유를 희생하면서, 문화적, 종교적 규범을 우선시하고 있지는 않은가?

퀘이커 교도들을 통해 보았듯이, 이미 수용된 규범에 도전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것들이 교회에게 어려운 질문이 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를 무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냐하면 교회 공동체는 우리가 세상에 주장하는 것의 모범이 되지 않는다면, 세상에서 우리의 예언적 목소리가 약해지기 때문이다. 우리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사회 정의를 신뢰성 있게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기도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돈과 소유물, 사회적 지위, 성별, 민족 및 종교의 차이(신학적 차이를 포함해서)에 관한 우리의 태도를 기꺼이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소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약점과 편견을 기꺼이 인정하고, 우리 교회 공동체 내에서 우리 문화가 이웃을 사랑하는 능력을 훼손한 부분이 있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티에리의 삶의 일부가 되어 그에게 소망이 회복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특권이다. 그러나 우리의 책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는 노예제가 만연할 수 있는 세상의 가치와 규범에 반대하는 예언자의 목소리를 냄으로써 인신매매의 원인을 해결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가 효과적으로 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의 가치를 기꺼이 검토하고 질문해야 한다 – 우리 교회 공동체는 우리 스스로가 주장하는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가? 퀘이커 교도들을 통해 보았듯이, 이미 수용된 규범에 도전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언적인 목소리를 갖고 티에리와 같은 사람들의 노예화와 착취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되려면 먼저 우리 자신을 점검해야만 한다.[9]

미주

  1. The author serves as chaplain at Glasgow City Mission, Glasgow, Scotland.
  2. Sue Mitchell, ‘Ukraine: Thousands of vulnerable children unaccounted for,’ BBC News, March 11, 2022, https://www.bbc.co.uk/news/world-europe-60692442.
  3. On the medical and psychological help needs of trafficked persons see Hemmings, S., Jakobowitz, S., Abas, M., et al. ‘Responding to the health needs of survivors of human trafficking: a systematic review,’ BMC Health Services Research 16 No 1. 2016, doi:10.1186/s12913-016-1538-8.
  4. On the Quakers and abolitionism, see Brycchan Carey and Geoffrey Plank (eds) Quakers and Abolition (Champaign: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2018).
  5. See further, Marion L.S. Carson, Human Trafficking the Bible and the Church: An Interdisciplinary Study (Eugene, OR: Cascade, 2016).
  6. See Kevin Bales, Ending Slavery: How We Free Today’s Slaves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2007).
  7. Annalisa V. Enrile, Ending Human Trafficking and Modern Day Slavery: Freedom’s Journey (Thousand Oaks: Sage Publications 2018, 51-70).
  8. On the various forms of contemporary slavery see the Trafficking in Persons Report which is produced yearly by the United States State Department.
  9. 편집자 주: 로쟌 글로벌 분석(LGA) 2014년 1월호 https://lausanne.org/content/lga/2014-01/human-trafficking-and-the-response-of-the-global-church 에서 Abraham (Abey) George의 기사 “인신매매와 글로벌 교회의 대응(Human Trafficking and the Response of the Global Church)”을 참조하십시오.

사진 출처

Photo by Hermes Rivera on Unsplash

1670 virginia tobacco slaves. “Slaves working in 17th-century Virginia,” by an unknown artist, 1670. This work is public domain.

Photo by Hermes Rivera on Unsplash

마리온 카슨(Marion Carson)은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시 미션(Glasgow City Mission)의 목사로 섬기고 있는 신학자이자 교사, 트레이너이다. 그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 침례교 신학 연구 센터의 선임 연구원이다. 그녀는 “인신매매, 성경과 교회: 학제간 연구와 포로를 자유롭게 하기: 성경과 인신매매 (Human Trafficking, the Bible and the Church: An Interdisciplinary Study and Setting the Captives Free: The Bible and Human Trafficking) 의 저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