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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 기독교의 역사

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불린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20.2%의 일본인이 한국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데 반해, 한국인은 16.7%만이 일본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1] 일본에서의 증오발언 금지가 한국인에 대한 차별적 행위 문제를 해소하지 못했고, 한국에서의 반일 캠페인은 시민들로부터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한 정치적 전략으로 보인다. 두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두 나라 사이에는 여전히 깊은 간극이 존재한다.

일제강점기 36년 동안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일본군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군정은 한국의 모든 기관에 황제 숭배를 강요했다. 1919년 3월 1일 저항 운동 이후 3,000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체포되었고 그 중 50명이 감옥에서 순교했다. 신학교와 기독교 학교는 강제 폐쇄되었고 일부 교회는 완전히 파괴되었다.[2]한국인은 재산, 신분, 교육, 삶의 박탈 등 다른 고통을 겪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 교회는 잘못된 신학으로 한국의 정치적 침략과 식민지화에 가담했다. 불과 반세기 후, 일본 교단들은 그런 잘못을 공식적으로 고백했다.

이런 배경으로 인해 양국 기독교의 특징은 완전히 다르게 나타난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전체 인구의 19%인 반면, 일본의 기독교 인구는 약 0.8%다. 한국은 스스로를 ‘동아시아의 이스라엘’이라고 자주 칭하지만 일본은 ‘선교사들의 묘지’로 알려져 있다.

일본 교회를 돕는 한국 교회

일부 한국 기독교인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일본 교회를 다양한 방식으로 도우려고 한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 규모의 교회들 중 하나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77년에 ‘일본인 천만명 구원’이라는 선교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를 위해 사용된 주된 전도 방법은 조용기 목사가 일본어로 설교한 ‘행복으로의 초대’라는 TV 프로그램을 통해서이었다. 그러나 18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 방법은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1998년에 방송사역을 중단했다.

또 다른 예로는 1980년대에 수년간 일본인 목사들과 교회 지도자들을 제자훈련 세미나에 초청한 사랑의교회가 있다. 사랑의교회는 수십 년 동안 일본 교회를 돕기 위해 많은 선교팀을 파송했다. 그러나 가시적인 결과는 없었다.

사진 제공: www.lovesonata.org.

온누리교회[3]의 ‘일본을 향한 러브 소나타(Japan Love Sonata)’– 프로그램과 영향력[4]

1999년, 서울에 소재한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는 일본 신자들에게 좋은 기독교 서적을 공급하기 위해 기독교 출판사 ‘일본 두란노서원(Duranno Japan)’을 설립하여 전도하기에 어려운 일본인에게 다가갔다. 일본에 온누리 비전교회들을 개척할 계획도 세웠다. 2003년에 하용조 목사는 오사카에서 첫 번째 지교회를 시작했고, 일본의 다른 도시에 6개의 다른 지교회들을 세웠다. 하용조 목사는 일본에 지교회를 세운 목적에 대해 온누리 교회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섬김을 통해 일본 교회를 격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매스미디어 시대에 TV 사역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깨닫고 도쿄와 오사카에 일본 CGNTV(Christian Global Network TV)를 설립했다. 이로 인해 일본 미디어 사역에 급격한 변화가 생겨났다. CGNTV가 시작되기 전에는 소도시에서 30분짜리 기독교 프로그램 몇 개만이 방송되고 있었다. 하지만 CGNTV가 생긴 뒤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설교자들을 소개하는 기독교 프로그램들이 24시간동안 방송됐고 세계 각국의 프로그램들이 번역과 함께 제공됐다. 그러나 일본 교회의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마침내 하용조 목사는 한국의 연예인 기독교인들과 함께하는 문화행사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즈음에 한국 드라마들이 일본 역사상 유래없을 정도로 일본 여성들 사이에서 매우 인기가 있었다. 그리하여 2007년에 온누리교회의 새로운 선교전략으로 ‘일본 러브소나타’라는 문화기반의 전도운동이 시작되었다.[5]

‘일본 러브소나타’는 ‘러브소나타’를 주요 전도행사로 하여 기독교 지도자 부흥 세미나, 청소년 찬양의 밤, 사회 지도자 포럼 등을 여는 다각적인 선교 프로젝트다.

‘일본 러브소나타’는 ‘러브소나타’를 주요 전도행사로 하여 기독교 지도자 부흥 세미나, 청소년 찬양의 밤, 사회 지도자 포럼 등을 여는 다각적인 선교 프로젝트다. 2007년부터 ‘러브소나타’ 프로그램들이 일본 전역의 주요 도시에서 33회에 걸쳐 개최되었다. 참석인원으로 볼 때 매 회가 성공적이었다. 각 도시에서 가장 큰 홀을 빌렸는데, 홀 매니저들의 의심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좌석이 만석이었다. 총 참가자 수는 77,254명이었고, 그 중 3,394명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로 결단했다.

‘러브소나타’ 프로그램들은 문화를 담은 내용이 중심이었다. 즉, 클래식 음악, 국악, 가스펠 합창단, 발레, 힙합 댄스 등 수준 높은 문화 공연으로 구도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구성되었다. 하목사는 복음을 물, 문화를 잔으로 설명하면서 전도에 대한 문화적 접근을 지지했다: ‘컵의 모양은 다를 수 있지만 물은 동일하다. 우리는 사람들이 물(복음)을 마실 수 있도록 복음을 담는 잔으로 문화를 사용해야 합니다.’[6] 그는 또한 상황화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교회는 배이고 문화는 바다입니다. 배는 바다를 항해하고 물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배에 들어가면 가라앉습니다. 교회는 문화 안에 있지만 세속 문화가 교회에 들어오면 교회는 가라앉는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7]

‘러브소나타’는 그 위험성을 인식하며, 문화 공연은 오직 복음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해 활용되었다.

‘러브소나타’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따뜻함과 사랑을 표현한 프로젝트다. 예를 들어, 유니폼을 입은 한국 안내팀은 환영 안내판을 들고 행사장 인근의 역에서부터 행사장까지 서 있다. 안내팀은 사전에 잘 훈련되어 친절하게 미소로 안내한다. 문화적으로 민감한 공연과 유명 인사들의 간증은 참가자들이 마음을 열고 주강사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도록 도와준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채로운 종이 비행기, 풍선, 손수건, 화관 및 펜 조명을 사용하여 매우 극적인 피날레를 장식한다. 일본인은 일반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보수적이지만 이 순간 그들 대부분은 사랑을 느끼며 마음을 열고 극적인 피날레를 즐긴다.






온누리교회는 ‘러브소나타’ 프로그램 이후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가정사역, 말씀묵상(Quiet Time, QT) 세미나, 일대일 제자훈련 등 다양한 사역 지원팀을 파송하여 선교를 지속한다. CGNTV는 모든 행사를 미디어 기술로 지원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와 온라인을 통해 축복을 경험할 수 있다. 이런 후속 프로그램을 통해 온누리 사역팀들로부터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러브소나타’가 끼친 가장 큰 영향은 한국 기독교인이 일본인에 대해 보여준 사랑이었다. 지금까지 18,310명의 한국 기독교인들이 시간과 돈 그리고 가족과 일을 희생하면서 ‘러브소나타’를 위해 한국에서 일본을 방문했다. 대부분의 한국인 자원 봉사자들은 무대 프로그램을 볼 기회조차 없다. 재료를 준비하고, 행사를 위해 기도하여, 무대 뒤에서 동시에 다른 역할을 한다. 사랑을 표현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기조연설자인 하용조 목사의 메시지였다. 그는 일본에 대한 사과로 메시지를 시작하곤 했다: ‘일본인 친구들, 우리가 오랫동안 용서하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일본인에게 한국인은 항상 사과를 요구한다는 고정 관념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메세지는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일본인에게 한국인 목사가 사과하는 것은 충격적이면서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사과에 이어진 예수 그리스도의 진정한 사랑의 메시지는 말 그대로 일본 참가자들의 마음을 녹였다.

일본 목회자와 신자는 불신자의 무관심과 거부로 인해 자주 낙담한다. 그래서 일본을 위한 한국 기독교인의 희생적인 봉사를 보고 그들은 전도에 대한 격려와 도전을 받는다. 특히 하용조 목사가 행사 직전까지 총 6번에 걸친 간 수술을 받았고 병으로 매주 투석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하용조 목사와 교인들의 헌신과 봉사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하용조 목사는 2011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일본에 대한 사랑은 그의 후임인 이재훈 목사가 이어받았다. 이재훈 목사와 온누리교회는 일본에서 연 2회 ‘러브소나타’를 계속하고 있다. 한 지역교회가 이 행사를 진행하기 위한 재정적인 헌신을 한 것은 일본인에 대한 그들의 희생적인 사랑을 보여준다.

온누리교회의 사랑과 선교로 2,234개 일본 교회가 ‘러브소나타’에 참여하고 교단을 초월하여 교제하며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젊은 세대는 함께 모여 자신들만의 행사를 계획한다. 일본에서 몇 안 되는 묵상 교재 중 하나가 일본 두란도서원(Durranno Japan)에서 발행되고 있으며 CGNTV에서는 매일 일본 목회자들을 설교자로 초청하여 이에 대한 묵상 안내서를 제공하고 있다. 아버지학교, 어머니학교 등의 프로그램들이 가정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으며 QT 세미나와 일대일 제자훈련을 통해 일본 성도들의 신앙을 강화하고 있다.

세계 교회를 위한 성찰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용서[8] 와 희생적인 깊은 사랑을 보여준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는 한일 간의 깊은 골에 가교를 놓는 데 도움을 주었다. 오늘날 세계 곳곳의 사람들은 인종차별, 착취, 학대, 침략, 심지어는 대량학살로 고통받고 있으며, 피해자의 정상적인 반응은 용서하지 않고 증오로 가득찬 복수다. 원한의 악순환은 화해가 일어나지 않는 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죄의 실체를 알고 그리스도의 참된 용서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만이 그런 화해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하용조 목사와 온누리교회의 강력한 간증과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일본을 위해 행한 일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볼 수 있다.

미주

  1. 연합뉴스, https://www.asahi.com/articles/ASP5V4S2DP5VUHBI00S.html.
  2. Kyongbae Min, ‘Kankoku no Kirisutokyo [Christianity in Korea],’ in Aziakirisutokyoshi [Asia Christian History], ed. Go Rimei et al. (Tokyo: Kyobunkan, 1995), 123-48.
  3. ‘Love Sonata,’ www.lovesonata.org. 더 많은 사진을 볼 수 있는 링크 http://www.lovesonata.org/media/photo.
  4. Similar analysis on Love Sonata was written in ‘Missiological Analysis of Love Sonata in Japan’ by Eiko Takamizawa, Torch Trinity Journal, (2008, 11:1), 147-58.
  5. Onnuri Japanese Service, 30 nen no Shukaku ga Futatabi Tane to natte: Nihon eno Kawaranai Kamisama no Ai [ 30 years Harvest are Now Seed Again: Unchanging Love of God toward Japan].
  6.  Yong-Jo Ha on ‘Church and Culture’ in a lecture given at the Revival Seminar at Love Sonata Sapporo, 31 October 2007.
  7. Ha, ‘Church and Culture’.
  8. 편집자 주: See article by Wafik Wahba entitled, ‘Witnessing to the Gospel through Forgiveness’, in January 2018 issue of Lausanne Global Analysis, https://lausanne.org/content/lga/2018-01/witnessing-gospel-forgiveness.

에이코 타카미자와(Eiko Takamizawa) 박사는 일본 선교학자이며 미국 일리노이주 소재 트리니티 국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 횃불트리니티대학원대학교 교수직을 역임했고 SEANET 운영 위원회 위원, 로잔 글로벌 리스닝 팀 공동 리더 및 로잔 신학 실무 그룹의 일원으로 섬기고 있다.